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은 터지지 않았다. 공격은 답답했다. 그러나 분명 소득은 얻었다. 울리 슈틸리케 A대표팀 감독이 내민 스리백 카드였다. 좀 더 보완해야 할 점이 보였지만 나름대로 합격점을 줄 수 있었다. 그 중심에는 '캡틴' 기성용(28·스완지시티)이 서 있었다.
한국은 8일(한국시각) 아랍에미리트 라스 알카이마의 에미리츠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이라크와의 평가전에서 0대0으로 무승부를 거뒀다.
이날 슈틸리케 감독의 스리백 가동은 참신했다. 그 동안 전술 부재의 비난에 시달려온 슈틸리케 감독은 '기성용 시프트'를 활용, 다시 현대축구의 트렌드로 떠오른 스리백을 처음으로 시도했다. 첫 실험치곤 나쁘지 않았다. 기성용의 멀티 능력 덕분이었다.
▶기성용 센터백 변신, 왜?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2014년 9월 A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뒤 2년9개월여 만의 처음으로 스리백 전술을 폈다. 신태용 전 A대표팀 코치가 스리백으로 우루과이를 상대할 때 관중석에서 지켜보긴 했지만 슈틸리케 감독이 직접 스리백을 선택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역시 슈틸리케 감독이 추구하는 전술의 키는 기성용이 쥐고 있었다. 이날 기성용은 전반 45분만 3-4-3 포메이션의 센터백으로 변신했다. '중국파' 홍정호(장쑤 쑤닝) 장현수(광저우 부리)와 함께 호흡을 맞췄다.
기성용에게 센터백 출전은 생소하진 않다. 지난 2013년 스완지시티 시절과 2014년 선덜랜드 임대 당시 컵 대회에서 센터백으로 뛴 적이 있다. 대표팀에서도 경험이 있다. 3년 전 우루과이와의 평가전에서 센터백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슈틸리케 감독이 기성용을 스리백 자원으로 활용한 건 두 가지 노림수였다. 우선 안정적인 빌드업이다. 최종 수비부터 공격으로 전개되는 과정을 매끄럽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공수조율 능력이 탁월한 기성용에게 그리 어려운 숙제는 아니었다. 또 다양한 전술 변화를 실험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었다. 그 동안 포백을 고집해온 슈틸리케 감독은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무색무취 전술로 맹비난을 받아왔다. 이 비난도 잠재우고 대표팀을 좀 더 전술적으로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선 낯선 스리백 가동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기성용은 슈틸리케 감독이 만족할 만한 움직임을 보여줬다. 빌드업 시에는 군더더기 없는 전방 패스로 공격 작업을 도왔다. 전반 초반에는 미드필드를 거치지 않는 롱패스를 손흥민(토트넘)에게 연결하기도 했다. 상대의 허를 찌르는 플레이가 돋보였다.
기성용은 뒤에만 머물지 않았다. 수비 시에는 최후방을 지키며 수비라인을 조율했지만 공격 시에는 적극적으로 스리백 라인을 끌어올려 공격에 가담하기도 했다. 이라크의 강한 압박에도 수비부터 물 흐르는 공격 전개를 펼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기성용은 "이틀 정도 훈련했다. 때문에 평가하긴 이르다. 그래도 감독님 오시고 처음 새 전술을 해봤다는 점에 의미가 있는 것 같다"며 "스리백도 더 연습하다 보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스리백-포백, 결국 윙백-풀백에 달려있다
포백에 익숙한 선수들이 스리백 전술을 소화하는건 쉽지 않은 일이다. 스리백으로 올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우승한 안토니오 콘테 첼시 감독도 "스리백으로 플레이하는 것은 포백과 완전히 다르다. 쉽지 않다"며 스리백 전술 변화의 어려움을 토로할 정도다. 이런 측면에서 바라보면 짧은 시간 안에 고안하고 만들어낸 슈틸리케 감독의 스리백 도전에 박수를 쳐줘야 한다.
하지만 완성도는 좀 더 높여야 한다. 스리백 운영이 공격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좌우 윙백에 답이 있다. 스리백은 윙백의 몫이 크다. 수비 시에는 수비가담을 해 다섯 명의 철벽수비를 형성해야 하고 공격 시에는 수적싸움에서 앞설 수 있게 측면과 중앙으로 빠르게 올라와 연계 플레이와 크로스를 올려줘야 한다. 박주호(도르트문트) 김진수 최철순(이상 전북) 김창수(울산)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포백으로 바뀌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스리백 때 윙백인 자원들이 포백일 때는 풀백의 움직임을 보여줘야 한다. 역할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카타르의 플레이 스타일도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카타르는 안방임에도 역습 위주의 플레이를 할 가능성도 엿보인다. 밀집수비를 펼칠 경우 중원을 뚫기 힘들어진다. 때문에 측면에서 경기의 실마리를 풀어나가야 한다. 날개 자원, 윙백-풀백들의 날카로운 크로스와 영리한 돌파가 필요하다.
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