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리우올림픽. 멕시코는 조별리그 탈락 위기 속에 한국과 최종 라운드에서 맞붙었다. 0의 행진 속에 라울 구티에레스 멕시코 올림픽팀 감독이 가장 먼저 꺼내든 교체카드는 당시 21세 신예였던 이르빙 로사노(현 PSV)였다. 하지만 로사노는 한국의 압박에 막혀 이렇다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0-1로 뒤지고 있던 후반 추가시간에는 상대 선수 태클에 걸려 넘어진 황희찬을 사이드라인 바깥으로 밀어내다가 경고누적으로 퇴장 당했고, 멕시코는 결국 조별리그 탈락의 아픔을 맛봤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 본선에서 한국과 만나게 된 멕시코, 로사노는 누구보다 이를 갈고 있을 것이다. 로사노는 리우올림픽의 아픔을 딛고 멕시코 대표팀의 차세대 스타를 넘어 핵심으로 발돋움 했다. 지난 10여년 간 멕시코 대표팀의 주축으로 활약한 하비에르 에르난데스(웨스트햄), 안드레스 과르다도(베티스)가 정점을 찍었다는 평가 속에 러시아월드컵은 로사노의 무대가 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말 그대로 '폭풍성장'이다. 리우올림픽을 4개월 앞둔 2016년 2월 성인 대표팀으로 데뷔한 로사노는 러시아월드컵 북중미-카리브해(CONCACAF) 최종예선에서 멕시코 공격의 핵심으로 활약했다. 팀내에서 가장 많은 3골을 터뜨리면서 멕시코의 조기 본선행을 확정 지었다. 그의 재능을 가장 먼저 알아본 팀은 조제 무리뉴 감독이 이끄는 맨유(잉글랜드)였다. 당시 파추카에서 활약하던 로사노를 보기 위해 수석 스카우트가 멕시코 현지로 파견됐고, 구단 간 협상까지 진행됐다는 소식도 들렸다. 라이벌 맨시티도 영입전에 뛰어드는 등 프리미어리그(EPL)행은 기정사실화되는 듯 했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길은 PSV에인트호벤(네덜란드)이었다. PSV는 지난 6월 로사노와 2023년까지 6년 계약을 하며 재능을 인정했다. 로사노는 유럽 데뷔 첫해인 올 시즌 현재까지 리그 12경기서 10골을 넣는 가공할 득점력으로 에레디비지에 개인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다.
1m74의 윙어인 로사노의 최대 강점은 폭발적인 스피드다. 상대 수비라인과 거의 일직선을 이루다 대각선으로 길게 넘어오는 패스를 수비수보다 한 두 발짝 앞서 잡은 뒤 골키퍼와 단독 찬스를 만드는 '라인 브레이킹' 장면이 비일비재하다. 특히 양발을 모두 쓰고 좌우 측면을 모두 커버하는 폭넓은 활동량을 보이기에 상대 수비수들이 마크에 더 애를 먹는다. 상대 수비수가 틈을 보일 때 시도하는 순간 드리블이나 문전에서 한 박자 빠른 타이밍에 시도하는 슈팅 역시 일품이다. 몸싸움을 즐기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아왔으나 PSV에서 경험을 쌓으며 이런 약점도 서서히 보완되는 모습이다. 지난 10월 열린 벨기에와의 친선경기에서 멀티골을 쏘아 올리며 3대3 동점을 이끌어내는 등 성장세가 가파르다.
2009년 파추카 유스팀에 입문한 로사노는 19세였던 2014년 1군팀에 콜업되며 프로에 데뷔했다. 올 여름 파추카를 떠나기 전까지 3시즌 간 120경기를 뛰면서 31골을 기록했다. 지난 시즌 멕시코리그를 제패한 파추카는 로사노가 PSV로 떠난 뒤 AC밀란에서 자유계약(FA)으로 풀린 혼다 게이스케를 데려왔다. 당시 멕시코 현지에선 '파추카가 로사노의 공백을 혼다로 메운다'고 전했다.
로사노가 파추카에서 PSV로 갈 당시 이적료는 720만파운드(약 92억원)로 추정된다. 하지만 PSV 데뷔 첫 시즌 맹활약이 이어지면서 두 배에 가까운 1350만파운드(약 174억원·트랜스퍼마켓 추정치)까지 뛰어오른 상태다. 여름 이적시장에서 고배를 마셨던 맨유, 맨시티 등 '빅클럽'들도 군침을 흘리고 있다.
멕시코 팬과 언론은 로사노를 '엘 추키(El Chucky)'라고 부른다. 어릴 적 침대 밑에 숨어 친구들을 놀라게 하던 그의 외모가 유명 공포영화의 주인공 '처키'와 닮았다는데서 나온 것이다. 신태용호에 복수를 벼르고 있는 '처키' 로사노는 러시아월드컵에서 만날 멕시코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선수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