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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맞힌 거예요. 그런데 가만있으라 하네요", 벤치클리어링 난장판 속에 빛난 오타니의 품격

노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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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06-20 16:03 | 최종수정 2025-06-20 21:49


"100% 맞힌 거예요. 그런데 가만있으라 하네요", 벤치클리어링 난장판…
오타니 쇼헤이가 9회말 로버트 수아레즈의 100마일 직구에 등을 맞은 뒤 동료들을 향해 나오지 말라고 손짓을 보내고 있다. AFP연합뉴스

"100% 맞힌 거예요. 그런데 가만있으라 하네요", 벤치클리어링 난장판…
오타니가 9회 로버트 수아레즈의 100마일 직구에 오른쪽 등을 맞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AFP연합뉴스

[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LA 다저스 오타니 쇼헤이가 극에 달한 신경전 확대를 억누르는 제스처로 찬사를 받았다.

20일(이하 한국시각)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4연전 마지막 경기. 이날 양팀은 3개의 사구를 주고받는 날카로운 신경전을 펼쳤다.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과 마이크 실트 샌디에이고 감독이 사구를 놓고 그라운드에서 맞부딪히는 볼썽사나운 장면이 연출될 정도였다.

3-0으로 앞선 샌디에이고의 7회초 1사 2루 상황.

다저스가 투수를 선발 야마모토 요시노부에서 루 트리비노로 교체했다. 타석에는 좌타자 브라이스 존슨. 투볼에서 트리비노의 3구째 91.6마일 커터가 존슨의 왼쪽 다리를 때렸다.

두 번째 사구는 9회초 1사후에 나왔다. 다저스 우완 잭 리틀이 93마일 직구를 던져 샌디에이고의 간판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 왼팔을 맞혔다. 이번 시즌 타티스가 다저스 투수로부터 맞은 3번째 사구였다.

이때 실트 감독이 반대편 다저스 더그아웃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왔다. 이를 본 로버츠 감독 역시 고함을 지르며 달려나왔고, 둘은 홈플레이트 뒤에서 맞부딪혀 말싸움을 벌였다. 금세 벤치클리어링으로 번져 불펜에 있는 투수들까지 합세했다. 그러나 주먹이 오가지는 않았다. 말리는 분위기였다. 로버츠 감독이 퇴장당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100% 맞힌 거예요. 그런데 가만있으라 하네요", 벤치클리어링 난장판…
9회초 페르난도 타티스 주이어가 잭 리틀이 던진 공에 맞고 쓰러지자 마이크 실트 감독과 데이브 로버츠 감독이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며 그라운드로 뛰쳐 나가 맞붙을 태세를 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100% 맞힌 거예요. 그런데 가만있으라 하네요", 벤치클리어링 난장판…
데이브 로버츠 감독이 9회초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가 잭 리틀의 공에 맞아 마이크 실트 감독이 뛰쳐 나오자 이에 대응해 그를 향해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있다. Imagn Images연합뉴스
9회말 다저스가 추격전을 펼치며 2-5로 따라붙었고, 계속된 2사 3루서 오타니가 타석에 들어섰다. 1루가 비어 고의4구 분위기였지만, 샌디에이고 마무리 로버트 수아레즈는 스리볼까지 던진 뒤 4구째 99.8마일 직구를 오타니의 몸쪽으로 던졌다. 피할 겨를도 없이 공은 오타니의 오른쪽 등을 강타했다.

다저스 더그아웃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고, 클레이튼 커쇼는 난간을 넘어 그라운드로 뛰어들 태세였다.


이때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던 오타니가 1루로 걸어가다 말고 더그아웃을 향해 왼손을 들어 흔들었다. 나오지 말라는 신호였다. 빈볼 시비로 제2차 벤치클리어링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오타니가 이를 제지한 것이다.


"100% 맞힌 거예요. 그런데 가만있으라 하네요", 벤치클리어링 난장판…
로버트 수아레즈가 9회말 오타니 쇼에히의 등을 맞히고 있다. AP연합뉴스

"100% 맞힌 거예요. 그런데 가만있으라 하네요", 벤치클리어링 난장판…
오타니가 9회말 로버트 수아레즈의 100마일 직구에 등을 맞고 화들짝 놀라고 있다. AFP연합뉴스
MLB.com은 '다저스 선수들은 필드로 뛰어들 태세였으나, 오타니가 1루로 나가면서 (나오지 말라고)손을 흔들었다. 수아레즈는 퇴장조치를 받았다'며 '이번 4연전 동안 8개의 사구가 나와 양팀은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이번 주를 보냈다. 오늘 4차전이 절정이었다'고 전했다.

현지 중계를 맡은 스포츠넷 LA의 해설위원인 다저스의 전설적인 1루수 에릭 캐로스는 "오타니가 더그아웃을 향해 동료들에게 가만히 있으라(stay put)고 손짓을 보냅니다. 난 괜찮다는 신호군요"라며 "보세요. 저 공은 100%, 완전 100% 오타니를 맞히려고 한 겁니다. 스리볼에서 그냥 볼넷을 줄 것이라고 봤는데, 도발을 한 것이죠. 논쟁의 여지는 없습니다. 그게 다가 아니예요. (오타니의 손 제스처를 보고)바로 저거에요. 저건 제대로 된 게 아니예요. 그래서 샌디에이고 입장에서는 (오타니가 받아주지 않으니까)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이는 겁니다"라고 했다.

즉 오타니가 샌디에이고의 도발을 무시해 버렸다는 뜻이다. 이어 캐로스는 "이건 오타니가 완전히 다른 수준에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신비로움이죠. 다시 한 번 오타니에게 전설(legend)이 더해집니다"라고 극찬했다.


"100% 맞힌 거예요. 그런데 가만있으라 하네요", 벤치클리어링 난장판…
오타니가 9회말 사구를 맞고 1루로 나가 1루수 루이스 아라에즈에게 악수를 건네고 있다. 사진=MLB.TV 캡처
오타니는 이어 1루를 밟은 뒤 샌디에이고가 수아레즈를 내리고 마빈 허드슨으로 투수를 교체하는 사이 샌디에이고 더그아웃으로 다가가더니 뭔가 시비를 거는 듯한 장면을 연출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LA 에인절스 시절인 2021년 한솥밥을 먹었던 내야수 호세 이글레시아스와 웃으며 몇 마디를 주고받는 것이었다.

오타니는 1루로 돌아와서는 1루수 루이스 아라에즈와 악수를 나누며 웃는 표정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연출했다. 캐로스는 "같은 팀 선수가 그랬다면 가만있지 않았을텐데, 오타니 본인은 괜찮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를 본 일이 없습니다. 또 하나의 레전드 수준을 보여줍니다. 레전드 수준이요"라고 평가했다.

다저스는 오타니의 볼넷 후 미구엘 로하스도 볼넷을 골라 2사 만루 찬스를 잡았으나, 상대의 폭투로 한 점을 보태 3-5로 좁힌 뒤 돌튼 러싱이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나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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