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 = '외계인이 인류의 조상'이라는 주장으로 과학자와 고고학자에겐 조롱받았지만, 세계적인 인기 작가가 된 스위스의 에리히 폰 데니켄(Erich von Daniken)이 지난 10일(현지시간) 스위스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로이터와 교도통신이 12일 보도했다. 향년 만 90세.
1935년 4월 스위스에서 태어난 고인은 1968년 스위스 한 호텔 지배인으로 일할 때 심야에 쓴 원고를 모아 '미래의 기억'(영어·한국어판 제목은 '신들의 전차')을 펴냈다. 이 책은 고도로 발달한 외계인들이 지구를 여러 번 방문해 잉카와 이집트 유적, 동굴 벽화 등의 형태로 흔적을 남겼다는 주장을 담았다. 페루 나스카 문양은 우주선의 이착륙 공항이고, 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도 외계인이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종교의 기원도 외계인과의 접촉에 대한 반응이었다고 했다.
책을 쓰기 전 해외여행 비용을 마련하려고 호텔 돈을 횡령했다가 1970년 2월 징역 3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고, 1년 복역 후 석방됐다. '미래의 기억'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덕분에 돈을 모두 갚았고, '별들로의 귀환', '외계에서 온 신'을 잇따라 집필했다. 데니켄은 고고학·우주비행학·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 협회(AASRA)를 공동 설립했고, 2003년 5월 스위스에서 개장한 테마파크인 미스터리파크(현재는 융프라우 파크)를 설계했다.
'외계 생명체 접촉설'은 고인이 처음 주장한 건 아니었다. 1966년 과학자 칼 세이건(1934∼1996)과 이오시프 시클로프스키(1916∼1985)가 공동 저서 '우주 속 지성 생명체'의 한 장에서 고대 외계 생명체의 방문 가능성을 언급했고, 로널드 스토리도 '우주 신들의 실체'에서 비슷한 문제를 다뤘다.
하지만 칼 세이건은 "나는 데니켄의 저작만큼 논리적·사실적 오류로 가득 찬 최근의 책을 알지 못한다"고 혹평했고, 1973년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표지 기사 제목을 '데니켄의 사기극'으로 정하기도 했다.
고인 스스로도 자신의 주장을 여러번 번복했다. 2001년 한 다큐멘터리에서는 자신의 주장 중 어느 것도 외계인 기원을 증명할 수는 없지만, 인류가 '멋진 신세계'를 위해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2021년 7월 미국 정부가 외계 기원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UFO 보고서를 공개하자 한 인터뷰에서 "앞으로 UFO와 외계 생명체에 대해 말하는 사람을 단순히 비웃을 수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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