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돌이표 참사, 김영기 방 열에게 국제경쟁력이란?

기사입력 2015-10-06 07:10


2015 프로-아마 최강전 울산 모비스와 부산 KT의 경기가 15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렸다. 경기 전 김영기 KBL 총재가 개막을 선언하고 있다.
잠실학생=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5.08.15/

지난해 기자 간담회 때 일이다. 식사자리 막판 필자는 '국가대표와 국제경쟁력은 어떻게 향상시키실 생각이십니까'라고 물었다.

김영기 KBL 총재는 "중기적, 장기적 플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당장 확실한 계획은 없지만, 앞으로 면밀히 검토해 세워나갈 것"이라고 얘기했다. 추상적이었지만, '중기적 계획'을 언급한 부분은 긍정적이었다. 남자 대표팀 문제는 기본적으로 시스템의 결함에서 나오는 문제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의 결함은 모두 알고 있듯 전임감독제, 국가대표 상비군, 그리고 전력분석관 도입, 체계적인 귀화정책 등이 포함돼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대표팀의 소집과 대회를 치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본적인 처우 개선 문제도 핵심 중 하나다. 여기에서 핵심은 대회가 닥쳐서 나오는 '언발의 오줌누기식' 행정이 아닌 치밀하고 계획적인 시스템의 정립이었다. '중기적 계획'은 그런 의미에서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당시 대표팀의 지원은 재정적 주도권을 쥐고 있는 KBL이 하지만, 행정적 주도권은 KBA(대한농구협회)가 가지고 있다. 즉, 김영기 총재와 방 열 회장의 긴밀한 협력은 이런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이다.

지난해 스페인 농구월드컵을 대비, 대표팀은 진천선수촌에서 합숙을 하고 있었다. 방 열 회장은 체육관을 찾았다. 'KBL과 대표팀 관련해 어떤 협조 체계를 가져갈 것입니까'라고 묻자 방 회장은 "김영기 총재와 개인적으로 친하다. 원활하게 협조 체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구체적 플랜이 아닌 개인적 친분을 언급한 부분이 걸렸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워낙 오랜 세월을 봤다. 김영기 총재는 올해 한국나이로 80세, 방 열 회장은 75세다.

김 총재는 1950~60년대의 최고 스타 중 한 명이었고, 1969년과 1970년 아시아를 재패한 사령탑이었다. 방 회장은 1990년 이전까지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최고의 사령탑 중 한 명이었다.


2013년 1월 대한농구협회 회장직 출마를 선언했던 방 열 회장.


하지만 그들의 말은 '허언'이었다. 믿기가 힘들다.


그 뒤 나온 대표팀의 난맥상이 증거다. 한국남자농구는 또 다른 참사를 당했다. 중국 창사 아시아 선수권대회에서 6위를 했다.

이 가운데 많은 논란이 있었다. 유니폼(대표팀 유니폼이 제 때 지급되지 않아 재활용됐다는 논란) 도시락(음식이 맞지 않는 중국에서 경기 당일 15인분의 한국 도시락으로 대표팀이 버텼다는 논란) 비행기 좌석(2m넘는 최준용과 강상재를 1m99로 표기, 비지니스 아닌 일반석에 탑승시킨 논란) 손빨래(호텔 세탁비가 부족해 대표팀 선수들이 직접 손빨래했다는 논란) 등이 핵심이다.

일단 정확한 사실부터 살펴보자. 유니폼과 도시락 문제는 약간 과장된 측면이 있다. 유니폼의 경우 대표팀 소집일(7월20일)에 제 때 지급되지 못했다. 하지만 대표팀 스폰서 나이키도 고충이 있었다. 미국에서 물품이 매월 초에 도착한다. 때문에 운동화 및 여러가지 물품은 한국에서 조달할 수 있었지만, 재고가 없던 연습용 유니폼과 경기용 유니폼은 늦을 수밖에 없었다. 한 대표팀 선수는 "대표팀 유니폼은 서로간의 오해가 있었다. 나이키 측의 잘못은 아니다"라고 했다.

