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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호가 바꾼건 실력이 아닌 시선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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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호(28·피츠버그)가 많은 것을 바꾸고 있다. 메이저리거로 맹활약 중이다. 단점으로 지적됐던 부분들은 수개월만에 종적을 감췄다. 가성비 좋은 피츠버그는 올해도 선전을 이어가고 강정호를 헐값에 데려온 구단 프런트는 칭송받고 있다. 더불어 한국야구에도 순풍이 불고 있다. 한국야구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박병호(넥센)를 보기 위해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줄을 잇고 보는 김에 다른 선수들도 체크했는데 흥미롭다는 얘기도 들린다. 국내 최고타자들 사이에 메이저리그 꿈이 전염되고 있다. 김현수(두산)와 황재균(롯데)의 이름까지 거론된다. 더 어린 선수들의 목표에도 변화조짐이 감지된다. 일각에선 쿨다운 필요성을 제기한다. 현실을 냉정히 보고 메이저리거를 꿈꾼다면 이에 맞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강정호가 국내야구를 깔보는 시선은 바꿔줬을 지 몰라도 선수들의 실력을 바꾸진 못한다.

20여년전 박찬호의 LA다저스 진출 당시 국내에선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안목을 놓고 설왕설래했다. 볼만 빠르고 제구력이 불안했던 박찬호보다는 동기였던 임선동, 고 조성민이 훨씬 높은 평가를 받던 때다. 박찬호가 성공하자 메이저리그 바람이 불었다. 이후 생각보다 많은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지만 성공한 선수를 꼽자면 다섯 손가락도 넘친다. 류현진(LA다저스)의 진출 뒤에도 또다시 러시가 이뤄졌다. 윤석민(KIA)은 마이너리그를 전전했고, 양현종(KIA)과 김광현(SK)은 계약에 실패했다.

이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첫 번째 이유는 선수들 특유의 울타리 의식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같이 연습하며 경기해온 이들은 자연스럽게 경쟁한다. 연봉협상 때면 실력이 엇비슷한 선수, 또는 경쟁관계에 있는 선수 수준으로 맞춰달라고 떼를 쓰기도 한다. 좋을 때와 안 좋을 때, 대성하기 이전의 모습을 알기에 실력을 객관적으로 보기 어렵다. 객관적인 데이터가 처져도 '내가 마음만 먹고 연습하고, 몇달만 노력하면 너 보다 낫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10년간 경쟁자와의 기록에서 9차례 뒤지고, 1번 밖에 앞서지 못해도 불운, 부상, 충분한 기회, 이유모를 슬럼프만 없다면 내가 우위에 있다는 착각을 하기도 한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 누구도 객관적일 수는 없다. 그렇기에 때로는 무모한 도전이 피나는 노력을 통해 만개하기도 하지만.

박세리의 LPGA 진출 이후 라이벌이던 김미현도 생각지 않았던 미국행을 서두르게 됐고, 이후 미국여자골프는 한국선수들이 세력의 큰 축으로 성장했다. 선수층과 체격, 파워 등등을 고려할 때 메이저리그보다 훨씬 적응이 쉬운 여자골프지만 1부투어 선수들의 몇십배나 많은 한국 선수들이 2부투어 등에서 찬밥신세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야구 역시 많은 선수들이 메이저리그를 향해 달리다 좌충우돌했다.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성공 이후 차츰 우리가 몰랐던 박찬호의 모습이 알려져 눈길을 끈 적이 있다. 박찬호의 한양대 재학 시절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때 운동 선수들은 자신의 꿈 등을 글짓기 식으로 적어 내곤 했는데 박찬호는 달랐다고 한다. 직접 박찬호를 지도한 교수 한분은 '다른 선수들은 대충 끄적이고 마는데 박찬호는 시험시간이 끝날 때까지 뭔가를 적고 있었다. 옆에서 보니 몇 번이고 깨끗하게 고쳐 쓰고 있었다. 그 모습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고 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철저했던 박찬호의 됨됨이를 엿볼 수 있다. 국가대표 시절 박찬호와 함께 연습과 대회 출전을 했던 롯데 이진호 트레이너는 십여년전 그때를 회상한 적이 있다. "연습을 마치고 버스로 이동할 때 다른 선수들은 골아 떨어졌는데 박찬호는 한손엔 책을, 다른 한손엔 운동기구로 끊임없이 악력을 기르고 있었다. 그땐 '참 특이한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메이저리거가 됐다."

종종 선구자의 준비와 꿈을 향한 노력이 성과물에 가려지는 경우가 있다. 메이저리거를 꿈꾼다면 자세부터 생각까지 모든 것을 바꿔야 살아남을 수 있다. 미국행 거론을 몸값을 올리기 위한 수단이나 여러가지 미래에 대한 옵션 중 하나로 여긴다면 성공하기 쉽지 않다. 죽기살기, 배수의 진을 쳐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강정호도 되는데 나도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KBO리그를 씹어먹고 있는 한화 로저스는 불과 몇 달전만 해도 뉴욕양키스의 추격조의 일원이었다가 마이너로 강등된 선수였다. 하늘이 내린 타자라고 하는 NC 테임즈도 2년전 갑작스런 마이너행에 10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눈물젖은 햄버거를 먹어야 했던 곳이 메이저리그다. 150㎞대 강속구 패전처리 투수가 일상인 공포의 리그. 강정호는 진출 첫해에 대박조짐이다. 새삼 강정호가 대단한 것이지, 강정호로 인해 메이저리그의 수준을 KBO리그로 끌어내릴 순 없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