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이 전인미답의 70-70클럽 고지를 밟던 지난 17일, K리그 클래식 29라운드 포항-전북전의 또다른 관전포인트는 '포항 공격수' 양동현(31)과 '전북 센터백' 조성환(35)의 리턴매치였다.
지난 8월 5일, 양동현이 조성환의 인천전 반칙 상황 화면을 캡처해 SNS에 올린 후 맹비난했다. 양동현의 '디스(결례를 뜻하는 Disrespect의 약자, 힙합용어)'는 반향이 컸다. 급기야 양 팀 팬들의 설전으로 번졌고, K리그 팬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지난해 8월 14일 전북-포항전(0대0무), 올시즌 4월 첫 맞대결(2대0 전북 승)에서도 치열한 몸싸움, 감정 싸움을 펼쳤던 베테랑들이 논란 후 처음으로 그라운드에서 재회했다.
이날 맞대결 성사 여부는 팬들 사이에 뜨거운 이슈였다. '포항 에이스' 양동현의 선발은 기정사실, 전북 센터백 조합은 예측불허인 상황, 최강희 전북 감독은 강원전 직후 "우리도 무조건 조성환을 내보내야지" 예고했다. 농담이 아니었다. 경기 한시간 전 공개된 선발 명단에 조성환의 이름 세글자가 선명했다. "약속했잖아요. 꼭 내보낸다고." 최 감독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최 감독은 논란을 회피하지 않았다. 조성환-양동현의 흥미진진한 '그라운드 배틀'을 직접 주선했다. 그저 싸움을 붙이고자 함이 아니었다. K리그 팬들의 눈높이에서 '이야깃거리'를 원했다. "온라인 논란은 경기장에서 실력으로 보여주면 된다. 논란이 오히려 좋은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다. 재미있게 훈훈하게 바뀔 수도 있다"고 했다. "양동현이 골을 넣은 후 당당하게 '내가 실력으로 이겼다' 할 수도 있다. 조성환이 잘 막아낸다면 '이것봐, 내가 신사적으로 해도 골 못넣잖아' 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웃었다.
이날 '리턴매치'에서 정작 양동현을 그림자처럼 따라붙은 건 조성환이 아닌 '1996년생 국대' 김민재였다. 조성환과 양동현이 겹치는 장면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양동현과 김민재가 충돌하는 장면이 많았다.
이날 맞대결을 앞두고 최 감독은 이성적인 축구, 페어플레이를 주지시켰다. "올시즌 처음으로 경기전 조성환, 김민재를 불러 짧은 미팅을 가졌다"고 했다. "축구로 이기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절대 불필요한 것은 하지 말고 경기에만 집중하라"고 주문했다. "김민재를 양동현에게 붙이고, 조성환에게 컨트롤 하는 임무를 맡겼다. 두 선수가 수비 역할을 나눠서 잘해줬다"고 평가했다. 포항이 0대4로 완패하고, 이동국이 대기록을 쓰며 '맞대결 이슈'는 다소 싱거워졌다. 맞대결을 작정하고 주선한 최 감독은 "묻혀버렸다"며 못내 아쉬움(?)을 표했다.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라고 했지만, 사실 세상에 싸움구경만큼 재밌는 것은 없다. 최 감독은 SNS 논란을 '악재'가 아닌 'K리그 흥행 카드'로 인식했다. 최 감독은 상대팀 양동현의 도발도 쿨하게 받아들였다. "나는 양동현이 선배를 'SNS 디스'했다고 절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화제 삼고,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라운드에선 정면 승부하면 된다. 끝나고 서로 악수하고, 서로 미안하다 하면 끝나는 것"이라고 했다.
'1강 전북' 최 감독이 K리그를 바라보는 눈은 단순히 그라운드 안, 승부 세계에 머물러 있지 않다. "K리그는 스토리텔링이 부족하다. 치열한 승부 속에 여유를 찾기가 어렵다. 요즘같은 스플릿 정국의 분위기는 더하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K리그는 사실 너무 점잖다. 유럽에서는 상대 선수는 물론, 감독한테도 도발한다. 서로 악의적으로 비방하거나, 경기장에서 도 넘은, 비신사적 플레이만 아니라면, '복수', '라이벌', '논란'은 언제나 이슈가 되고 스토리가 된다"고 강조했다. 사실 대부분의 K리그 감독들은 윗물과 아랫물이 갈리는, '안갯속' 스플릿 정국에서 승부 이외의 것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다. 최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은 감독 일자리가 많지 않다. 영국은 프로팀만 92개다. 능력만 있으면 당당하게 일하고, 뒤도 안돌아보고 떠날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럴 수 없으니, 더 여유가 없을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망가짐을 불사했던 밀짚모자 '봉동이장' 세리머니도, 모 감독을 향한 배꼽 잡는 '머리숱' 디스도, K리그 흥행을 열망하는 '1강 사령탑'의 분투로 이해됐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