도시락의 경우 이번 대회에 한정된 문제는 아니다. 지난 필리핀 아시아선수권대회 때도 그랬다. 현지에서 조달했다.당시에도 저녁에는 라면과 햇반으로 끼니를 때우는 경우가 많았다. 스페인 월드컵 때도 인근 한식당에서 배달을 시켜 먹었다. 아시아선수권대회는 거의 매일 경기가 열리기 때문에 경기 당일에만 한정해 도시락을 주문했다는 부분도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물론 현지에 도착하기 전 사전답사가 없었던 부분, 그리고 도시락으로 때우는 관행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점은 고질적인 병폐다.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이 부분은 정말 심각한 문제다.)

비지니스 좌석은 협회의 행정 무능력을 보여준다. 대표팀 명단이 바뀌면서 좌석을 제 때 확보하지 못했다. 결국 2m가 넘는 선수에게 비즈니스 석을 제공한다는 규정을 스스로 어겼다.(여기에 또 하나, 방 열, 최명룡, 최부영, 박소흠 등 회장단이 중국 출장 시 비즈니스 석을 이용했다. 그들은 자신의 마일리지로 업그레이드를 했다고 한다. '일반석을 자신의 마일리지로 업그레이드를 했는데, 무슨 문제가 있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선수들의 비즈니스 석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협회의 핵심 임원들이다. 그 타이밍에 굳이 비즈니스로 업그레이드를 했어야 했을까. 전혀 위기 의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행동이다. 한국에서 창사까지의 비행거리는 약 2시간 30분 정도다.)

손빨래의 경우 조직위원회 측에서 유니폼과 양말 세탁은 공짜로 제공한다. 문제는 타이즈 등 기타 물품의 빨래다. 선수단비가 약 5000달러(500만원)가 지급됐는데, 예산에 압박을 받으면서 현지 세탁소를 제 때 물색하지 못했고, 결국 2인 1실의 어린 선수들이 손빨래를 했다. 당시 고참급 선수들은 '선수가 무슨 빨래를 하나. 그냥 놔두고 정 안되면 사비로라도 호텔에 맡기면 된다'고 만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급한 마음에 결국 손빨래를 하게됐다.

결국 이번 대표팀의 논란 핵심은 협회의 무능력이다. 방 열 회장은 이런 문제가 불거진 것에 대해 사과했다. 하지만 그 사과가 변명으로 느껴지는 이유가 있다. '앞으로 어떻게 고치겠다'는 구체적인 얘기는 없다. 핵심은 '협회 예산이 얼마되지 않는다. 대표팀 뿐만 아니라 청소년팀도 신경써야 한다'는 논리와 'KBL 등 지원이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는 읍소였다. (방 열 회장과 김영기 총재는 올해 대표팀에 관해 단 한차례도 미팅을 가진 적이 없다. 단지, 실무진들이 만나서 초, 중, 고 지원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대표팀 문제는 가볍게 언급됐다.)

올 시즌 대표팀 관리는 완전히 협회로 넘어갔다. KBL은 스포츠토토 지원이 끊어졌다는 이유로 대표팀 지원을 중단했다. 마치 앓던 이가 빠졌다는 것처럼 말이다. KBL은 이창수 전력분석관을 선임하는 비용을 지원했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들의 지원 미비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다. 적자폭이 심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상황을 쭉 보면 마치 공식처럼 고질적 문제가 있다. 연맹은 무관심하고, 협회는 무능력하다.

