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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훈의 눈]월드컵의 메시지 '밸런스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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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 보다 중요한 특별함은 없었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이 막을 내렸다. 전 세계에서 여러 전술적 흐름에 대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프랑스의 우승을 두고 'Formidable(자격 있는)'이라고 표현했다. 박경훈 전주대 교수와 축구학과 분석팀은 전 경기 영상 분석을 통해서 '포지션 별 역할과 세계축구의 전술적 균형'과 메시지를 결산했다.

우선 월드컵 분석은 대회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 4년에 한 번이다. 세계의 주목과 조국의 기대를 온 몸에 받는다. 차원이 다른 동기부여이자 부담이다. 승리를 위한 국가별 노하우가 집약된다. 클럽과 다르다. 포지션에 원하는 유형의 선수가 없다면 사용하지 못 한다. 자원은 뛰어날 확률이 높지만, 한정적이다. 차이점이 존재한다.

▶ 풀백의 역할 변화

월드컵은 포백 대세론을 확고히 했다. 포백은 4-4-2와 4-2-3-1, 4-3-3 등으로 측면에 두 명이 배치되는 장점이 있다. 약팀들의 수비조직이 대게 4-4-2로 구성됐다. 포워드까지 가담하여 내려앉았다. 상대팀은 대체로 풀백과 센터백까지 높게 전진해야 했다. 결국 풀백의 측면 뒤 공간이 역습을 두고 수 싸움을 벌이는 중요한 전략지가 됐다.

이는 풀백의 역할 변화를 만들었다. 현대축구에서 풀백(포백의 측면수비수)는 팀의 공격조직에서 넓게 사이드로 패스 출구를 만들어야 한다. 풀백의 수준을 나눌 수 있는 요소는 '볼 소유 및 소유하지 않은 상황에서 안전과 위험에 대한 두 가지 상황을 이해하고 대처하기'다. 더 이상 풀백을 '많이 뛰고 크로스를 잘 올리는' 단순한 수준과 역할로 판단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우승팀 프랑스의 좌우풀백 에르난데스와 파바르는 소속팀에서 주전이 아니다. 전문 풀백도 아니다. 하지만 프랑스는 이들을 다른 활용법으로 밸런스를 만들었다. 에르난데스와 파바르의 높은 팀 전술 이해도와 포지션 이동으로 가능했다.

프랑스의 주요공격루트인 음바페의 역습은 전방을 향한다. 직선적이다. 빠르고 간결할수록 위협적이다. 라이트백 파바르는 굳이 빌드업에 참여하거나 높이 전진할 필요가 없었다. 프랑스가 속공을 연결하면 간격만 유지했다. 수비상황 때 더 빠른 접근과 일대일 경합으로 힘을 집중다. 파바르의 존재로 음바페는 수비부담을 덜어내고 장점을 극대화했다.

반대로 레프트백 에르난데스는 포워드처럼 전진했다. 윙포워드 포지션에서 수비형 미드필더 마투이디가 뛰면서 효과는 배가 됐다. 프랑스가 빌드업으로 하프라인을 넘어서면 마투이디는 하프라인 근처에서 수비라인을 보호했다. 상대의 역습을 경계했다. 에르난데스는 수비전환에 부담을 덜었다. 마투이디 보다 에르난데스의 전진드리블과 돌파가 빠르다. 재능이 배가됐다. 여기에 안쪽으로 파고들며 그리즈만과 연계 플레이에 힘을 실었다.

전통적 풀백 운영과 완전히 달랐다. 측면 미드필더가 볼을 잡으면 터치라인 방향으로 돌아서 공격을 시도하는 오버래핑 개념이 아니었다. 실제 FIFA 제공 데이터에 따르면 에르난데스의 경기당 평균 크로스 횟수는 3.6회 뿐이었다. 프랑스는 역습을 대비하며 공격의 성공확률을 높였다. 우승팀의 '자격'은 공수 밸런스의 완성으로 볼 수 있다.

▶ 밸런스를 측면에서 조절한다

높은 성적을 거둔 팀일수록 측면의 밸런스를 유지했다. 준우승팀 크로아티아는 득점을 리드당할 경우에만 양쪽 풀백을 동시에 전진시켰다. 주요 패턴은 라이트백 브르살리코의 크로스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높이 전진시켰다. 왼쪽 측면은 만주키치가 측면으로 이동하며 상대 센터백을 자주 끌어냈다. 사이로 벌어지는 공간으로 침투 능력이 좋은 윙포워드 레비치가 자주 침투하는 형태를 만들었다.

높이 전진하지 않았던 레프트백 스트리니치는 수비형 미드필더 브로조비치와 상대의 역습을 대비할 수 있었다. 모드리치와 라키티치의 전진에 뒤따르는 수비 부담을 덜어줬다. 크로아티아의 잘 뛰는 이미지에 가려진 단단한 밸런스였다. 브라질도 마르셀루를 높이 전진시키고 라이트백 파그너는 수비밸런스 유지를 맡겼다.

브라질을 꺾고 4강에 진출한 벨기에도 그렇다. 스리백으로 공격을 전개했지만, 수비 시엔 라이트백 뫼니에가 포백으로 합류하는 비대칭 시스템을 사용했다. 잉글랜드는 스리백으로 볼 점유를 높였다. 측면의 수비전환 약점을 스리백 스토퍼로 오른쪽 풀백 워커를 배치했다. 커버 범위를 늘릴 수 있었다. 왼쪽은 영이 높이 전진하지 않고, 알리와 스털링 및 린가드가 빠른 스위칭으로 공간을 노렸다. 스리백에서도 측면이 밸런스의 핵심이었다.

