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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산업의 1세대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게임사 넥슨을 창업하고 경영했던 김정주 NXC(넥슨 지주사) 이사가 지난달 말 미국에서 세상을 떠났다.
물론 김 이사는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2016년 이른바 '넥슨 게이트' 사건으로 자수성가 기업인으로서의 이미지가 크게 실추됐다. 또 부분 유료화 모델을 세상에 처음 선보인 후 지나친 과금을 유도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하지만 넥슨을 성공적으로 일궈내 한국 게임산업의 위상을 한껏 끌어올렸고 각종 사업에 선제적 투자를 단행하며 벤처 정신을 계속 보여주는 한편 어린이재활병원 설립이나 벤처펀드 조성, 거액의 모교 발전기금 납부 등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사회공헌 사업에 나선 것은 모범적인 사례였다. 어쨌든 김 이사가 황망하게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넥슨의 방향성을 비롯한 큰 변화가 예상된다.
▶기인의 행보
1968년생으로 올해 54세에 접어들었던 김정주 이사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후 카이스트를 거쳐 1994년 넥슨을 창업했다. 이전에는 기업체의 홈페이지 구축 등 IT 사업을 하다가 세계 최초 그래픽 MMORPG로 인정받은 '바람의 나라'를 개발하고 출시하면서 본격적으로 게임산업에 뛰어들었다. 대학 시절 일본 유학 중 게임 콘텐츠의 엄청난 가능성을 직접 목도한 후 대학원 동기이자 '리니지의 아버지'로 통하는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와 손을 잡은 것이 그 시작이었다. 이후 '메이플스토리', '카트라이더' 등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넥슨의 존재감을 알렸고, 2008년 '던전앤파이터'를 개발한 네오플을 인수 합병한 후 이 게임을 중국에서만 매년 1조원이 넘는 매출을 찍는 국민게임으로 키우며 학교 선배이자 절친인 김택진 대표의 엔씨소프트와 함께 넥슨을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게임사로 등극시켰다.
2015년 엔씨소프트와 경영권 분쟁을 하다 김택진 대표와 갈라지게 됐고, 2016년 '넥슨 게이트'로 검찰과 법원을 오가게 되면서 우울증이 생기고 게임산업에 대한 열정이 점점 식게 됐다는 얘기도 있었다. 하지만 김 이사는 이 시기를 전후해 NXC를 통해 유아용품으로 유명한 노르웨이의 스토케, 암호화폐 거래소 비트스탬프와 코빗, 레고 호환 블럭 제조사 브릭링크 등을 인수하고 제주도에 넥슨컴퓨터박물관을 짓고 운영하는 등 새로운 사업 구상에 더욱 적극 나서게 됐다. 2019년 1월 NXC 지분을 매각하겠다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지만 최대 15조원에 이르는 인수가를 부담할 적절한 국내외 파트너를 찾지 못해 결국 6개월만에 무산됐다.
이후에도 김 이사는 넥슨재단 등을 통해 자신이 일군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공헌 활동을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한편 젊은 기업가들의 멘토 역할을 했고, 넥슨재팬(넥슨 일본법인)을 통해 비트코인을 매수하는 등 최근까지도 다양한 미래 사업 전개를 위해 관계자를 직접 찾아가는 적극적인 행보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자서전 '플레이'를 통해 넥슨을 디즈니와 같은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성장시키고 싶다는 자신의 원대한 꿈을 채 이루지 못하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게 됐다.
▶넥슨의 변화는
김 이사의 별세로 넥슨의 변화는 불가피해졌지만 당장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넥슨재팬은 오언 마호니, 넥슨코리아는 이정헌, NXC는 이재교 대표 등 전문 경영인이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넥슨은 올해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을 시작으로 오랜만에 다양한 신작을 선보이며 2020년 기록한 연 매출 3조원 돌파에 다시 도전하고 있다. 네오플 매각 이후에도 김 이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2020년부터 실질적으로 개발조직을 맡고 있는 허 민 원더홀딩스 대표의 더 적극적인 등판도 예상해볼 수 있다. 다만 인수합병이나 매각 등 기업의 명운을 건 결정은 철저히 김 이사가 주도적으로 결정했기에, 향후 어떻게 전개될지는 미지수다.
또 도쿄증권거래소에서 넥슨재팬의 시가총액은 2일 현재 2조 4575억엔(약 25조 7695억원)에 이르는데, NXC가 넥슨재팬의 47.4%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김 이사의 지분이 67.49%이기에 지배구조에 대한 변화는 불가피해졌다. 이 때문인지 이날 하루에만 넥슨 주가는 6.17% 오르기도 했다. 대주주의 사망과는 별개로 냉혹한 시장 논리인 셈이다. 여기에 김 이사의 부인 유정현 NXC 감사가 29.43%, 두 딸이 0.68%를 각각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등 NXC 계열사 중 유일한 상장사인 넥슨재팬으로만 산정한 현재 시총 기준으로도 12조원이 넘는다. 상속세만 수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데 만약 이를 감당하기 힘들 경우 시장에 매물이 나올 수 있고, 2019년처럼 국내외 게임사와 투자사들이 다시 인수전에 적극 나설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김 이사가 생전에 자녀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승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공개적으로 한 상황인데다, NXC가 성장성이 높은 사업군을 거느리고 있기에 향후 다양한 경우의 수가 나올 수 있다.
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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