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주와 임차인이 같은 보험사와 화재보험 계약을 맺은 경우 임차인에게 화재 책임이 있어도 건물주에 지급한 보험금과 관련한 보험회사의 대위(제3자가 다른 사람의 법률적 지위를 대신해 그가 가진 권리를 얻거나 행사)권 행사는 제한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노경필 대법관)는 지난달 메리츠화재가 A씨를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이 소송은 건물을 임차해 식자재 종합유통마트를 운영해온 A씨 가게에서 2022년 8월 화재가 나 약 6억9천만원 상당의 피해가 발생한 것이 발단이 됐다.
A씨는 화재보험 및 타인 재물배상 책임을 포함하는 책임보험 계약을 메리츠화재와 체결한 상태였는데, 공교롭게도 건물주가 체결한 소유자 보험 계약의 보험자도 메리츠화재였다.
건물주는 A씨가 가입한 임차인 보험을 통해 4억9천만원, 자신이 든 소유자 보험을 통해 2억원을 받아 사실상 모든 손실을 보전받았다.
메리츠화재는 2023년 소유자 보험으로 지급된 2억원을 보전받겠다는 취지로 보험자 대위에 의한 구상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A씨에게 제기했다.
쟁점은 보험사가 소유자 보험금을 지급한 뒤 임차인에게 보험자 대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였다. 즉 건물주가 A씨에게 갖고 있던 손해배상 청구권을 보험사가 넘겨받아 행사할 수 있는지 여부다.
2심은 A씨 책임으로 화재가 났다면 2억원 일부에 보험자 대위권 행사가 가능하다고 판단했으나, 대법원은 문제가 있다고 봤다.
우선 보험자 대위권 행사가 가능하려면 A씨(가해자)의 손해배상 책임이 남아있어야 하는데, A씨는 자신의 책임 비율 60%에 해당하는 손해액(약 4억1천만원)을 초과한 4억9천만원을 보험금으로 충당해 대법원은 그의 배상 책임이 사실상 소멸했다고 봤다.
이러한 상황에서 설령 메리츠화재가 보험자 대위권을 행사해도 A씨와도 책임보험이 체결된 상태인 만큼 스스로에게 배상책임을 묻는 모순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A씨 계약의 책임보험자가 원고(메리츠화재)인 이상 원고는 손해배상 청구권의 채권자인 동시에 채무자가 되고, 손해를 배상받을 권리와 손해를 배상해줘야 할 의무가 함께 발생하는 현상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이어 "보험자 대위권 행사를 허용할 경우 순환소송을 인정하는 결과가 돼 소송경제에 반한다"며 원심은 보험자 대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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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