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의 아이콘' kt 위즈 돈 로치가 드디어 웃었다.
로치는 6일 수원 넥센 히어로즈전에 선발로 등판, 7이닝 8탈삼진 2실점 호투로 팀의 5대4 승리를 이끌었다. 시즌 막판이 돼서야 거둔 3번째 승리. 그 어떤 승리보다 값졌다.
로치는 올시즌 처음 한국 땅을 밟아 의욕이 넘쳤다. 시즌 초반 페이스도 좋았다. 3월31일 SK 와이번스와의 개막전 선발의 영광을 얻어 첫 승리를 따냈다. 이어 4월 2경기 승리는 없었지만 연속 호투로 기대감을 높였고, 4월19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7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며 시즌 2승째를 따냈다. 시즌 전부터 강력한 무기로 꼽힌 싱커가 좌타자들을 상대로 빛났고, 빠른 템포로 상대 타자들을 압박하며 좋은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이게 웬일. 4월25일 NC 다이노스전 6이닝 2실점으로 잘 던지고도 패전투수가 됐다. 이 좋지 않은 기운이 이렇게 길게 이어질 거라고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4월30일 LG 트윈스전도 5이닝 3실점(2자책점)으로 무난하게 마치고도 패전. 그러자 5월부터 페이스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5월 4경기 3패만 기록했다. 이전에는 잘 던지고도 승운이 없었다면 이 때부터는 실점도 늘어났다.
그렇게 악몽이 이어졌다. 마지막 승리 이후 19경기 5번의 노디시전에 14연패.
총체적 난국이었다. 로치 본인도 못던진 경기가 많았다. 고집스러운 성격에 계속 난타를 당해도 패턴을 바꾸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투수가 컨디션이 좋은 날, 그리고 상대 타선이 좋지 않은 날 연패 끊을 기회가 있었다. 연패 기간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투구, 3자책점 이하)가 5번 뿐이었다고 하지만, 5이닝 2~3실점 경기도 많았고 6이닝 이상 4실점으로 막은 경기도 제법 됐다. 문제는 로치가 던지는 날 지독히도 타선이 터지지 않았다. 또, 로치 선발이 예고된 날이면 안오던 비도 많이 왔다. 비가 와 등판 일정이 미뤄지면 투수의 밸런스가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kt 김진욱 감독은 이날 넥센전을 앞두고 "공은 참 괜찮다. 그런데 운이 없었다. 야수들도 그동안 로치의 승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많이 애썼다. 오히려 너무 잘 하려다보니 안되는 경기들이 있었다"고 안타까워하며 "투수는 민감하다. 수비력이 약한 팀 투수들은 고생을 많이 한다.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안타가 되면 힘이 빠지고, 또 그 주가가 나가면 계속 전력피칭을 해야하니 시즌 피로가 계속 누적됐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은 꼭 연패를 끊어야 하는데"라고 했다.
로치는 넥센전 무조건 연패를 끊겠다는 듯 이를 악물고 던졌다. 만약, 이날 패전투수가 됐다면 한 시즌 개인 최다연패 타이 기록자가 될 뻔 했다. 역대 단일 시즌 최다 연패 기록은 장명부(당시 빙그레 이글스)가 86년 4월1일 대전 MBC 청룡전부터 7월26일 잠실 MBC전까지 기록한 15연패다. 개인 최다연패 기록은 심수창(한화 이글스)의 18연패지만, 이는 3년에 걸친 기록.
로치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다했다. 7이닝 동안 103개의 공을 던지며 넥센 타선을 2실점으로 틀어막았다. 4회 마이클 초이스에 2타점 적시타를 내줘 1-2로 역전을 당해 흔들릴 뻔 했지만 이날 경기만큼은 침착함을 유지했다.
그러자 타자들이 로치를 도왔다. 6회 윤석민-유한준-박경수의 3연속 안타에 상대 폭투, 그리고 오태곤의 희생플라이로 경기 역전에 성공했다. 로치의 승리 요건을 만들어줬다. 8회에는 박경수와 이해창이 백투백 홈런을 터뜨리며 로치가 편안히 나머지 경기를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타격 뿐 아니다. 선수들은 수비에서도 더욱 집중력 있는 플레이를 선보였다. 로치도 야수들의 호수비가 나올 때마다 박수를 치며 격려했다.
그렇게 로치의 불운했던 행보는 끝이 났다. 3승14패의 초라한 기록이지만, 로치는 자신의 승수 앞에 3이라는 숫자를 보며 흐뭇하게 잠들 것이다.
수원=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