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견된 인재나 다름없다."
한 프로스포츠계 관계자는 최근 잇따른 프로스포츠 도핑 파문에 관해 이같이 지적했다.
최근의 도핑 파문 사례를 보면 도핑에 대한 부실한 인식·학습이 배후에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책임이 가장 큰 선수 본인은 물론 소속팀과 연맹·협회의 도핑 대응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도핑 예방에는 왕도가 없다. 도핑 예방이 생활의 일부가 되도록 숙지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 프로스포츠는 아마추어 국가대표팀에 비해 관리체계가 턱없이 허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의 프로스포츠계 행태를 볼 때 최근 사태는 터질 게 터진 것이나 다름없다.
프로스포츠는 특성상 선수들의 출퇴근, 외출·외박이 자유롭다. 선수촌 생활을 하는 아마추어 국가대표팀과는 비교가 안된다. 게다가 도핑에서 흔히 문제가 되는 영양보충제, 건강식품 등을 섭취할 때 소속팀 보고·검증 절차가 누락되기 일쑤다. 최근 도핑 사건을 일으킨 강수일(프로축구) 최진행(프로야구) 곽유화(여자프로배구)는 공통적으로 "문제가 되는지 몰랐다"고 한다. 2013년 말 프로농구 김도수가 부산 KT에서 고양 오리온스로 이적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도핑 사건도 팀 트레이너와 별 상의없이 체력보충을 위해 보약을 지어먹었다가 비롯된 것이다.
선수들 인식이 이렇게 낮다면 관리체계로 통제를 해야 하는데 프로스포츠는 여기서도 취약했다. 선수들은 몸이 생명인 만큼 갖가지 보양식·영양제를 자주 접한다. 이들 식품에 금지약물이 포함돼 있는지는 반드시 확인을 거쳐야 한다. 관련 지식이 많은 의무 트레이너에게 보고하거나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 홈페이지에서 약물 검색으로도 가능하다.
하지만 프로선수들은 주변에서 흔히 잘 먹고 있고, 별 문제가 있겠느냐는 안일한 생각에 보고조차 누락하는 게 허다하다. 구단도 선수 사생활을 일일이 감시하기 어려워 사실상 손을 놓는다. 그렇다면 평소 도핑 교육이라도 철저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프로스포츠의 경우 시즌 개막전 1년에 한 번 정도 연맹·협회 주관으로 순회 도핑교육을 하는 게 전부다. 프로배구는 신인 선수 오리엔테이션 때 도핑교육을 하고 평소에는 구단에 협조 공문을 보내는 수준이다. 프로농구 사무국장을 지낸 A씨는 "선수들이 어쩌다 한 번 받는 연맹의 교육을 요식행위로 여기기 십상이고, 개인 식품 복용시 팀에 보고하라고 하지만 대부분 흘려들어 현장에서의 관리가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에 반해 국가대표팀의 관리체계는 천지차이다. 연중 국제대회 출전이 많은 배드민턴대표팀의 경우를 살펴보자. 이득춘 대표팀 감독은 "도핑이라면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다. 선수와 코칭스태프 모두 세뇌받다시피 교육을 받아 도핑 예방활동은 생활화돼 있다"고 전했다. 국가대표 선수들은 KADA와 대한체육회, 종목별 협회의 주관에 따라 1개월에 1∼2번씩 도핑교육을 받고 있다. 기술 발달과 함께 금지약물 종류도 해마다 급증하는 까닭에 교육내용도 계속 업그레이드돼야 한다. 반복적인 교육으로 반도핑 중요성이 질리도록 각인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보고·관리체계도 철통같다. 예를 들어 어느 선수가 보약을 갖고 오면 의무트레이너-코치-해당 종목 협회 담당자-감독의 순으로 금지약물 검증을 거쳐야 한다. 또 감독 판단에 의문이 생기면 대한체육회 주치의나 KADA의 전문가에 의뢰해 '안전하다'는 판정을 받고 나서야 복용할 수 있다. 2중, 3중이 아닌 5∼6중의 검증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감기에 걸린 선수가 외부 병원을 이용할 때도 지정 병원을 가야 하며 의무 트레이너가 반드시 동행해 처방전을 확인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해 도핑 파문을 일으킨 박태환은 같은 국가대표이지만 개인훈련을 하는 등 다른 국가대표와는 다른 생활을 하기 때문에 관리 허점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세계반도핑기구(WADA)와 종목별 국제연맹·협회는 검사단을 '암행어사'처럼 시시때때로 파견해 세계랭킹 상위 선수들을 집중 감시한다. 이 감독은 "암행 검사단이 새벽 6시에도 들이닥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휴대폰을 24시간 열어두고 있어야 한다. 선수도 그렇지만 코칭스태프도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다"면서 "예방이 최선의 치료법이듯, 강력한 관리체계가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흔히 도핑 관련 징계가 아마 선수에 비해 프로 선수에게 크게 약한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느슨한 프로스포츠의 도핑 대응 체계를 먼저 짚어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