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영웅 기자] 2013년 'K팝스타'에서 악동뮤지션은 당시 꺼져가던 오디션 열풍의 불씨를 살린 보석같은 10대 남매였다. 한쪽에서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쏟으면 다른 한쪽에선 약속한듯 추임새가 붙었고 가요 팬들은 기분 좋은 에너지로 휘감겼다. 이들에겐 '혜성처럼 등장한 신예'란 진부한 클리셰도 전혀 민망하지 않은 수식어였다.
댄디한 반바지 양복 차림의 이찬혁이 춤추듯이 기타를 연주하고, 검정 치마 원피스를 입은 이수현이 통통 튀는 노래를 부르던 모습은 벌써 6년 전 얘기다. 그래도 악동뮤지션의 음악은 여전히 신선하다. 경쾌한 두 남매의 목소리에 리얼 악기의 따뜻함, 기발하고 솔직한 노랫말이 더해지니 진정성이 느껴지는 새 음악이 태어났다. 뻔하지 않은 그들만의 음악, 일상 속 이야기들이 둘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투영됐다. 악동뮤지션의 전매특허인 청량음악이다.
데뷔 초창기의 음악이 유머러스한 10대의 노래였다면, 5년이 지난 지금의 악동뮤지션은 성인을 포용할 수 있는 노래다. 통기타 선율과 웃음이 터지는 재미있는 가사에 독특한 리듬의 랩까지 더해진 노래는 이제 진짜 사춘기를 겪듯 한층 더 성숙해졌다. 악동뮤지션이 말하는 '사춘기'는 10대에 찾아오는 예민한 시기가 아닌, '많아진 생각'에 초점을 맞춘 키워드다. 누구나 겪는 '생각의 사춘기', 즉 '생각에 봄이 오는 시기'를 뜻하는 말이다.
"저의 사춘기 감정을 토대로 노랠 만들었어요. 제 사춘기를 떠올리면 거친 느낌도, 반항의 시절도 아니였어요. 하지만 저 혼자 고독한 시간이였죠. 내 생각이 나만의 생각인 것 같고, 내가 '아' 하면 부모님은 '어'라고 알아들으시곤 했어요. '주변인'이란 노랠 보면 사람들이 내게 외계인 같다고 하는 가사가 있는데, 실제로 아버지가 제게 하셨던 말이기도 해요. 내가 사춘기라서 그런가? 사춘기가 병처럼 불리는 이유는 뭘까? '사춘기=중2병'이라 불리는 단어도 사실 좋아하진 않아요. 사춘기는 병이 아니죠. 여전히 사춘기에 느끼는 감정은 너무 소중하다고 생각해요."(찬혁)
새 앨범 '사춘기(하)'는 일종의 성장소설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나이가 들어 집에 돌아와 지난 추억을 회상하기까지 시간순으로 배열했다. 그간 재치가 돋보이는 자작곡으로 화제가 된 악동뮤지션은 이번에 기발한 발상 뿐 아니라 한층 성숙해진 감정을 드러내며 일상의 얘기를 담아냈다.
"어떤 일이든지 중간단계가 항상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기에 어른으로 넘어가는 느낌 사춘기 같은 음악이 적절하다 싶었어요. 음악도 나이를 먹은 느낌이죠. 장르적인 표현만큼은 할 수 있는 만큼 욕심을 내봤어요."
전작 '사춘기(상)'과 마찬가지로 멤버 이찬혁이 전곡 작사, 작곡을 맡아 악동뮤지션의 세계관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찬혁이 써내려간 성장스토리에 이수현은 청량하고 맑은 목소리를 더해 사춘기 앨범을 완결지었다. 보다 폭넓은 접근이 가능했고 위트있는 표현력은 여전히 듣는 재미의 역할에 충실한다.
"이젠 오빠가 쓴 노랫말만 보고도 어느 시절에 어떤 감정으로 작업한 가사인지 알 수 있어요. 아무래도 18년째 남매 호흡을 맞추고 있으니까요.(웃음) 그런데 오빠만 갖는 발상 같은 건 때론 이해가 안될 때도 있죠. 보통 허세를 부리면 흑역사라고들 하는데 오빠만의 감성과 말투는 오히려 귀여운 쪽이에요. 누군가 사과하고 용서하는 과정, 즉 오빠의 사춘기를 보면서 저도 걱정했는데 가족들의 이해 덕분에 무사히 잘 지내갔던 것 같아요."(수현)
누구나 그렇겠지만 악동뮤지션 남매에게 사춘기는 특별한 시절이다. 몽골에서 힘들게 보낸 학창시절은 남매는 더욱 끈끈한 사이로 만들어준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티격태격 하면서도 둘은 서로를 알뜰하게 챙긴다. 남매는 스스로에 대해 '찬혁은 감정적, 수현은 이성적'이라 정의했다. 서로 보는 오빠, 동생의 모습은 어떨까.
"크게 싸우진 않아요. 아무래도 서로 많은 걸 알고 있다보니..오빠의 그녀가 앞에서 몇 번짼지, 뒤에서 몇 번짼지 제가 다 알고 있으니까요.(웃음) 그리고 처음 듣는 멜로디를 듣고도 바로 화음을 맞출 수 있다는 점에서 꽤나 찰떡 호흡이죠. 단점은 크게 없는데 아무래도 공과 사를 구분하기도 힘들긴 해요. 저희 보고 비즈니스 남매라 하는 분들도 많은데 그것도 맞는 얘기죠. 서로 좋은 오빠, 동생이 되려고 노력해요."(수현)
악동뮤지션 음악의 백미는 노랫말이다. '스마트폰으로 통장 잔고를 확인할 땐 밝기를 최저로 해야 한다'('리얼리티'中)고 티 없이 솔직하게 말하다가도, '별 하나 있고 너 하나 있는 그곳이 내 오랜 밤이었어'('오랜 날 오랜 밤'中)
라고 제법 성숙하게 말할 줄 아는 이찬혁의 시선에서 8곡의 노랫말이 나왔다. 수록곡에 심오한 뜻의 노랫말은 없다.
그래서 오히려 단어, 말투 하나하나가 더욱 진하게 귀에 박힌다. 트랙리스트의 순서까지 세밀하게 배열한 스토리텔링도 인상적이다. 태어난 순간부터 성장하고 집에 들어와 지난 추억을 회상하는 시간의 흐름 순으로 진행되는 식. 인상적인 건 모든 곡은 매우 개인적이면서도 공감을 꿰뚫는다는 점이다. 뭔가 뜨겁게 가슴을 자극하진 않아도 편안하게 공감을 건드린다. 과장되지 않은 정직함을 머금고 있으니 감정을 그대로 전달함에 있어 흐트러짐이 없다. 그저 소박한 악동뮤지션 남매의 현재가 담긴 자기고백이다. 말하듯 노래하는 법을 깨우친 남매만의 전달법이기도 하다.
"저희끼리 비밀이 없듯이 솔직하고 순수한 음악을 하는 게 악동뮤지션의 목표에요. 많은 뮤지션들이 '순수한 음악, 힐링이 되는 음악'을 목표로 삼겠지만, 저희는 꼭 그걸 실행에 옮기는 그룹이 되고 싶어요. 순수함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음악적으로도 도전할 수 있는 그런 악동뮤지션이 되고 싶어요."(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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