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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 컬링은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아름다운 한편의 동화를 완성했다.
평범한 시골 소녀인 이들은 10년 이상을 같이 했다. 큰 주목을 받지 않았지만 묵묵히 빙판에서 스톤을 굴리며 세계 정상권을 위해 실력을 키웠다. 처음으로 국제 무대에 데뷔한 건 2012년 뉴질랜드에서 열렸던 아시아태평양대회였다. 당시 3위를 했다. 당시 '팀 킴'은 2014년 소치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잡고 있었다. 하지만 시련이 닥쳤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목표의식이 크게 흔들렸다. 팀 킴 멤버들은 며칠 동안 방에 틀어박혀 프라모델을 조립하면서 아픔을 달랬다. 당시 그들의 마음을 다잡는데 도움을 준 이가 김경두 부회장이다. 한국 컬링의 대부로 통하는 김경두 부회장은 김은정이 다시 일어나 평창올림픽을 향해 다시 뛸 수 있도록 용기와 동기부여를 해줬다.
다시 4년의 경험이 쌓인 김은정의 '팀 킴'은 2017년 4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승리, 평창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그리고 '팀 킴'은 평창올림픽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한국은 예선 9경기에서 8승1패 1위로 준결승에 진출, 일본을 연장 11엔드에 극적으로 제압하고 결승에 올랐다. 한국은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김은정의 마지막 스로 샷으로 1점을 따내며 라이벌 일본을 제압했다. 승리를 확인하고 스킵의 무게감에서 벗어난 그는 예선 패배를 설욕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이 컬링 소녀들은 이번 대회 내내 자신의 치솟은 유명세를 실감하지 못했다. 대회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휴대폰을 감독에게 자진 반납하고 선수촌과 경기장만을 오갔다. 인터넷에서 그들의 얘기가 급속도로 퍼져 전국구 스타가 됐지만 '팀 킴'은 은메달을 목에 걸때까지 잘 몰랐다.
한국에서 컬링은 비인기 종목이다. 생소한 컬링이 사실상 처음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게 4년전 소치올림픽 때였다. 그때 한국 여자 컬링은 첫 올림픽에 도전, 8위(10팀 중)를 했다. 당시엔 한국을 대표했던 선수들의 귀여운 용모 때문에 '컬스데이(컬링+걸스데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다.
'팀 킴'을 지도한 김민정 감독은 "우리 팀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팀이 아니다. 10년 이상을 보고 꾸준히 만들어온 팀이다"고 말한다. 김 감독은 김경두 부회장의 딸이다. 김 감독은 "한국에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건 무척 어렵다. 우리는 새 역사를 썼다. 개척하는 사람들을 존중해줬으면 좋겠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그는 그동안 경제적으로나 행정 지원이 부족했던 부분에 큰 아쉬움을 갖고 있다.
현재 대한컬링경기연맹은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말 파행 운영으로 대한체육회 관리단체로 지정되면서 리더십이 부족한 상황이다. 그로 인해 대표팀은 연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이번 올림픽을 준비했다. 홈(강릉컬링센터) 이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지금까지 '팀 킴'은 순탄한 '꽃길'을 걸어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평창올림픽에서 금메달 만큼 값진 은메달을 국민들에게 선사했다. 김은정을 비롯한 5명은 아쉬움과 기쁨의 눈물을 쏟았다. 김은정은 "중요한 경기 마다 져 한때 이름을 김'금'정으로 개명할까도 고민했다. 앞으로 우리 팀은 4년 다시 지금 처럼 똑같이 훈련할 것이다"고 말했다. 김영미는 "제 이름을 할아버지가 지어주셨다. 옛날 이름 같아서 개명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 영미라는 이름이 자랑스럽다"며 웃었다.
강릉=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