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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하다, 내 책임이다"…왜 이승엽 감독은 자진 사퇴했을까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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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06-02 18:36 | 최종수정 2025-06-02 18:52


"죄송하다, 내 책임이다"…왜 이승엽 감독은 자진 사퇴했을까
13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린 두산-한화전. 이승엽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대전=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25..5.13/

"죄송하다, 내 책임이다"…왜 이승엽 감독은 자진 사퇴했을까
1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 두산 이승엽 감독이 훈련을 지켜보고 있다. 잠실=박재만 기자 pjm@sportschosun.com/2025.04.10/

[스포츠조선 김민경 기자] "죄송합니다. 내 책임입니다."

이승엽 전 감독이 2일 두산 베어스 사무실을 찾아 내뱉은 첫마디였다. 이 감독은 이날 구단에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혔고, 구단은 이를 수용하기로 했다.

이 전 감독의 사퇴 의지가 확고했다. 두산은 시즌 성적 23승32패3무로 9위로 처져 있다. 5위 KT 위즈와 6.5경기차까지 벌어졌고, 8위 NC 다이노스와도 3경기차가 됐다. 역대급 중위권 싸움이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두산은 5월 초까지는 어떻게든 버텼으나 갈수록 내림세였다.

계획대로 풀리지 않는 시즌이었다. 두산은 콜어빈과 잭로그로 원투펀치를 꾸리고 새 외국인 타자로 케이브를 영입했다. 콜어빈과 케이브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온 선수라 기대치가 높았는데, 정작 둘이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 콜어빈은 12경기에서 5승5패, 67⅓이닝, 평균자책점 4.28에 그치며 1선발의 몫을 전혀 하지 못했고, 케이브는 50경기에서 타율 0.286(206타수 59안타), 4홈런, 25타점, OPS 0.731로 부진하다.

무엇보다 국내 에이스 곽빈의 이탈이 뼈아팠다. 안 그래도 국내 선발투수 뎁스가 얇은 두산인데 곽빈이 개막 직전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큰 구멍이 생겼다. 필승조 핵심인 홍건희가 팔꿈치 통증으로 이탈한 것도 큰 마이너스 요소였다. 최민석과 홍민규 등 올해 신인 투수 2명이 이 빈자리를 채워야 했을 정도.

주축 타자들의 부진도 무시할 수 없었다. 주장 양의지가 그나마 타율 0.310, 8홈런, 35타점, OPS 0.893을 기록하며 중심을 잡고 있는데, 김재환(0.243) 양석환(0.260) 강승호(0.217) 등 중심 타선에서 힘을 실어줘야 하는 선수들이 제 몫을 다 해주지 못했다.

내야수 오명진과 임종성이라는 새 얼굴을 발견한 것이 그나마 수확이라면 수확. 외야 세대교체를 기대했던 김민석과 김대한은 아직 잠재력을 다 터트리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라운드에서 두산다운 에너지가 실종됐다는 이야기가 유독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허슬플레이라는 팀 컬러가 실종된 것은 물론이고, 승패와 상관없이 파이팅이 없는 더그아웃 분위기도 문제점 가운데 하나로 거론됐다.


이 전 감독은 팀 분위기를 한번 바꿀 큰 전환점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지휘봉을 내려놓기로 했다.


"죄송하다, 내 책임이다"…왜 이승엽 감독은 자진 사퇴했을까
13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린 두산-한화전. 두산이 연장 11회 승부끝에 4대3으로 승리했다. 11회초 결승타를 친 임종성이 이승엽 감독의 환영을 받고 있다. 대전=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25..5.13/

"죄송하다, 내 책임이다"…왜 이승엽 감독은 자진 사퇴했을까
14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린 두산-한화전. 8회초 2사 3루 강승호의 안타 때 득점한 오명진이 이승엽 감독과 조인성, 박석민 코치의 환영을 받고 있다. 대전=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25..5.14/
두산 관계자는 스포츠조선에 "감독님께서 시즌을 치르면서 줄곧 고민이 있으셨던 것 같다. 버릇처럼 늘 이야기하신 게 부임 첫해부터 모든 책임은 본인이 지고, 비난도 본인이 받겠다고 하셨다. 대신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더 공격적으로 적극적으로 움직여 달라고 주문을 하셨는데, 지금 성적이 안 나오고 있기도 하고 팀 분위기가 좋지 않다 보니까. 본인이 책임을 지겠다고 이야기하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두산은 2023년 시즌을 앞두고 이 전 감독과 3년 총액 18억원에 계약했다. 신인 감독 역대 최고 대우. 지도자 경험이 전혀 없는 이 전 감독이 어떻게 팀을 끌고 갈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는데, 결국 계약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팀을 떠나게 됐다.

이 전 감독은 2022년 9위였던 두산을 맡아 2023년 5위, 2024년 4위로 팀을 이끌었다. 2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이라는 성과를 냈지만, 포스트시즌 3경기에서 모두 패하는 바람에 성과가 빛을 잃었다. 지난해에는 KT 위즈와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2전 전패하는 바람에 역대 최초 4위팀 탈락이라는 불명예를 떠안기도 했다.

이 전 감독은 취임 당시 임기 3년 안에 팀을 한국시리즈로 이끌겠다는 포부를 밝혔고, 올해가 마지막 기회였는데 시즌 58경기 만에 도전을 멈추게 됐다. 자진 사퇴라는 원치 않았던 결말과 마주하게 됐지만, 이 전 감독은 정든 두산 프런트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사무실을 떠났다.

두산 관계자는 "세 시즌간 팀을 이끌어주신 이승엽 감독의 노고에 감사드린다"고 했다.

두산은 3일 잠실 KIA 타이거즈전부터 조성환 QC코치에게 감독대행을 맡기기로 했다. 조성환 대행 체제로 시즌을 완주할지, 아니면 새로운 감독을 선임할지는 아직 결정된 게 없다.

두산 관계자는 "조성환 코치에게 대행을 맡아달라고 전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시즌 끝까지 갈지 말지를 이야기할 단계는 아니다. 상황을 지켜보면서 판단할 계획"이라고 했다.


"죄송하다, 내 책임이다"…왜 이승엽 감독은 자진 사퇴했을까
21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SSG와 두산의 경기, 두산 이승엽 감독이 8회초 패색이 짙은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잠실=허상욱 기자wook@sportschosun.com/2025.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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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고척돔에서 열린 KBO리그 키움과 두산의 경기. 경기를 준비하는 두산 이승엽 감독과 선수단. 고척=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2025.06.01/

김민경 기자 rina1130@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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