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제비를 척척 돌아내던 '체조요정'이 어느날 갑자기 손목만 겨우 움직이는 척수장애인이 됐다. 그 나락같은 절망감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절망의 바닥에서 만난 멘토들이 그녀를 공부의 길, 도전의 길로 이끌었다. '공부하는 선수' 인터뷰 요청에 손사래 치던 그녀가, "공부를 두려워하는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한마디에 마음을 바꾼 이유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재활하는 동안 사회사업실을 부지런히 드나들었다. 그녀의 공부방이자 놀이방이었다. 자원봉사자로 온 교포 출신 연세대 교목의 딸과 절친이 됐다. 영어공부를 놀이 삼았다. 병실에 꼼짝없이 누워있던 그녀는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출신 '멋쟁이' 선배 고 이성근씨를 만나며 마음을 열었다. 먼저 장애인이 된 그는 '수호천사'를 자청했다. "소영아, 앞으로 휠체어 타고 잘 살려면 뻔뻔해져야 해." 명랑하지만 숫기는 없었던 소녀가 씩씩해졌다. 휠체어 바퀴에 의지해 그녀는 세상의 벽에 거침없이 도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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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유학의 꿈을 이루는 데는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2002년 한일월드컵의 해, 오랜 꿈이 거짓말처럼 이뤄졌다. 외국인교회에서 우연히 만난 미국인 할아버지 '미스터 그로브'가 후원을 자청했다. '키다리아저씨'였다. 2001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스터스 컬리지 입학허가서를 받아들었다. 그러나 또다시 난관에 부딪쳤다. 휠체어용 전용차량이 필요했다. 1년 후 학교측에서 그녀의 등교를 도울, 전용차량이 마련됐다는 낭보가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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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만인 2007년 마침내 상담학 학사모를 썼다. "처음엔 상담을 전공하고 싶지 않았다. 남의 고민을 떠안는 것은 불행할 것이라 생각했다. 유학 후 나를 진심으로 돕는 친구들을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다른 이의 아픔을 끌어안는 것, 남의 인생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특권이다. 나는 학력을 위한 공부를 한 것이 아니다. 나누기 위한 공부를 했다. 내가 현재 일하는 분야는 최전방이다. 척수 장애인들을 가장 가까이서 만나고, 듣고, 보고, 공감할 수 있어 행복하다."
그녀의 20년, 치열했던 공부 이야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노트북을 덮으려는 찰라, 그녀가 문득 말했다. "그래도 저, 체조한 걸 한번도 후회한 적 없어요." 후회할 것이라고 속으로 넘겨짚었었다. 다시 노트북을 펼쳤다. "우리 아버지는 눈을 감으시는 날까지 체조하는 딸을 말리지 못한 걸 후회하셨지만, 나는 단 한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어요. 물론 더 이상 할 수 없게 돼 속상한 건 있지만"이라며 웃었다.
그녀는 천생 체조인이자 체육인이다. "어릴 땐 남들이 못하는 공중돌기를 하며 자유롭게 날아오를 수 있었고, 장애인이 된 후에도 체조로 인해 감사한 일이 많았으니까"라고 털어놨다.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일이 솔직히 힘들고 무섭죠. 그래도 체조만큼 힘들진 않아요. 체조에서 새 난도 배울 때만큼 무섭진 않아요. 나는 체조로 단련됐고, 체조를 통해 기본기를 배웠고, 훈련도 더할 수 없을 정도로 원없이 해봤으니까요"라며 웃었다. "우리 운동선수 출신들에겐 무한한 잠재력이 있어요. 죽어라 운동했던 그 의지력, 그 체력이라면 공부든 뭐든 다 잘할 수 있어요."
절망의 터널을 씩씩하게 뚫고나와, 20대 중반의 나이에 장애인 스키 캠프를 기획했고, 스킨스쿠버에 도전했고 30대엔 혈혈단신 미국 유학까지 성공적으로 마친 그녀는 2013년부터 한국척수장애인들을 위한 재활센터에서 '공부'를 나눠주고 있다. 노란 휠체어에 '초록 돌고래'를 매단 그녀는 오늘도 세상을 향해 날아오른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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