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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과 연료 등 생필품을 비축하라는 그린란드 정부 권고가 나온 뒤 현지 최대 일간 '세르미치악'('산'이라는 뜻)은 5일분 식량의 예시 사진과 관련 기사를 1면에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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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현지시간) 누크 시내의 최대 슈퍼마켓인 브루그세니에서는 시민들이 카트 가득 물품을 담고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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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정리하던 이 매장의 점원은 "정부 지침 발표 이후에는 장기간 보관이 가능한 식료품 판매가 눈에 띄게 늘었다"며 "가격이 저렴한 품목을 중심으로 물건이 동나 다시 주문을 넣어 채워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본토 덴마크에서 비행기로 4시간 반 떨어진 그린란드는 비싼 운송비 탓에 대다수의 물가가 덴마크보다 더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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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곧바로 그린란드에 무력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대신에 '전면 접근권'(total access)을 무상으로 영구히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외교적 협상을 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10년째 그린란드에서 한국 명예영사로 활동하고 있는 피니 메이넬 변호사는 "정부의 식량비축 권고에 사냥용 엽총까지 몇년 만에 다시 꺼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무력은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여차하면 엽총으로 사냥을 해 직접 식량을 조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직 정치인 잉게 올스비히 브란트 씨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 말을 어떻게 믿겠느냐"고 반문하며 "젊은 시절부터 엽총으로 새, 물개, 사슴까지 손수 사냥해봤다. 설령 전쟁이 나 외부에서 식재료 조달이 불가능해져도 굶어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올해 62살이라는 그는 "손녀딸도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사냥터에 데리고 갔다"며 "이누이트 여성들은 어지간한 미국 남성보다 더 강인한 DNA를 갖고 있다. 우리 생존은 우리가 지킬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나무 한그루 제대로 없는 척박한 환경 속에 조상 대대로 사냥과 수렵으로 단련된 이들이지만 몇주째 그린란드를 상대로 지속돼 온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은 이들에게서 밤잠을 빼앗았다.
메이넬 변호사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한국 사람들은 북한과 휴전선을 놓고 대치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평정을 유지하느냐"고 물으며 "그린란드가 한국에서 배워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그린란드를 상대로 한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이 시작된 이후 보름 넘게 잠을 제대로 잔 적이 없다"며 "그가 그린란드에 무력을 쓰지 않겠다고 한 다음 날에야 중간에 한번도 안깨고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잤다"고 토로했다.
브란트 씨는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그동안 자족하며, 평화롭게 살던 우리가 왜 밤잠까지 설쳐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이런 초조함, 슬픔, 불안이 뒤섞인 복합적인 감정에 사로잡혀보기는 평생 살면서 처음"이라고 한탄했다.
잠을 못자는 건 20대 청년도 마찬가지였다. 인터넷상에서 그린란드 극우 세력의 근거없는 주장에 맞서는 활동을 하고 있다는 이누욕 페테르센 씨는 "요즘 친구들을 만나면 다들 불면증을 다스리는 법에 대해 대화한다"며 "암담한 것은 그의 임기가 3년이나 더 남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당장은 그린란드와 유럽의 반발을 의식해 움츠린 것처럼 보이지만, 또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며 "악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저항의 방편으로 미제 물건을 불매하는 나름의 '작은 반격'을 하자는 이야기도 친구들끼리 나눈다"면서 "다만 미국 햄버거 같은 건 안먹으면 그만이지만, 아이폰과 페이스북 같은 건 쉽사리 끊을 수 없는 것을 깨달아 고민스럽다"고 덧붙였다.
'작은 반격'은 그린란드 중심가의 한 상점에서 이미 이뤄지고 있었다. '그린란드는 매물 아냐'(Greenland is not for sale)라는 문구를 적은 모자달린 셔츠를 팔고 있는 시내 옷가게 점원 노라는 "작년 7월부터 이 문구를 새겨넣은 반팔 티셔츠와 후드티를 팔고 있다"며 반팔 셔츠는 완판돼 새로 입고되길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950덴마크크로네(약 21만원)로 만만치 않은 가격임에도 후드티 역시 잘 나가 몇장 남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특히 미국인 관광객들이 그린란드가 처한 상황에 미안해하면서 많이 사갔다"고 덧붙였다.
ykhyun14@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