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서원(書院)'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재추진에 나선다. 반가운 소식이다. 최근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는 세계유산분과 회의를 열고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등재 대상이 된 한국의 서원은 영주 소수서원, 안동 도산서원, 함양 남계서원 등 모두 9곳으로, 이를테면 등재 재수에 나서는 셈이다.
문화재청은 2011년 '한국의 서원'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했고 2015년 세계유산센터에 등재 신청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유네스코 자문·심사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의 심사에서 '반려' 판정을 받았다. 당시 이코모스는 '한국의 서원 9개간의 연계성과 중국·일본 서원과의 차별성이 부각되지 않았고, 서원의 주변 경관이 문화재 구역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은 지난해 4월 등재신청을 자진 철회했다.
문화재위원회는 이번에 '한국의 서원'을 세계유산 등재신청 대상으로 선정하면서 '이코모스의 권고 사항을 충실히 반영했고 신청서의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했다. 등재 성공이 한층 기대되는 대목이다. 등재 여부는 이코모스 심사 등을 거쳐 2019년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판가름 난다.
처음 서원을 세계유산으로 등재 추진할 때에는 잡음도 들렸다. 국내 현존하는 637개 서원 중 9개의 서원에 들지 못한 나머지 서원들의 반발이 따랐기 때문이다. '국가 사적지적을 받은 9개서원만이 가치가 있다는 것인가, 서원마다 배향 선현 등도 각기 다를진대 무슨 명분으로 세계유산협약이 요구하는 연계성을 극복할 것이냐'는 게 그 이유였다. 실제로 여러 유산을 묶어서 올리는 연속 유산은 '연계성'이 중요하다. 때문에 9개 서원으로 묶는 것에 대한 연결고리가 약하다는 지적도 나왔던 것이다.
국내 세계문화유산 추진 탈락과 재추진 사례는 서원에만 그치지 않는다. '한양도성'도 그중 하나다. 같은 시기 한양도성도 이코모스의 심사에서 고배를 마셨다. 서울시는 2020년을 목표로 재신청하겠다는 입장이다.
한양도성은 이코모스의 심사 최종단계에서 진정성과 완전성, 보존관리계획분야는 통과했으나 다른 세계유산 선정 도시의 성벽과 비교연구에서 '탁월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근자에 들어 세계문화유산이 1000여 건을 넘어서게 되자 등재 기준 또한 한결 강화되는 양상이다. 유네스코는 신청유산을 국가별 1개로 제한하거나 신청국가수도 줄이는 등 심사 요건 강화도 추진하고 있다.
인천 강화도도 결은 다르지만 도중하차 사례 중 하나다. 인천시는 지난해 고려 왕릉 등 강화지역 문화재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문화재의 보전 가치 측면 등에서 각계의 평가가 엇갈려 이를 연기했다. 강화지역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규제가 더 강화되면 재산권 행사에 제약이 많아질 수 있다는 주민 반발 또한 걸림돌이었다.
이처럼 요즘 각 지자체에서는 너도나도 세계유산 등재 추진에 팔을 걷어 부치는 형국이다. 유형유산, 무형유산, 자연유산, 기록유산, 잠정목록…. 바야흐로 대한민국에 세계유산 등재 러시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물론 우리의 자랑스러운 유산이 전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인정받으며 세계적 유산의 반열에 오르는 한편, 이를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기쁠 일이다. 하지만 워낙 추진 중인 유산의 종류와 가짓수도 많다보니 다소 어지러운 것도 사실이다.
현재 국내에서 세계유산 등재가 추진되고 있는 것은 '한국의 서원''사찰' 등을 비롯해 모두 20건이 넘는다. 지자체가 개별적으로 등재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한 경우는 이보다 훨씬 더 많다. 이들의 경우 한결 같이 지역 공동체와 국가의 자긍심 고취, 더불어 관광객 유치와 정부의 지원에 따른 지역발전 효과 등을 등재 추진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원활한 등재 추진을 위해서는 엄중한 선행요건이 필수다. 우선 등재를 추진하는 지역의 유산이 당장 세계유산으로 등재 가치를 충분히 지녔는지 부터 냉정히 따져 봐야 할 것이다. 이웃 지자체의 문화유산이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는 단순 경쟁의식이 그 출발점이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일단 그만한 가치를 객관적으로 인정받았다면 등재 준비 또한 성실히 추진해야 한다. 무엇보다 문화유산에 대한 온전성, 보존성을 유지하는 게 우선이다. 아울러 지역 주민의 공감대 형성 또한 대단히 중요하다. 제 아무리 좋은 일도 주민의 공감과 지지를 얻지 못한다면 그 의미가 퇴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문화유산 지정에 따른 개인의 재산권 행사의 제약 또한 간과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세계유산 등재가 능사만도 아니다. 보존을 잘해야 한다. 유네스코에서는 6년마다 엄격한 실사를 통해 세계유산지정을 재고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실제 탈락 사례도 나타난다. 실사 항목에는 해당 문화유산은 물론 그 주변의 경관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최근 국내 세계유산 등재 추진 러시는 관광산업 활성화 열풍이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전 세계적으로 문화재활용관광의 중요성이 대두 되는 시점이고 보면 그 의도는 충분히 공감할만하다. 특히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관광콘텐츠 확보에 목말라하는 우리에게 세계유산은 그 공백을 적절하게 메워줄 수 있는 훌륭한 대안이자, 글로벌 관광콘텐츠에 다름없는 것이다. 세계유산은 그 저명성으로 인해 명실 공히 세계인이 인정해주는 관광자원이기 때문이다.
한편 세계유산 등재 추진은 치밀한 준비와 관리가 관건이다. 지속가능한 관리보존과 활용을 위해서는 보존성, 매력성, 경제성 등 필수적인 요소들에 대한 '지표'를 만들어 체계적인 관리를 해야만 한다. 그래야 지속가능한 글로벌 관광자원으로 내수관광활성화의 견인차라는 제 구실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유산 등재 추진에 공을 들이고 있는 지자체들 또한 뜨거운 추진 열정 이상으로 좌고우면의 여유도 가져야 할 것이다. 우선 해당 지자체 유산에 대한 객관적 평가와 더불어 일을 추진하는 이유, 본질부터 따지는 게 순서일 터다. 더불어 지자체장의 임기 내 결실을 거두려는 강박 역시 과감히 버려야 한다. 세계유산 등재 추진의 경우는 속도전으로,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반드시 이뤄질 성질의 것이 아니기에 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세금을 흠뻑 집어 삼킨 지자체 과욕의 사생아들을 수도 없이 목격하고 있다. 이 같은 혈세낭비의 악순환이 '세계유산등재 추진사업'이라는 새로운 아이템으로 번져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문화관광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