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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닷컴 이우주 기자] '마이웨이' 문주란이 자신의 과거를 덤덤하게 돌아봤다.
문주란은 '60년대 국민여동생'으로 불릴 만큼 데뷔 직후부터 인기를 자랑했다. '동숙의 노래'로 데뷔한 문주란은 연속으로 히트곡을 내며 승승장구 했다. 이에 힘입어 문주란은 본격적으로 일본 진출까지 하며 엔카의 여왕까지 꿈꿨다. 일본 활동을 하며 한국에서는 잠시 활동이 뜸한 듯 했으나, '백치 아다다',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 등의 곡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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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스님이 문주란에게 더 각별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문주란은 "내가 엄마가 없기 때문에 친정이란 두 글자가 없다. 엄마가 살아 계셨더라면 나를 이렇게 두지 않았을 거 아닌가 싶다"며 "(스님이) 내가 온다 하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만 차려놓은 걸 보니까 많이 뭉클했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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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이였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셨던 순간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문주란은 "우리 엄마가 너무 아들 때문에 한이 맺히니까 새벽에 산에 가서 아들 낳게 해달라 기도 했다. 어머니가 일곱째를 임신하던 중 전치태반 진단을 받았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병인데 아버지가 엄마를 때리니까 뱃속에서 애가 놀랐나 보다. 애가 거꾸로 해서 엄마 숨을 막았다. 어렸어도 그 산부인과를 기억한다. 그 산부인과로 갔더니 큰 병원으로 모시고 가라 하더라"라고 밝혔다. 그러나 큰 병원에 가도 손 쓸 수 없이 어머니를 떠나 보내야만 했다. 문주란은 "엄마가 한창 좋을 나이에 가셨다"고 안타까워했다.
문주란은 "엄마 조금 더 오래 사시지, 내가 어른이 됐을 때 가시지 하는 아쉬움이 있다. 왜 아버지가 엄마를 그렇게 아프게 해서 왜 빨리 가게끔 했냐고, 왜 학대를 해서 꽃다운 나이에 가시게 했냐고 한다"며 "아버지는 한량으로 여자들 몇을 거느렸다. 그렇게 원망을 한다"고 털어놨다.
그래도 지금은 아버지를 보고 싶다는 문주란. 문주란은 "(아버지가) 밉기도 했지만 아버지가 고독하셨고 많이 후회하는 게 있었구나 싶다"며 "우리 아버지는 너무 무서웠다. 데뷔하고는 몇 년간 못 뵀다. 너무 무서웠다. 그래도 주변 사람들이 '딸이 가수 문주란이 됐다며' 하니까 좋아하신 거 같더라. 그래도 표현 안 하셨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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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남진과 스캔들이 불거졌던 문주란. 두 사람은 박춘석 사단으로 그저 절친했던 사이였지만 루머는 걷잡을 수 없이 퍼졌고, 어렸던 문주란은 현실을 견디기가 버거웠다고. 문주란은 "나는 너무 어렸다. 어린 애한테 되지도 않은 엉터리 이야기가 나오니까 나름 잡음이 있었다"며 "그때 술을 먹고 사고가 난 거다. 보름 만에 눈을 떴는데 배호, 이미자 씨가 와서 다들 나를 살려달라고 하더라"고 떠올렸다.
하지만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문주란은 "스무살 넘어서 대구 공연에 갔다. 부모가 없어 사람을 많이 사랑하게 되고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첫사랑이 유부남이었다. 왜 그런 사람을 만났을까. 어리석은 사랑을 했구나 싶다"고 유부남과의 사랑을 고백했다. 이후 문주란은 부인에 의해 방소국 앞에서 대낮에 납치까지 당했다고. 문주란은 "내가 만약 그런 상처를 주는 사랑을 안 했더라면 좋은 데 시집 가지 않았을까 싶다. 갔다가라도 왔을 텐데. 참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문주란은 7년 전 그 남자를 마주친 적이 있다며 "객석에 앉아있더라. 나는 오랜만이라 인사했는데 날 보고 당황하고 미안해하더라"라고 밝혔다.
wjle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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