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갑자기 떠나다니…, 믿겨지지 않는다. 황망할 따름이다."
지난 16일 배우 윤소정씨가 7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대배우를 떠나 보낸 충격으로 고인의 연기인생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연극계가 큰 슬픔에 잠겼다. 고인은 지난 1966년 극단 자유에 김혜자 선우용녀 최불암 박정자 등과 함께 입단해 창단 공연 '따라지의 향연'으로 배우생활을 시작했다. 50년 넘게 연극와 드라마, 영화 등에서 전방위로 활약하며 큰 족적을 남긴 터라 그녀와 인연이 닿지 않은 배우가 드물다.
이들 가운데 극단 자유극장 입단 동기인 배우 박정자씨는 "불과 2주전에 배우 손숙, 윤석화, 김성녀, 연출가 손진책씨,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 등과 함께 전남 해남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무척 건강해보였는데…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고인은 솔직 담백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호인이었다"며 "어제(16일) 극단 자유 50년 동인지가 나왔는데 하필 이날 세상을 뜨다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고인과의 에피소드도 하나 소개했다. "2010년 연극 '33개의 변주곡'을 연습하다 사정이 생겨 못하게 됐다. 그때 미국에 있던 고인한테 대신 해주면 안되겠느냐 부탁했는데 극본을 보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승낙했다"며 "한번 사람을 믿으면 끝까지 가는 성격이었다"고 회고했다.
지난 1983년 고인이 출연한 연극 '신의 아그네스'를 연출했던 에이콤 윤호진 대표도 "비보를 듣고 말이 나오지 않았다. 머릿속이 하얘졌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윤 대표는 고인과 '신의 아그네스', '실비명'(1991) 등 여러 편을 작업했다. 특히 윤석화와 함께 출연한 '신의 아그네스'에서 고인은 '닥터 리빙스턴' 역을 맡아 냉정하고 치밀한 연기로 작품의 대성공을 이끌었다. 윤대표는 "연출가로서 정말 드물게 만난 좋은 배우 중 하나였다"며 "무엇보다 지성적이고 냉철한 역할에 관한 한 고인을 따라올 배우가 없었다"고 추모했다.
1970년대 초 당시 드라마센터에서 함께 한 연극 '초분' 이후 고인과 40여 년 넘게 무대에 서온 배우 이호재씨는 "15편 가량 함께 작업했는데 아마도 고인의 상대역을 가장 많이 한 배우일 것"이라고 회상했다. "재능도 뛰어났고 또 엄청난 노력파셨다. 연극 연습을 시작하면 집에 돌아가서도 남편인 배우 오현경 선배를 상대역 삼아 또 연습을 했다."
그는 "정도 많았고, 옳고 그름도 분명했다"면서 "여장부이면서도 한편으론 갸날픈 여인이기도 했다. 참 뭐라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자신만의 스타일과 매력을 지닌 분이라 항상 존경했다"고 말했다.
역시 고인과 40년 넘게 인연을 맺어온 배우 전무송씨는 "후배들이 항상 '형수님'이라고 부르며 따랐다"면서 "형수는 좋은 배우이기 앞서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다. 또 후배들이 잘못하면 가차없이 호통을 치곤 하셨다"고 회고했다.
"70년대 초에 연극 '초분'을 할 때 연습하다 허리를 삐끗해서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그때 형수님이 나를 번쩍 업다시피해서 종로에 있는 한의원으로 데려가 침을 맞혔다. 한참 있다 몸이 괜찮아져 일어났더니 형수가 '이제 살아났어?'라며 빙긋 웃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질 않는다"며 슬퍼했다.
신시컴퍼니 박명성 대표는 "엄마같은 분이었다"며 "후배들 밥도 매일같이 사주시고, 정도 많고, 통이 컸다"며 "항상 존경하고 따라 배우려고 노력했는데 갑자기 돌아가셔서 말문이 막힌다"고 전했다.
한편, 고인의 빈소는 서울 강남구 사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영결식은 오는 20일 오전 9시 30분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동료 배우들과 후배 연극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된다.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