한국남자농구는 매번 그랬다. 필자는 2005년과 2009년 참사의 현장에 있었다. 2005년 도하 아시아선수권대회(당시 한국은 처음으로 3위 아래로 떨어진 4위를 했다.) 당시 전창진 대표팀 감독은 급변하는 중동권 국가의 전력파악이 전혀 할 수 없었다. 당시 카타르는 5명의 귀화선수를 데리고 있었다. 귀화 열풍의 시작점이었다. 그때도 단지, 손대범 점프볼 편집장이 준 몇 장의 CD가 자료의 전부였다. 전력 분석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모텔을 전전하면서 합숙하던 때였다. 2009년 톈진 아시아선수권대회도 마찬가지였다. 2010년부터 KBL은 의욕적으로 대표팀 지원을 했지만, 장기적 플랜은 없었다. 결국 지원은 다시 줄어들었고, 끊어졌다. 희망없는 도돌이표 같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참사 시리즈다. 한 대회도 제대로 준비하고 싸운 적이 없다.

지난해 스페인 농구월드컵을 준비할 때는 제대로 된 연습 파트너가 없었다. 기본적인 시차적응을 하지도 못한 채 현지에 도착했다. 유력한 1승 상대였던 앙골라에게 69대80으로 패했다. 전반 코트적응이 되지 않았고, 조성민과 문태종의 믿었던 오픈 3점포가 번번이 빗나갔다. 후반에는 결정적인 수비 로테이션 미스로 상대에게 3점슛을 헌납했다. 기량의 문제가 아니라 부족한 연습파트너와 시차적응의 부작용이 실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결국 한국은 1승도 따내지 못한 채 5전 전패.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대표팀 감독 자리는 표류했고, 결국 우여곡절 끝에 김동광 감독이 맡았다. 당연히 대표팀은 굳건한 기준이 없었다. 대학생 대표팀은 대학리그에 차출됐다.(연고전, 혹은 고연전이라 불리는 정기전에 대표팀 선수들이 차출됐다는 점은 세계적인 비웃음거리다.) 세대교체 혹은 올림픽 티켓 확보 사이에서 구체적인 목표는 없었다. 부상자가 속출했고, 결국 대학생들이 대거 대표팀에 들어왔다.(그런데 대표팀에 정작 필요했던 김준일, 정영삼, 양희종 등은 리그에서 잘 뛰고 있다.)

결국 주전 의존도가 극대화됐다. 중국전은 잘 싸웠다. 벤치 미스와 홈 어드밴티지가 있었지만, 중국은 못 넘을 벽은 아니었다.(중국의 경우 세대교체라는 강렬함이 있지만, 포스트가 약하고, 리딩 가드의 외곽 득점과 패싱도 부족하다. 이젠렌과 저우치 등은 3번에 가까운 4번의 움직임을 보인다. 저우치 궈아이룬 등의 발전속도로 볼 때 못 넘을 벽은 아니다. 단기적으로 슬램덩크에서 안 감독이 최강 산왕공고와의 일전을 앞두고 국지전 연구를 한 것처럼 준비한다면(현실에서는 지난해 유재학 호가 가장 가깝다) 충분히 잡을 수 있는 팀이라는 개인적 생각이다.) 충격적 역전패 이후 결국 카타르에게 뼈아픈 일격을 당했고, 8강에서 이란을 만났다. 항상 이런 식이다. 충분히 개선될 수 있는 아쉬운 부분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성적 자체가 달라질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결국 한국농구의 참사 시리즈는 철저하게 반성하지 못한 뼈아픈 결과물이다.

최근 김영기 총재와 방 열 회장의 행보를 보면, 도대체 '국제경쟁력'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궁금하다. 다시 한번 말하면 국제경쟁력은 국내리그의 단순한 '품질보증서' 이상이다. 국제대회에서 세계적인 선수와 팀을 상대로 대등하게 경쟁하고 아름다운 경기를 하는 모습을 보는 건 단순한 희열 그 이상이다. 일반 팬에게 국내리그의 관심을 갖게 할 강력한 매개체이기도 하다. 프로야구에서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하지만 농구계 두 거두의 행보는 사뭇 다르다. 예전 필자에게 했던 말과도 다르다. 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