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관중석에서는 탄성이 터져나왔다. 오랜만에 다시 나온 '용규놀이'의 현장. 22일 광주 기아 챔피언스필드를 가득 메운 관중들은 한화 이글스 리드오프 이용규가 파울을 쳐낼 때마다 들썩였다.
이용규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용규놀이'를 모처럼 제대로 펼쳤다. '용규놀이'는 타석에서 상대 투수가 던진 공을 지속적으로 커트해내는 이용규만의 특징을 표현한 용어. 이용규는 불리한 볼카운트에서 까다로운 공이 들어오면 특유의 배트 콘트롤 능력을 이용해 파울을 곧잘 만들어낸다. 빼어난 집중력과 배트 콘트롤 능력을 갖고있지 않으면 따라하기조차 어려운 기술이다.
이 덕분에 이용규는 역대 KBO리그에서 한타석 최다 투구수 상대 기록을 갖고 있다. KIA 소속이던 지난 2010년 8월29일 광주 무등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넥센 불펜투수 박준수와 만난 이용규는 끈질기게 파울을 만들어낸 끝에 무려 20구 승부를 기록한 적이 있다. 최종 결과는 우익수 뜬공이었다.
그런데 5년 만에 이에 근접한 기록을 세웠다. 이날 한화 1번 중견수로 선발 출전한 이용규는 0-0이던 5회초 2사 1, 3루 때 타석에 나와 2년전까지 한솥밥을 먹었던 KIA 좌완 에이스 양현종을 상대했다. 이 승부는 무척 길었다. 이용규는 무려 11개의 파울을 쳐냈다. 그로 인해 양현종은 평균적으로 '한 이닝 투구수'에 해당하는 17개의 공을 이용규 한 타자를 상대하는 데 소모해야 했다.
초구 직구에 헛스윙을 한 이용규는 2구째 144㎞짜리 직구가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하는 것을 그냥 지켜봤다. 볼카운트 2S. 타자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다. 여기서 이용규는 '용규놀이' 스킬을 발동했다. 3구째를 파울로 걷어낸 이용규는 4구째 볼을 골라냈다. 이어 4연속 파울을 쳐냈다. 그러다 9구째에 침착하게 다시 볼을 골라냈다.
'용규놀이'는 계속됐다. 10구째와 11구째를 다시 파울로 커트. 그러자 양현종이 흔들렸다. 12구째에 볼을 던져 풀카운트가 됐다. 그러자 이용규는 더 집중력을 발휘했다. 13구부터 다시 4연속 파울을 쳐냈다. 그러다 17구째에 이용규가 2루수 땅볼을 치며 길었던 승부에 마침표가 찍혔다. 비록 안타는 치지 못했지만, 17구 승부로 양현종의 에너지는 크게 방전되고 말았다. 이용규는 그것만으로도 팀에 기여한 셈이다.
이날 이용규의 17구 승부는 역대 KBO리그 한타석 최다투구수 상대 기록 공동 2위에 해당한다. 2008년 9월24일 잠실구장에서 두산 베어스 정원석이 당시 히어로즈 투수 장원삼을 상대로 17구 승부를 펼친 것과 타이기록. 이용규는 이로 인해 역대 한 타석 최다투구수 상대기록 1위와 2위 기록에 모두 자기 이름을 올리게 됐다.
광주=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