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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야신'은 왜 '노히터 신인선발'을 내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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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김성근 감독의 '노히트 투수 교체'는 과연 무엇을 노린 것이었을까.

25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는 오랜만에 선발투수의 호쾌한 투구쇼가 펼쳐지고 있었다. 선발진이 줄줄이 빠진 상황에서 시험적으로 등판한 신인 우완투수 김민우는 이날 리그 1위 삼성 라이온즈 타선을 상대로 5회 2사까지 볼넷 4개만 허용한 채 '노히트 노런' 피칭을 했다.

최고구속 146㎞의 빠른 볼을 몸쪽으로 찔러넣은 뒤 100㎞ 초반대의 느린 커브로 땅볼이나 헛스윙을 유도하는 투구 패턴 앞에 삼성 타선은 옴짝달싹 못했다. 마침 팀 타선이 1회말 2점을 뽑아준 덕에 김민우는 데뷔 첫 선발승을 향해 성큼성큼 전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2-0이던 5회초 2사 2루에서 김 감독은 김민우를 베테랑 좌완 불펜 박정진으로 교체했다. 그리고 박정진은 첫 상대인 구자욱에게 3구 만에 우전 적시타를 맞아 점수를 내줬다. 이 점수는 김민우의 자책점으로 들어갔다. 김민우로서는 '노히트'를 하고도 1자책점을 기록한 셈이다.

이 투수 교체에 관한 팬들의 반응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대부분 "좌우놀이(좌타자 상대용 좌투수의 표적등판)를 위해 신인투수의 선발승 기회를 뺐었다"는 식이다. 그렇다면 과연 김 감독은 왜 '노히터' 신인투수를 바꿨을까. 그것도 아웃카운트 1개만 잡으면 승리 요건을 갖출 수 있음에도. 그리고 이 투수 교체는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평소 김 감독의 경기 운영 스타일에 기반해 '노히트 신인투수 교체'의 배경과 결과를 짚어본다.

▶김민우의 가능성과 한계

이날 경기 전 김 감독은 선발로 나선 김민우의 교체 시기에 관해 "별도로 투구수 제한은 하지 않고 경기 흐름에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곧 투구수와는 상관없이 구위가 떨어지거나 긴박한 승부처에서는 언제든 교체할 수 있다는 의미다. 김민우의 가능성에 관해서는 이미 지난 1월 고치 스프링캠프 때부터 주목했던 김 감독이다. 그래서 선발진에 구멍이 생긴 이 시기에 중요한 삼성전에 선발로 투입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민우를 '무한신뢰'하기도 애매하다. 분명 가능성은 있지만, 아직 1군 경기 선발 경험이 단 한 차례도 없는 신인 투수이기 때문이다. 잘 던지다가도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등판 기회를 주는 것 못지 않게 교체 타이밍을 잡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김 감독은 더 예민하게 김민우의 투구를 관찰하고 있었다. 이는 4회초 1사후 김민우가 최형우에게 이날 세 번째 볼넷을 허용했을 때 김 감독이 이례적으로 직접 마운드로 올라온 것에서 알 수 있다. 김 감독은 마운드에서 포수 조인성과 함께 김민우의 상태를 점검하고, 몇 마디 조언을 한 뒤 다시 내려갔다. 이때 이미 한 차례 '교체'를 염두해뒀다고 봐도 무방하다. 결국 김민우는 이후 채태인과 이승엽을 삼진과 1루 땅볼로 잡아내며 이닝을 마쳤다.

그런데 김 감독은 왜 올라갔을까. 경기 후 김 감독은 "구위가 떨어지던 김민우가 숨을 몰아쉬며 덕아웃을 자꾸 보길래 어디 아픈가 해서 나갔다. 물어보니까 '멀쩡합니다' 하길래 다시 내려왔는데, 이때 다시 구위가 살아났다"고 밝혔다. 김민우의 말도 일치한다. "감독님이 올라오셔서 깜짝 놀랐는데, 오히려 긴장이 풀리면서 많은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이 시점에 김민우의 투구수는 정확히 69개였다. 이는 지난 4월12일 부산 롯데전때 기록한 김민우의 시즌 최다투구수와 타이기록이다. 구위가 충분히 떨어질 수 있는 시점. 적절한 교체 시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김 감독은 이미 "투구수에는 제한을 두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5회에도 올렸다. 한 번 더 믿고 기회를 줬다고 해석 가능하다. 내심 김민우가 5회를 삼자범퇴로 막고, 6회부터 불펜을 가동하는 최상의 시나리오를 바라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김민우는 5회초 선두타자 박석민에게 또 다시 8구 승부끝에 볼넷을 내준다. 이때의 투구수는 77개. 김 감독의 계산은 여기서 틀어졌다. 김민우에게 남은 아웃카운트 3개를 다 맡기는 건 '불안 요소'가 너무 많다. 특히 1번 구자욱이 부담스럽다. 이미 앞서 김민우의 공을 영리하게 골라내 볼넷을 얻어낸 바 있다. 이 시점에서 김 감독 스타일의 최적 시나리오는 김민우가 8번 이흥련과 9번 김상수를 잡아주고, 1번 좌타자 구자욱 타석 때 박정진 카드를 투입해 이닝을 끝내는 것이다.

