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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시선] "악마는 디테일에"…새해에도 트럼프와 협상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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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트럼프 행정부와 영원한 협상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한국과 미국이 안보·무역 합의를 담은 공동 팩트시트를 발표한 직후인 지난해 11월 14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밴플리트 정책 포럼'에서 김형진 전 주벨기에·유럽연합(EU) 대사가 내린 평가다.
양국 정상이 큰 틀에서 협상을 타결했지만, 앞으로 이행해야 할 세부 내용이 하나하나 민감해 이견 조율이 쉽지 않은 데다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불확실성을 고려하면 무엇 하나 장담하기 어렵다는 전망이었다.
당시 포럼에 참석한 다른 패널들도 이에 동의했는데 그로부터 한 달 반 정도 지난 지금 보면 새해에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트럼프 행정부와 지난한 협상이 불가피하다.
특히 무역 부분은 양국 간 이해관계가 충돌할 소지가 커 후속 협상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디지털 통상 분야에서는 이미 이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과 정책에 있어서 미국 기업들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했지만, 이는 한국 정부의 기존 입장을 확인하면서 갈등을 일시 봉합한 것에 불과하다.
한국 국회에는 미국 정부와 재계가 강하게 반대해온 온라인 플랫폼 규제 법안들이 발의돼 있으며, 정부는 구글이 원하는 고정밀 지도 반출을 아직 승인하지 않았는 데 미국은 이를 계속 문제삼고 있다.
최근 국회가 통과시킨 정보통신망법 개정안(허위조작정보근절법)도 트럼프 행정부의 표적이 되는 분위기다.
정보통신망법은 불법·허위 정보의 온라인 확산을 막겠다는 취지이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정부 검열이자 미국 플랫폼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주는 규제라고 비판한다.
다른 나라의 입법 활동에 대한 이런 관여는 내정 간섭 소지가 다분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유럽연합(EU)의 디지털서비스법(DSA)에 강력히 대응하는 등 자국 플랫폼 기업의 이익을 위해 타국을 얼마든지 압박할 기세다.
한국이 미국에 약속한 3천500억달러(약 506조원) 규모 투자 패키지의 이행도 양국 간 갈등이 언제든지 다시 불거질 수 있는 영역이다.
한국 정부는 투자 손실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안전장치를 마련했다고 하지만, 미국이 투자처 선정 등에서 주도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구도에서 입장을 관철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언제든지 일방적으로 관세를 다시 올릴 수 있는 데다 무역 합의에서 약속한 관세 인하도 아직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은 현재 검토 중인 반도체 관세의 경우 한국에 주요 경쟁 상대인 대만에 비해 불리하지 않은 조건을 약속했지만, 반도체 관세 발표 자체가 여러 이유로 미뤄지고 있다.
이밖에도 의약품, 로봇과 산업용 기계, 무인기 등 미국이 안보상의 이유로 검토 중인 각종 품목별 관세가 확정되지 않았다.
통상 전문가들은 세부 내용이 협상 결과를 좌우한다는 의미로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표현을 밥 먹듯이 쓰는데 무역 합의 전반에 걸쳐 아직 디테일이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
안보 부문에서는 한국이 무역 분야에서의 일방적인 양보에 대한 사실상의 반대급부로 얻어낸 원자력 관련 합의가 미국이 약속한 대로 이뤄질지가 관건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했지만, 건조에 필요한 핵연료 확보 등과 관련해 양국 간 협의가 더 필요하며 민간용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도 마찬가지다.
한국 정부는 안보 분야의 경우 가급적 신속하게 협의를 추진하려 하고 있지만,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과 집중적으로 대화할 의지와 동력을 유지할지가 미지수다.
반면 무역 분야의 경우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패배하면서 국정 동력을 크게 상실할 가능성과 연방대법원의 관세 심리 등 변수가 있다. 한국 정부는 2025년 두차례 정상회담을 통해 구축한 한미관계의 양호한 흐름을 이어가는 동시에, 미국의 무리한 요구는 최대한 방어하는 명민한 대미외교를 전개할 필요가 있다.
bluekey@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