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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인터뷰]⑤부드러운 리더십이 대세? 이도희 감독이 말하는 '철녀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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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많이 부드러워진거에요!"

섬세한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가 최근 V리그 여자부에서 각광받고 있다. 대표적 인물이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이다. 그는 '엄마 리더십'으로 불리는 따스한 지도 방식으로 흥국생명을 2016~2017시즌 V리그 여자부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박 감독의 부드러운 리더십은 큰 주목을 받았다.

또 한 명의 여성 지도자가 V리그에 등장했다. 지난 4월 '명세터' 이도희 감독이 현대건설 지휘봉을 잡았다. 현대건설도 부드러운 '엄마 리더십'을 활용하려는 계획이란 분석도 있었다. 10일 용인시 기흥구에 위치한 현대건설 사무국에서 이 감독을 만났다. '엄마 리더십' 이야기를 꺼내자 씨익 웃었다. "엄마 리더십이요? 저는 조금 다른데요."

▶프로의 자세

이 감독 부임 후 현대건설 훈련장은 매일 곡소리가 넘친다. 강도 높은 체력훈련의 연속. 서브리시브 등 기본기 훈련도 무한 반복이다. 이 감독은 "지난 시즌 밖에서 본 현대건설의 강점은 높이와 다양한 공격 자원"이라면서도 "하지만 체력과 기본기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분을 잡아야만 더 강한 팀, 더 좋은 선수들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뚜렷한 목적의식. 하지만 훈련이 과해 자칫 부상으로 이어지진 않을까. 이 감독은 확고했다.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비시즌 때 체력을 더 다져야 한다. 시즌 돌입하면 체력 훈련을 하기 어렵다. 경기 중 나오는 거의 대부분의 부상은 체력이 떨어졌을 때 몸이 퍼지면서 발생한다."

선수들의 입에선 단내가 뿜어져 나온다. 예민한 선수의 경우 입도 삐죽 나올 수 있는 상황. 이 감독은 개의치 않는다. "아직 그런 적은 없지만 선수들이 불만을 가져도 절대 봐줄 생각 없다. 아프면 쉬면 된다. 그게 아니라면 힘들어도 감독을 믿고 따라와야 한다. 그게 프로의 자세다."

▶욕받이

프로 감독은 처음이다. 그런데 당당하다. 여유롭기까지 하다. 불안하지도 않다고 한다. "걱정될 게 뭐 있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고 나중에 결과로 평가 받으면 된다. 솔직히 부임 첫 시즌에 대단한 성적을 낼 것이란 생각은 없다"고 했다.

비판도 두렵지 않다. 이 감독은 "리더는 당연히 욕을 먹는 자리다. 욕 안 먹고 싶으면 그게 욕심"이라며 "감독의 가장 큰 역할은 선수들을 지키고 팀을 대표해서 욕 먹는 것 아닌가"라며 웃었다.

이 감독은 "부임 할 때부터 그 어떤 비판, 비난 혹은 욕까지도 들어 먹을 각오를 하고 왔다. 그게 기본이라 생각한다. 결과가 좋으면 공은 열심히 뛰어준 선수들의 몫이지만 좋지 않을 때 책임과 비판은 모두 내가 짊어질 부분"이라고 했다. 이 감독에게 지도자는 '욕받이'였다.

▶철녀의 가치

이 감독은 타고난 리더다. 24세의 어린 나이에 주장을 맡았다. 처음부터 강인했던 건 아니다. 이 감독은 "처음 주장을 했을 땐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요구를 다 들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 모두에게 잘 해주고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었다"면서 "하지만 그게 정답은 아니더라. 어느 순간 분위기도 와해되고 심지어 나를 낮춰보고 흠잡는 사람들도 생겼다"고 했다. 24세 이 감독은 친언니의 품에 안겨 하소연하며 펑펑 울았다. 그 때 언니가 이렇게 말했다. "잘 해주면 그 사람도 잘 할 것이란 생각은 버려. 세상엔 그런 사람 몇 없다." 이 감독은 이 때 '철녀의 가치'에 눈을 떴다.

타인을 생각하는 대신 스스로에게 더 엄격해졌다. "내가 빈 틈이 없어야 흠 잡힐 일도 없고 더 당당히 지적하고 요구할 수 있다. 리더의 힘은 거기에서부터 나온다. 선수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청사진

이 감독은 꿈을 꾼다. "모든 선수들이 강한 체력과 탄탄한 기본기를 갖춰 빠르고 강한 배구를 하는 것, 그게 내 꿈이다."

이어 "코트 위에 '여성'은 없다. 모두 프로고 선수다. 누구보다 강해야 한다. 일말의 나약함도 모두 버려야 한다"며 "나를 만나서 선수들이 지금은 힘들겠지만 믿고 따라와주길 바란다. 우리 선수들이 그 어떤 팀보다 강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좋은 선수들과 함께 하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오늘도 선수들은 '철녀'가 보는 앞에서 발바닥 터지게 뛰었다.

용인=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