이는 평준화 된 수비조직과 연관성이 높다. 중원은 어차피 공간이 부족하다. 약팀들이 공통적으로 3선의 좁은 수비조직을 만들었다.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 한 대부분의 팀들도 라인 사이에 갭을 쉽게 노출하지 않았다. 8강까지 진출한 스웨덴부터 이란과 아이슬란드, 모로코, 호주 등 일대일이 약한 팀들은 PTA 접근을 막은 후 상대를 측면으로 밀어냈다.

열쇠는 측면이다. 스리백과 포백 모두 강팀들은 측면에서 밸런스 조절을 했다. 결국 월드컵에서 성공한 팀들은 단순히 라인끼리 간격유지와 높이 조절 이상의 차원을 발휘했다. 측면의 넓이를 반드시 구축하되, 팀별 선수 구성과 경기 운영 방식에 따른 차이만 보였다.

▶ 점유율 축구는 정말 쇠퇴했을까

이번 월드컵은 점유율이 낮은 팀들도 이겼다. 16강전이 정점이었다. 패스 횟수가 200개 이상 적은 팀들의 승리가 이어졌다. 프랑스(357회)가 아르헨티나(547회)를 이겼다. 우루과이(268개)도 포르투갈(584)을 꺾었다. 러시아(284)는 무려 1187개의 패스를 기록한 스페인을 승부차기에서 눌렀다. 8강전에서도 벨기에(370)가 브라질(557)을 눌렀다.

하지만 데이터는 허수가 따른다. 현상은 과정을 동반한다. 특히 축구의 결과는 복잡한 원인이 얽혀있다. 다양한 접근법이 필요하다. 볼 소유에 집중했던 팀들이 부진했던 점부터 짚어봐야 한다. 독일은 동기부여와 준비성 결여가 크고, 스페인은 볼을 받기 좋은 공간으로 움직이며 짧은 패스로 소유하는 '포지션 플레이'에 방점을 찍을 포워드의 파괴력이 떨어졌다.

4년 전과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FIFA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월드컵 조별리그 3경기로 탈락한 스페인은 평균 620개의 패스를 기록했다. 반면 이번 월드컵 조별리그 스페인의 평균 패스횟수는 764개다. 오히려 평균 144개의 패스가 늘었다. 이번 월드컵에서 우수한 경기력에도 아쉽게 탈락한 이란과 모로코, 포르투갈까지 제치고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

전술 트렌드로 점유율 축구의 쇠퇴를 꼽기엔 어려운 이유다. 이번 월드컵 승부처에서 몇 차례 드러난 '현상'에 가깝다. 4강 진출국 프랑스-크로아티아-벨기에-잉글랜드는 모두 점유율을 더 높이는 축구도 경기 상황에 맞춰 함께 구사했다. 최소 3경기씩은 점유율도 더 높았다. 프랑스는 우승까지 7경기 중 4경기에서만 점유율이 낮았다.

▶ 밸런스가 가장 중요하다

축구는 복합적이다. 관점의 차이를 인식해야 한다. 점유율을 포기하고 수비적으로 내려서는 팀이 많았다면, 그만큼 볼을 소유하고 공격하는 팀도 많았다. 결론은 수비적인 팀들이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면, 그 견고함이 무너진 한 끗 차이는 큰 차이다.

그 차이, 밸런스를 깨는 가장 효율적 방법은 세트피스였다. 볼이 멈춰있는 자체로 밸런스가 일차적으로 무너졌다. 공격 팀이 원하는 방향으로 능동적인 시도를 할 수 있는 반면, 수비 팀은 공격 상황에 따라서 대처해야 한다. 준비는 할 수 있지만 수동적일 뿐이다. 실제로 월드컵 169골 중 73골이 세트피스였다. 전체의 43%. 역대 월드컵 중 세트피스 득점 비율이 가장 높았다.

특히 토너먼트부터 세트피스 실점 후 밸런스가 무너지는 상황이 많았다. 8강전에서 우루과이는 프랑스의 바란에게 프리킥에서 헤딩골 실점 후 라인 간격이 무너졌다. 스웨덴도 잉글랜드의 매과이어에게 코너킥에서 헤딩골 실점 후 수비대형이 벌어졌다. 크로아티아도 결승전에서 만주키치의 자책골 후 무리하게 올라서는 모습이 보였다.

이는 결국 밸런스가 가장 단단한 대회였다는 것도 의미할 수 있다. 오픈 플레이에서 쉽게 승부가 갈리지 않았던, 수비조직의 견고함이 공격조직의 다양성 보다 앞서는 대회였다는 점이 핵심이다.

축구의 공격과 수비 원리에 따르면, 수비 시 유지하는 '밸런스'를 무너뜨릴 반대 개념은 공격의 '기동성(Mobility)'이기 때문이다. 이 모습에서 차이를 보여준 음바페(영플레이어상)와 모드리치(골든볼), 아자르(실버볼) 등이 대회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

대한민국 대표팀에게도 묻고 싶다. '우리는 어떤 축구를 할 것인가' 이전에 '우리는 경기에서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는 팀인가'라는 질문이 월드컵의 메시지에 가깝다. 그라운드에서 원하는 축구를 펼칠 힘은 투혼이나 특정한 팀 컬러가 아니다. 탄탄한 기본기에 이은 전술적 이해도가 필요하다. 여기에 코칭스태프의 계획과 국민적 응집이 필요하다.

월드컵이 남긴 메시지다. 축구에 정답은 없지만 밸런스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현대축구의 4요소인 '기술-전술-체력-멘탈'의 고른 발전도 밸런스다. 우승팀조차 매 경기 특정한 색을 보이진 않았다. 이제 세계축구는 특별함 보다 밸런스로 향한다.

박경훈 교수, 전주대 축구학과 분석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