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올해도 스피드 전쟁이 한창이다. 투수들은 빠른 공에 중독돼 있다. 시속 100마일이 '뉴노멀(New Normal)'로 자리잡았다.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직구 평균 구속은 2021~2024년 93.7→93.9→94.2→94.3마일로 매년 증가세를 보였다. 올해는 94.6마일로 지난해 94.5마일서 0.1마일이 빨라졌다. 스탯캐스트의 투구 추적 시스템이 도입된 2018년(91.9마일)과 비교해 18년새 2.7마일이 증가한 것이다. 2000년과 비교하면 약 6마일이 빨라졌다.
현지 매체 ESPN이 최근 게재한 '2026년 MLB: 시속 100마일 투구의 증가를 해부한다'는 제목의 기사가 주목을 끈다. 현장을 뛰는 투수들이 전하는 '100마일의 위력'을 강조하고 있다.
2013~2016년까지 4년간 100마일대 공을 던진 투수는 87명이었다. 작년 그 숫자는 단일 시즌 최다인 82명이나 됐다. 올시즌에는 날씨가 따뜻해져 투수들 몸이 완전히 풀리기 전임에도 4일(한국시각) 현재 40명이 100마일을 찍었다.
100마일 이상의 공을 가장 많이 던진 투수는 밀워키 브루어스 제이콥 미저라우스키다. 올시즌 그가 던진 직구(포심 패스트볼) 392개 가운데 152개가 100마일 이상이었고, 평균 99.3마일을 나타냈다. 선발투수 중 가장 빠른 스피드다.
이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클로저 메이슨 밀러가 77개의 100마일대 빠른 공을 구사했다. 그가 뿌린 86개의 직구 중 75개가 100마일 이상이었고, 싱커 2개가 100마일을 찍었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우완 선발 버바 챈들러도 100마일대 공을 36개나 뿌렸으며, LA 다저스 오타니 쇼헤이도 100마일 이상의 직구를 13개 던진 것으로 나타난다. 오타니의 경우 2023년 생애 두 번째 토미존 서저리를 받은 뒤 오히려 구속이 증가했다. 직구 평균 구속이 투수로 커리어 하이였던 2022년 97.3마일에서 올해 97.9마일로 빨라졌다. 빠른 공이 최고의 무리라는 걸 누구보다 오타니가 잘 알고 있다.
불펜투수들의 전유물이었던 100마일을 요즘은 선발투수들도 어렵지 않게 던진다. 미저라우스키, 챈들러, 오타니를 비롯해 LA 에인절스 월버트 우레냐, 마이애미 말린스 에우리 페레스, 신시내티 레즈 체이스 번스, 에인절스 호세 소리아노, 토론토 블루제이스 딜런 시즈,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태릭 스쿠벌, 미네소타 트윈스 타지 브래들리, 뉴욕 양키스 캠 슐리틀러 등 11명의 선발투수가 올시즌 100마일 스피드를 찍었다.
요즘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피칭 프로그램에서 스피드 훈련이 필수인 만큼 아마추어 자원을 뽑을 때 스피드를 우선으로 본다고 ESPN은 전했다.
2024년 빅리그에 데뷔해 작년 처음으로 100마일 직구를 뿌린 LA 다저스 불펜투수 윌 클라인은 "내가 느끼기에 100마일은 이제 새로운 95마일 같다. 예전엔 95마일을 던지면 '빠른데'라고 했다. 지금은 그게 100마일이다. 슐리틀러가 100마일을 뿌리고 싱커도 98마일까지 던지는데, '우리는 뭐하고 있는 거야?'라는 느낌이 든다. 100마일이 점점 일상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25년 전 역사상 100마일을 최초로 던진 고교 투수로 알려진 콜트 그리핀은 2001년 캔자스시티 로열스에 입단했지만, 스트라이크를 못 던져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다 2025년 더블A를 끝으로 은퇴했다. 공만 빨라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스피드 경쟁에서 뒤처진다면 드래프트서 아예 지명받지 못할 수도 있다.
스쿠벌은 "시속 100마일 공이 팬들 입장에선 그게 얼마나 빠른지 이해하지 못한다. TV 화면상으론 100마일이 쉬워 보인다. 하지만 그게 보이는 것처럼 쉬운 게 아니다"고 했다.
스피드건이 없던 1910년대 강속구의 대명사였던 월터 존슨은 100마일 공을 던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1930~1940년대를 풍미한 밥 펠러는 98.6마일로 달리는 경찰 오토바이보다 빠른 공을 던진 것으로 유명한데, 당시 그가 사복을 입고 평지에서 던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역시 100마일을 찍었을 것으로 보인다.
공식적으로 100마일을 꾸준히 던진 투수는 놀란 라이언이지만, 그 이후에도 100이라는 숫자는 신화적인 특성으로 인식됐다.
챈들러는 "분명 100마일 공은 매력적이다. 그걸 스트라이크로 꽂는다면 얼마나 매력적이겠는가. 매주 마운드에 올라 100마일 공을 원하는 곳에 던지는 것이 목표"라며 "위대한 일을 하는 것에는 각자의 영역이 있다. 능력이 있다고 해도 노력을 해야 한다. 나도 이같은 멋진 일을 하려고 지난 수년 동안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스프링트레이닝 기간에 필라델피아 인근 고교의 16세 소년이 101.7마일이 찍힌 빠른 공을 뿌려 화제가 됐다. 콜 쿤이라는 이름의 이 선수는 올여름 대회를 준비하고 있는데,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잔뜩 벼르고 있다. 그는 3학년이 되는 2027년 드래프트 대상자다.
현재 고교 3학년 중 100마일 이상을 던지는 투수로 브로디 버밀라, 새비언 심스, 콜먼 보스윅, 에단 왁스맨이 주목받고 있다. 적어도 12명의 고교 투수들이 99마일 이상을 찍는다. 대학 선수로 폭을 넓히면 작년 103마일을 찍은 미시시피 주립대 1학년 잭 바우어, UC산타바바라의 잭슨 플로라도 관심의 대상이다. 작년 마이너리그 투수들 중 70명이 100마일 이상의 빠른 공을 던졌다고 한다. 올해도 27명이 100마일을 찍고 있다.
100마일이 보기 드문 시절, 저스틴 벌랜더가 메이저리그에 데뷔하기 전 마이너리그에서 상대팀을 긴장시킨 적이 있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산하 더블A 소속이던 2005년 6월 22일 뉴햄프셔 피셔캐츠(토론토 블루제이스 산하)전에 등판하자마자 100~101마일 강속구를 앞세워 첫 7명의 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잡아내자 야구장에 설치된 스피드건이 작동을 멈췄다.
당시 벌랜더 뒤에서 내야 수비를 하고 있던 현 피츠버그 감독인 돈 켈리는 "고장 난 것인지 일부러 그런 건지는 몰라도 상대는 자기팀 타자들이 100~101마일이라는 숫자를 안 봤으면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라며 "(요즘 100마일이)드물지 않다고 해서 여느 공과 똑같다고 봐서는 안된다. 타자들이 그걸 어떻게 쳐야 하는지 난 아직 모른다. 100마일짜리 공을 친다는 건 정말 어렵다"고 했다.
올시즌 100마일대 공에 대한 타자들의 슬래시라인은 0.165/0.248/0.187이다. 98마일(0.237/0.326/0.341), 95마일(0.267/0.355/0.432)과 비교하면 그 위력을 알 수 있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