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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김 용 기자] 운동장에서 '빠따' 맞던 소년이 한국야구의 전설로….
박용택은 서울시 강동구 명일동에 위치한 고명초등학교를 졸업했다. 필자는 그 바로 옆 학교를 다녔다. 어릴 적 야구를 좋아해, 야구부가 있는 고명초를 부러워했다. 주말 아침 동네 친구들과 팀을 꾸려가 야구부 선수들과 친선 경기도 하고, 고명초와 다른 학교의 연습경기도 자주 구경했다. 그 때 박용택을 처음 봤다.
그 당시 초등학교 야구는 팀 에이스가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던 시절이었다. 다른 선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실력을 그 때부터 보여줬었다. 유니폼 이름에 '택'자가 유독 눈에 띄어, 그 때의 기억이 선명하다. 그런데 당시 어린 마음에 충격 아닌 충격을 받았었다. 연습경기 후 마음에 안드는 부분이 있었는지, 감독 코치가 선수들을 '엎드려 뻗쳐'를 시키고 질타했다. 그런데 가장 잘했던 박용택만 엉덩이 '빠따'를 맞았다. 당시에는 초등학교에서도 구타, 체벌이 있던 시절이다. 운동부는 오죽했을까. 필자가 충격을 받았던 건 맞는 게 아니라 '왜 가장 잘했는데 맞지?' 였다. 박용택 이후에는 2년 후배 심수창이 4번타자 겸 에이스로 야구를 정말 잘했는데, 그도 늘 대표로 '빠따'를 맞았다. 나중에 조금 더 커서 알았다. 왜 가장 잘하는 선수가 대표로 맞았는지를 말이다.
박용택이 멋진 선수로 기억될 수 있는 건 팀을 위한 충성심과 애정, 그리고 우승에 대한 진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입단 전부터 LG를 원했고, LG에서 은퇴하고 싶었다던 박용택. 사실 2015년 LG와 2번째 FA 계약을 체결할 때, 다른 팀에서 10억원 이상 금액이 차이가 나는 제안이 들어왔다. 박용택이 유독 그 팀 홈구장에 가면 잘 치던, 바로 그 팀이다. 보통 수억원 이상 차이가 나면, 선수들의 마음은 흔들린다. 하지만 박용택은 돈보다 LG를 택했다. FA 자격을 얻고 자존심, 진정성을 얘기하며 다른 팀으로 쉽게 이적하는 선수들과 분명 다른 행보였다.
또 박용택은 LG에서 우승하지 못한 걸 늘 한으로 여겼다. 모든 선수들이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어떤 선수들은 팀 우승에 큰 감흥이 없다. 개인 성적을 올려 자신의 계약만 잘하는 게 유일한 목표다. 그들에게 우승은 한 번에 많은 보너스를 받을 수 있는 수단일 뿐이다. 하지만 박용택이 우승을 말할 때는 늘 진심이었다. 풀지 못한 숙제, 그리고 한이었다.
팬에 대한 자세도 마찬가지다. 박용택은 그 어떤 선수보다 '프로페셔널'했다. 귀찮을 수 있는 팬서비스를 마다하지 않았고, 인터뷰도 늘 매너있게 했다. 별다른 이유 없이 귀찮다고 인터뷰를 하지 않는 몇몇 슈퍼스타들과는 기본 자세부터 달랐다. 어떻게 보면 안타수보다 야구를 대하는 자세, 팬을 대하는 진심이 그가 야구를 오래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는지도 모른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