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히 따져보자.
새로운 선수들, 기존에 뛰지 못하던 선수들에게 기회를 준 것 외에는 우리는 이번 이라크전에서 얻은 것이 거의 없다. 여전히 원정 징크스를 해결하지 못했다. 또 다시 원정에서 승리하지 못했고, 또 다시 골을 넣지 못했다. 내용적으로는 더욱 암울하다. 90분 동안 유효슈팅 한번 때리지 못했다. 무엇을 하려는지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확인하지도 못했다. 또 다시 평가는 졸전이었다. 14일(이하 한국시각) 카타르와의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8차전을 앞두고 부담만 가중된 꼴이 됐다.
슈틸리케호는 카타르전을 앞두고 총력전에 나섰다. 경질설이 돌던 슈틸리케 감독이 유임된 후 갖는 첫번째 경기였다. 정해성 수석코치가 부임했고, 선수들을 조기소집했다. 8일 열린 이라크와의 평가전 역시 카타르를 잡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다. 물론 이라크전에서 실험을 할 수도 있다. 다양한 실험, 그게 평가전을 하는 이유다. 슈틸리케호는 이번 최종예선 내내 같은 전술로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타이밍이 틀렸다. 이라크전은 실험이 아닌 승리가 필요한 경기였다. 분위기 반전이 먼저였다. 슈틸리케호는 계속된 부진으로 질타를 받았다. 감독도, 선수도 여유를 잃어버렸다. 결국 잘할 수 있는 것도 못했다. 이는 또 졸전으로 이어지고 분위기가 가라앉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코치를 바꿨지만 미봉책이었다. 가장 확실한 해결책은 시원한 승리였다. 승리는 자신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슈틸리케호는 계속된 원정 무승으로 원정에 대한 부담감까지 안고 있는 상황이었다. 분명 반전의 계기가 필요했다.
이라크전이 그랬어야 했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실험을 우선시했다. 실험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스리백이라는 수비적인 전술이었다는 점이 아쉽다.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이라는 전제가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카타르는 분명 우리 보다 한수 아래의 팀이다. 카타르는 이번 최종예선 A조 최하위를 달리고 있다. 카타르가 홈이점을 갖고 있지만 한국은 카타르를 상대로 3연승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 카타르의 가상이라고 할 수 있는 이라크를 상대로 스리백을 테스트하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선택일까.
이번 이라크전 무승부로 불안감만 더 커졌다. 써먹지도 못할 전술을 실험하며 귀중한 경기를 날렸다. 매경기 고전했던 밀집수비 타파법은 보이지 않았다. 손흥민(토트넘)은 여전히 슈틸리케호에서 헤매고 있으며, 지동원(아우크스부르크)은 고립됐다. 무엇보다 또 다시 승리하지 못하면서 부담감 속 카타르전을 준비해야 한다. 새로운 카드를 꺼내기도 애매한 상황이 됐다. 무거운 분위기 속 카타르 원정길에 나서야 한다. 가뜩이나 외교단절 상태로 육체적으로 힘든 원정길이다. 물론 결과론이기는 하지만, 여러모로 아쉬울 수 밖에 없는 슈틸리케의 선택이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