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um App

Experience a richer experience on our mobile app!

'팀보다 국가' 현캐가 배구계에 던지는 메시지 작지 않다

by

한국 남자배구는 2017년 국제배구연맹(FIVB) 월드리그에서 소위 '대박'을 쳤다. 월드리그 예선에서 5승을 달성했다. 지난 1995년 이후 22년 만의 쾌거였다. 대표팀을 제 모습으로 되돌려놓은 이는 김호철 감독(62)이었다.

하지만 김 감독은 월드리그가 끝나자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졌다. 당장 아시아선수권과 세계선수권 예선에 참가할 자원이 부족했다. 두 대회는 2020년 도쿄올림픽과 관련돼 있어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오는 21일 인도네시아에서 펼쳐질 아시안선수권에서 4강에 든 팀은 2019년 올림픽 아시아지역 대회 때 4강 시드를 배정받게 된다. 아시아선수권 우승팀은 한 장의 올림픽 직행 티켓을 거머쥐게 된다.

세계선수권에서도 올림픽 출전을 바라볼 수 있다. 예선 통과만 하면 내년 본선 참가만으로 랭킹포인트를 받아 경쟁을 펼칠 수 있다. 그러나 중국, 호주, 이란 등 올림픽 경쟁팀들이 만만치 않다.

냉정하게 얘기하면 올림픽 출전 확률은 '제로'다. 한국 남자배구는 2015년 아시아선수권때도 조별리그를 잘 통과한 뒤 토너먼트에서 무너져 7위로 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다.

상황은 암울하지만 선수들의 몸 상태만 좋으면 그래도 부딪혀 볼 만했다. 그러나 선수들의 몸은 대부분 고장난 상태다. 센터 박상하(삼성화재)와 이선규(KB손해보험)가 부상으로 낙마했다. 또 전광인 서재덕(이상 한국전력) 송명근(OK저축은행) 나경복(우리카드)도 부상으로 합류하지 못했다. 여기에 기존 센터 신영석(현대캐피탈)도 양쪽 무릎이 좋지 않고 새로 발탁된 진상헌(대한항공)도 치료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센터 없이 훈련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었다. 김 감독은 V리그 최고 스타 문성민(현대캐피탈)이란 '천군만마'를 얻었다. 문성민은 지난 시즌이 끝난 뒤 왼무릎 나사 제거 수술을 했고 빠른 재활로 대표팀에 복귀할 수 있었다. 이 때 김 감독은 염치 불구하고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에게 'SOS'를 보냈다. "선수를 보내주는 김에 좀 더 보내달라." 최 감독은 김 감독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데려갈 선수가 있으시면 더 데려가십쇼." 결과적으로 14명의 선수 중 현대캐피탈 선수가 6명이나 차출됐다. 팀의 이익보다 한국 배구의 발전을 먼저 생각한 최 감독의 결정이 김 감독은 그저 고맙기만 하다. 김 감독은 "내가 아무리 전임 감독이라고 하더라도 어느 팀에서 선수를 몰아준다는 건 힘든 일이다. 선수를 보내준 다른 팀도 고맙지만 현대캐피탈, 특히 최 감독한테 미안하다"고 말했다.

씁쓸한 현실이다. 어느 대표팀 감독이든 매 국제대회에 나설 때마다 프로 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시스템은 대한배구협회와 한국배구연맹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시스템이 기본적으로 문제지만 태극마크의 가치를 대하는 선수들의 자세도 바뀌어야 한다. 아무리 프로가 돈으로 말하는 세계라고 하지만 국가를 대표하는 것은 돈을 뛰어넘는 가치를 지닌다. 이 가치 속에는 희생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 면에서 김 감독의 근심을 한층 덜어준 현대캐피탈의 적잖은 희생이 배구계에 던지는 메시지가 작지 않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