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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 기적의 전투'라 불리는 이날의 전투를 이끈 미군 프랭크 댈리 육군 준장(6·25 당시 중령·1913∼1990)은 국가보훈부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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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손자 키튼 댈리(20)가 부산에서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모르몬교)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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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포병대대는 시더시티를 비롯한 미 유타주 작은 마을들에서 온 어린 병사 600명으로 이뤄졌다. 댈리 준장의 지휘 아래 모든 대대원이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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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타주가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의 본산이고, 댈리 준장과 대대원 대부분도 신자였기 때문에, 유타 주민들에게 가평 전투는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신자들은 희망에 따라 18∼19세 무렵 선교 활동을 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2년 임기 선교사로 지원한 것은 키튼 댈리의 결정이었지만, 선교지는 그가 택한 것이 아니었다. 통상 교회 지도자들이 지원자의 개인 정보를 거의 모르는 상태에서 선교지를 배치한다고 한다. 그의 부모와 형을 비롯해 선교사 활동을 한 가족들 중 한국으로 배치된 건 그가 처음이었다.
키튼 댈리는 "한국으로 간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며 "70년 전 증조할아버지처럼 '댈리'라는 이름으로 이곳 사람들을 섬기러 온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닌 운명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전쟁의 기억으로 듣던 한국의 발전상을 직접 보면서 그는 큰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한국인들의 근면·성실함과 교육열에 늘 감동한다. 명예와 성실을 중시하는 한국인의 전통적인 가치도 사랑한다"며 "증조할아버지도 한국의 놀라운 성취를 보면 매우 자랑스러워하실 것이다. 그가 한국인들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데 일조했다는 사실이 내게도 자극이 된다"고 했다.
지난해 5월엔 가평에서 열린 기적의 전투 74주년 기념식에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선교사 기간엔 선교지를 떠나거나 외부 활동을 하지 않고 선교에만 집중하는 게 원칙이지만, 특별히 참석해 가족 대표로 연설했다.
댈리는 "70여 년 전 일을 여전히 감사해하는 한국인들을 보며 내가 그곳에 있다는 것이 다시 한번 운명처럼 느껴졌다"며 "가평은 내 마음속에 영원히 특별한 장소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에서 그는 영어교실, 농사일 돕기 등 다양한 활동으로 종교를 알리고 있다. 생명을 구하고 자유를 위해 싸운 증조할아버지의 유산을 잇는 마음으로 활동한다는 댈리는 "한국인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돕고 떠나고 싶다"고 했다.
오는 10월 2년의 활동을 마치고 미국에 돌아간 후엔 대학에서 건축학 공부를 이어갈 계획이라는 그는 증조할아버지가 이끈 '기적'을 떠올리며 "할 수 있다고 믿을 때 불가능한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mihye@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