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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아웃] 청와대의 귀환…'여민관 시대'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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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종우 선임기자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즐겨 봤다는 미국 드라마 <웨스트윙>은 백악관 서쪽 별관을 지칭하는 별칭이다. 미국 대통령의 일상 집무 공간인 오벌 오피스를 중심으로 비서실장과 국가안보보좌관 등 핵심 참모들이 한 동선 안에 모여 있는 구조다. 수천 명에 달하는 대통령실 직원 대부분은 인근 행정동에서 근무한다. 대통령이 오벌 오피스에서 내린 결단은 가까이에 있는 핵심 참모들과의 토론과 조율로 이어진다.

이에 비해 청와대는 달랐다. 1991년 완공된 본관은 대통령 1인을 위한 공간으로 구성됐다. 2층 본채를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단층 별채가 부속해있다. 본관 2층에는 대통령 집무실과 접견실, 외빈 대기실이 있다. 역대 대통령이 본관을 사용할 때 집무실은 텅 빈 운동장처럼 적막했다. 게다가 청와대 핵심 참모들이 대통령을 '알현'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본관과 참모들이 근무하는 여민관은 500m가량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거리는 상징적 권위를 만들어냈지만, 소통의 장애물로 작용했다.

청와대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재가동한다. 대통령실은 22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첫 언론 브리핑을 시작했다. 용산 시대는 '탈(脫) 청와대'를 내세웠지만, 국방부 청사를 개조한 공간적 한계는 명확했고, 효율과 소통이 개선됐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계엄과 탄핵으로 이어지면서 용산 시대는 흑역사로 남게 됐다. 결국 대통령의 집무 공간은 다시 청와대로 돌아온다. 역대 정부의 '탈 청와대' 선언을 상기하면 역설적이지만, 공간의 한계를 인정한 현실적 선택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번 복귀의 핵심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구조의 재설계여야 한다.

대통령 집무실은 본관과 여민1관에 마련된다. 여민1관에는 비서실장실과 정책실장실, 국가안보실장실도 배치돼 '1분 거리'에서 소통이 가능하게 됐다. 주요 수석비서관도 여민1관에서 대통령과 함께 근무한다. 본관은 의전과 행사 중심으로 두고, 국정 운영은 여민관에서 이뤄진다는 의미다.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여민관 집무실을 활용했지만, 본관 중심의 상징성이 여전히 강했다. 이번에는 여민관을 실질적 의사결정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여민관이 청와대의 '웨스트윙'이 되는 셈이다.

청와대를 출입하던 시절 경복궁 후문과 청와대 정문 사이의 도로인 청와대로를 군주와 백성의 영역을 가르는 경계라고 부르곤 했다. 대통령이 되면 시간이 흐를수록 국민과 떨어져 초심을 망각한다는 의미에서다. 여민(與民)은 <맹자> '양혜왕편'에서 유래된 것으로 국가 지도자가 백성의 고통을 살피고 즐거움을 함께 나눌 때 왕도정치가 실현된다는 의미다. 여민관 시대는 그 이름이 담고 있는 뜻을 실천할 때 의미를 갖는다. 공간은 돌아왔지만 권력 방식까지 답습해선 안 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