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는 승부의 세계. 그러니 승리에 도취해 자만할 필요도 없고, 패배에 굴복해 좌절할 필요도 없다. 굳건하던 철옹성도 언젠가는 무너지는 법이니 말이다.
'백주부' 백종원의 독주체제로 굳어질 것 같았던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마리텔)에 미묘한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백종원에 필적할 만한 막강한 도전자가 나타났기 때문. 백종원의 생활 요리에 마술로 승부수를 던진 일루셔니스트 이은결이다.
'마리텔' 다섯 번째 방송에 참여한 이은결은 인터넷 본방송을 본 네티즌 사이에서 먼저 입소문을 탔다. 그 방송은 지난 20일과 27일 2주간 TV로 나간 뒤 더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눈을 의심케하는 현란한 마술 퍼포먼스는 없었다. 대신 눈속임이 뻔하게 드러나는 손쉽고 간단한 마술과 열정적인 패러디 연기로 마치 스탠딩 코미디쇼 같은 재미와 웃음을 선사했다. 마술은 비장하고 진지하다는 편견. 이은결은 유리잔을 산산조각 내는 마술로 그 편견을 깨뜨렸다.
'마리텔'에서 선보인 이은결 마술의 특징은 한 마디로 '병맛'이다. 세계적인 마술사라는 명성을 재치있게 비트는 반전의 쾌감과 잔재미가 쏠쏠하다. 1부에선 얼굴과 몸이 따로 움직이는 동작을 통해 마치 얼굴을 몸에 합성한 듯한 개인기와 젓가락을 콧구멍에 넣었다 빼는 황당 마술 등을 선보였다.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몇 가지 트릭까지 덤으로 공개하니 이은결의 쇼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건 당연지사.
2부에선 이은결의 쇼맨십이 빛났다. '다채널 방송'이라며 그가 준비한 건, 영화 채널과 연애 채널. 영화 '비스티 보이즈'의 한 장면을 빌려와 칫솔이 무수히 늘어나는 마술과 함께 명장면을 패러디했고, 머플러가 손에서 사라지는 마술 이후엔 영화 '7번방의 선물' 류승룡을 따라해 채팅창이 난리가 났다. 사랑의 메시지를 적은 종이를 태워 재를 만든 뒤 그 재를 팔뚝에 비비자 메시지가 나타나는 희한한 마술을 선보이고는 "미리 팔에 립밤으로 메시지를 그려놓으면 된다"고 '황당 비법'을 전수해 웃음을 자아냈다. 심지어 '아저씨' 원빈의 명대사를 따라하고는 혼자서 껄껄 웃으며 좋아하기도 했다. 원맨쇼를 방불케 하는 맹활약이었다.
무엇보다 단연 압권은 비둘기와 인간을 합성한 '인둘기' 마술. 인둘기 그림을 태블릿PC로 옮기고 그 인둘기가 박스 안에서 실사로 튀어나왔을 때, '병맛'은 절정에 달했다. 인둘기의 정체는 바로 '비둘기 탈을 쓴 사람'. 뭔가 어마어마한 걸 기대한 시청자들의 허를 찌르는 반전에 '꿀잼'이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마술에 코미디까지 버무려져 연신 웃음이 터지는 방송이 완성됐다.
이날의 우승은 어김없이 백종원의 차지였다. 고추장찌개, 꽃게탕, 참치감자조림, 수박주 등 실전형 캠핑 요리와 구수한 '드립'으로 5연승을 달렸다. 시청률은 무려 47.1%. 이은결은 이에 못 미치는 10.3%로 2위에 올랐다. 좁히기 힘든 격차지만, 기대감을 갖기엔 충분한 시청률이다.
백종원의 요리만큼 이은결의 마술은 독창적이고 개성이 넘친다. 자신만의 콘텐츠가 확실하다. 무대에서의 경험 덕에 시청자와의 쌍방향 소통에도 능하다. 이는 분명한 강점이자 무기다. 흥밋거리나 취미생활 정도로는 시청자를 사로잡을 수 없다는 걸 백종원에 이어 이은결이 증명했다.
백종원의 독주가 길어질수록 '마리텔'은 힘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마리텔=백종원'으로 굳어질 뻔한 구도에 이은결이 균열을 냈다. 이은결의 등장은 백종원을 긴장케 한다. 이은결은 28일 진행된 '마리텔' 인터넷 방송에도 참여했다. 이미 인지도가 쌓였고 입소문도 났다. 첫 번째 방송보다는 더 강력한 한방을 날릴 것임에 틀림없다. 당장에 순위를 뒤집긴 어렵겠지만 시청률엔 분명한 변화가 생길 것이다. 백주부의 독주냐, 이은결의 반란이냐. 경쟁 구도의 시너지 속에 '마리텔'은 '고공 행진'을 예고하고 있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