▶데이터와 확률, 그리고 한화의 미래

이런 시나리오는 김 감독이 워낙에 '데이터'와 '확률'을 중요하게 고려하기 때문에 예상가능하다. 이미 경기 전에도 김 감독은 "전날 5회초 구자욱 타석 때 박정진을 투입했으면 쉽게 갈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김 감독의 계산에서는 박정진이 구자욱을 잡을 수 있는 '최적 카드'인 것이다. 이 믿음은 데이터에 기반한다. 구자욱은 한화 투수들 중에서 박정진과 김기현에게 나란히 3타수 무안타로 가장 약했다. 그런데 김기현은 이날 1군 엔트리에서 빠졌다. 확률상 구자욱을 가장 쉽게 잡을 수 있는 투수는 박정진이다.

결국 이날 5회초 2사 2루 구자욱 타석 때 박정진의 투입은 김 감독 스타일의 야구에서는 당연한 선택일 수 밖에 없다. 우선 김민우는 3일전인 22일 수원 kt전에서 62개의 공을 던졌고, 이날은 개인 한경기 최다 투구수를 15개나 넘겼다. 힘이 넘치는 신인이지만, 구위는 분명 떨어져가고 있었다. 앞으로 등판 일정도 배려해야 한다. 더 이상 길게 가는 건 무리다.

또 앞서 1회와 3회 두 번의 승부를 통해 구자욱의 눈에 익숙해진 우완 신인투수 김민우의 공보다는 상대적으로 좌완 베테랑 박정진이 구자욱을 잡을 확률이 더 크다고 판단한 점도 배경이다. 김 감독은 "구자욱이 3회에 김민우의 공을 영리하게 골라내더라. 한 번 더 승부하면 위험하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구자욱은 우투수 상대타율(0.386)보다 좌투수 상대타율(0.279)이 1할 이상 낮다. 그 중에서도 박정진에게는 모조리 패했다.

이렇게까지라도 해서 김 감독이 얻고자 한 것은 '한화의 승리'였다. 한화는 전날 삼성전 패배로 인해 6월23일 이후 한 달만에 6위로 떨어졌다. 한 번 더 지면 3연패를 당하는 데다 중위권 싸움에서 주도권을 내줄수도 있었다. 그래서 25일 경기는 반드시 이겨야 했다. 그런데 5회까지 2점차 리드는 삼성 타선을 고려하면 사실 아무 차이도 아닌 것이나 다름없다. 승리를 확정짓는 숫자가 아니다. 더구나 한화가 올해 상대를 2득점 이하로 막고 이긴 적은 지난 4월24일 대전 SK전(2대0 승) 한번 뿐이다. 삼성을 상대로는 아예 없다. 결국 이날 경기는 희박한 가능성을 어떻게든 승리로 확정지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만약에 김민우가 5회를 무실점으로 막았다고 해도 승리투수가 됐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근거도 희박하다. 야구는 9회말 아웃카운트 3개가 끝날 때까지 봐야 하는 경기다. 김민우가 무실점으로 내려간 이후라도 한화 불펜이 6~9회 사이에 점수를 내주면 김민우의 승리는 순식간에 날아간다. 오히려 이런 경우에 신인투수가 받는 심리적 데미지는 훨씬 클 수 있다. 결국 '첫 선발승'에 대한 미련 때문에 팀 승리를 놓치거나 김민우의 마음과 팔에 데미지를 줄 수도 있던 상황이다. 그래서 김성근 감독은 김민우를 교체했다.

이날의 교체는 밖에서 보면 계산적으로 이해는 가지만, 심정적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을 수도 있다. 대단히 잔인하고 냉정한 선택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런 결정을 하게 된 배경, 그리고 지난 1월부터 이어진 김민우에 대한 김성근 감독의 관심도를 생각하면 금세 알 수 있다. 차가운 결단의 뿌리에는 김민우에 대한 애정의 물줄기가 뜨겁게 흐르고 있다.

대전=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