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서 올라온 대학생이라면 더 싼 방을 알아보기 위해 하루 종일 부동산 사이트를 눈 빠지게 들여다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한 학기가 끝날 때 마다 학교 근처 목 좋은 자취방의 가격은 올라가기만 한다. 집을 구하지 못하면 그대로 고시원 행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구한 좁디 좁은 방에서 노트북으로 접속하는 온라인 게임 안에서도 부동산 문제가 한창(?)이다.
월세 집이라도 좋아, 내 집이 있다면
현실만큼은 아니지만 게임 속 '하우징' 시스템은 언제나 빡빡했다. 온라인 게임에서도 집을 지을 공간은 한정되어 있고, 집을 원하는 게이머는 많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손'이 돌아간다. 결국 현실과 비슷하게 목 좋은 곳에 자리잡으려면 돈이 있거나 힘이 있거나 둘 중 하나다. 이도 저도 없는 서민 캐릭터는 손가락만 빨아야 한다.
그래도 하우징 시스템은 언제나 인기가 많았다. 현실에서는 고시원에 살아도, 온라인 게임에서만큼은 넓은 저택에 살아보고 싶은 것은 게이머라면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좀 잘 나간다 싶은 온라인 게임에는 꼭 하우징이나, 그와 유사한 시스템이 어떻게든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하우징 시스템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울티마 온라인'도 결국 목 좋은 위치에 집을 짓기 위해서는 막대한 노력이 필요했다. 그렇게 고생 끝에 집을 지어도 안심할 수 없었다. 자물쇠를 따고 집을 털러 오는 도둑 때문이다. 번듯한 집을 골라 터는 도둑과 그런 도둑을 막기 위해 온갖 함정을 깔아놓는 집 주인 간 투쟁의 연속이었다.
'마비노기'는 시스템 상 도둑은 없었지만, 아이템을 항시 전시해 놓고 판매할 수 있는 점포의 개념에 가까워 더욱 경쟁이 치열했다. 목 좋고 세금이 저렴한 집에 입주하기 위해서 무지막지 한 보증금을 입찰해야 한다. 내가 갖고 있는 돈은 기껏해야 백만 단위인데 집에 입주하기 위해 수천, 수억 단위의 보증금을 집어넣어야 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길어야 한 달 정도 쓸 수 있는 집인데 경쟁이 옛날 주공아파트 추첨은 저리 가라 할 수준이다.
'아키에이지'는 지정된 주거 지역의 부지를 점유할 수 있다면 거기에 집을 짓는 것은 '셀프'다. 설계도를 구하고 재료를 구해서 집을 지을 수 있고, 집 근처에 텃밭까지 가꿀 수 있다. 물론 여기에도 공짜 점심은 없다. 집에는 세금이 부과되며, 매 주 나오는 세금을 꼬박꼬박 납부하지 못하면 집이 강제철거 당한다. 집을 여러 채 가지고 있으면 그에 비례해 중과세까지 당한다.
메이플스토리2의 300만 메소짜리 고시원
최근에 즐기고 있는 '메이플스토리2'는 그래도 사정이 좀 낫다. 여기도 월 단위로 임대료를 내는 방식이다. 자기 집을 가지고 있으면 게임에서 여러 이점이 있기 때문에 게임에 좀 익숙해졌다 싶으면 다들 집을 가지려 한다. 목 좋은 곳에 있는 부지나 주택의 임대료는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메이플스토리2에서는 어떤 근거로 부동산 가격이 설정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때로 이유 없이 엄청난 가격을 자랑하는 건물도 있다. 예를 들어, 우드버리에 있는 '고시원' 건물은 고작 9칸의 공간밖에 없다. 이 정도 크기면 메이플스토리2에서도 말 그대로 창고 수준의 건물이다. 그런데 여기 계약하는데 300만 메소 이상이 든다. '오아시스'에 있는 동일 크기의 서민주택은 15000 메소 라는 것을 생각하면 황당할 정도의 액수다. 이 정도면 말이 고시원이지 강남 오피스텔 급이다.
그래도 메이플스토리2에는 서민 캐릭터를 위해 '임대 아파트'가 여기 저기 마련되어 있다. 아예 이름 자체도 '서민주택 X단지' 이런 식이다. 상대적으로 매우 저렴한 임대료를 내고 수 십 세대가 좁은 공간을 빌려 한 건물에 사는 형태는 실제 서민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민에서 갓 벗어난 중산층(?)을 위해 훨씬 넓고 합리적인 가격에 살 수 있는 공동주택도 있다. 이들은 공동주택에 입주하면 자기가 몇 호실에 이사 왔다는 인사말을 '메이뷰'에 남기기도 한다. 다들 오늘은 닭장 같은 공동주택에 살지만 내일은 화려한 단독 주택에 입주하고 싶다는 꿈에 부풀어 있다.
이런 공동 주택이나 단독 주택에도 만족하지 못한다면 아예 대지를 사 자신 만의 건물을 직접 지으며 상류층의 기분을 느껴볼 수도 있다. 휑하던 부지에 큐브를 쌓아 나만의 빌딩을 세울 수 있다. '메이플스토리2'에서 고급 자동차를 몰고 빌딩을 소유한다면 게임 속에서라도 '금수저'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게임 속이라도 씁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번화가 근처의 화려한 집들을 보며 게임 속에서도 빈부격차를 느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중심가에 자리잡은 수 천 만 메소 씩 하는 주택 부지와 거기 세워진 화려한 건물을 보면 나는 언제 저기 한 번 건물을 세워보나 하는 박탈감도 든다.
얼마 전 8천만 메소 넘는 가격의 주택 부지가 낙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지도 꽤 넓고, 근처에 전용 주치의와 택시 정류장까지 마련된 초호화 부지다. 30일마다 8천만 메소를 월세로 지불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메이플스토리2' 안에서만큼은 억만장자이리라. 나도 언젠가는 저런 부지를 사 나만의 건물을 세울 수 있을까? 게임을 폐인마냥 빡빡하게 하지 않는 한 힘들지 않을까 하는 회의감이 든다.
때때로 그런 생각을 해 본다. 현실 부동산에 경매가 있듯, '메이플스토리2'도 목 좋은 곳에 있는 부지나 주택을 저렴한 가격에 입주할 수 있도록 추첨 방식으로 공급하는 것은 어떨까? 1개월이라도 좋으니까 번화가에 있는 멋진 주택에 살아보고 싶다. 오늘도 '메이플스토리2'의 복닥복닥한 공동 주택에서 살아가는 서민 게이머의 마음이다.
<글/베어필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