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스포츠조선 고재완 기자] 야구라는 스포츠는 때로 미치도록 잔인하다. 마운드 위를 가득 메웠던 승리의 기운이 단 한 순간에 비명과 침묵으로 바뀌는 순간이 그렇다. 9회말, 마운드 위에서 고개를 숙인 채 주저앉은 삼성 라이온즈의 '루키' 배찬승의 모습은 올드 야구팬들에게 가장 잔혹했던 기억 하나를 강렬하게 소환했다. 바로 2001년 월드시리즈 마운드 위에서 외롭게 주저앉았던 '핵잠수함' 김병현의 데자뷔다.
삼성을 이끄는 박진만 감독 역시 어린 투수가 겪을 충격에 깊은 우려를 표하며 '보호막'을 가동했다.
지난 29일 대구 두산 베어스전에서 삼성의 마무리 김재윤이 4점 차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만루 위기를 자초하며 흔들린 상황, 벤치가 긴급하게 불을 끄기 위해 투입한 카드는 다름 아닌 '고졸 2년차' 배찬승이었다. 하지만 프로 무대의 중압감은 가혹했다. 배찬승은 끝내기 역전 만루 홈런을 허용하며 고개를 숙여야 했다. 마운드 위에서 홀로 감당해야 했던 그 차가운 고독감은 25년 전 양키스타디움의 김병현이 느꼈던 그것과 결코 다르지 않았다.
박 감독은 배찬승의 상태에 대해 "어제 워낙 어려운 상황에 올라갔다"라며 "선수가 심리적으로 좀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오늘 하루 정도는 휴식을 주려고 한다"고 밝혔다. 박 감독은 "어제 벤치에서 조금 무거운 것을 맡겨놓은 것 같아서 조금 그런 부분이 (미안하다)"고 자책했다.
덧붙여 박 감독은 "앞으로도 찬승이는 우리 팀에서 계속 불펜의 필승조 역할을 해줘야 하는 중요한 선수다"라고 강조하며 변함없는 신뢰를 보냈다.
김재윤의 피칭에 대해서는 "투수들은 참 1점도 주기 싫어하는 욕심이 있는 것 같다"고 허탈하게 웃으며 "안타를 맞더라도 빠른 카운트에서 맞으면 이해할 수 있다. 점수 차가 넉넉할 때 가장 안 좋은 상황이 자꾸 볼을 던지며 주자를 채워주는 것인데 어제 김재윤이 딱 그랬다"고 지적했다.
고재완 기자 star77@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