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하반기 물가 인상으로 인해 가계 부담이 어느 때보다 높아질 전망이다. 국제유가 상승 등 대내외로 좋지 않은 경제여건들이 겹치며 역대급 물가 인상폭을 기록할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폭염까지 이어지며 무·배추·풋고추 등 날씨에 민감한 채솟값이 줄줄이 오르는 등 밥상 물가까지 들썩이고 있어 정부차원의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와 내년 초 국내 물가 인상 압력은 커지고 있다. 국제유가가 인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 초 배럴당 60달러대 초반이던 국제유가(두바이유 기준)는 올해 5월 74.4달러까지 치솟았다. 6∼7월에도 70달러대 안팎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중동 지역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공급 차질 우려 등으로 국제유가는 당분간 배럴당 70달러를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경우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아 유가 상승은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 서비스업 생산비용을 높여 전방위로 물가 상승 압력을 가하게 된다.
물가 상승 압력에 따른 물가 인상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 국제유가 상승에 따라 7월 도시가스 요금은 3.9%가 올랐다. 도시가스 요금은 일반적으로 두 달마다 책정된다. 유가 등 원재료 가격은 4개월 뒤 반영되는 점 등을 감안하면 도시가스 요금은 9월부터 3∼4%가 인상될 것으로 예상된다.
택시와 버스 등 대중교통 요금도 인상설이 솔솔 나오고 있다. 서울, 인천, 광주, 대전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택시요금 인상을 위한 용역을 최근에 끝냈다. 대구, 경기, 경남, 제주에서도 택시요금 인상을 위한 용역을 의뢰한 상태다. 지자체 차원의 용역이 끝나면 시·도 의회 보고·심의 등을 거쳐 올해 하반기나 내년 초에 실제 택시요금이 인상될 수 있다. 대전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 20% 내외 버스 요금 인상을 검토하고 있으며 서울, 경기 수원·광명은 올해 말과 내년 초 사이 상하수도 요금 인상을 계획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부동산 임대료 인상 등도 물가 인상 원인으로 꼽힌다. 올 초부터 최저임금 상승에 편승해 외식 물가와 서비스업 가격은 계속 오르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등록된 전국 16개 시도의 올해 1월 미용실 평균 가격은 1만4750원에서 6월 1070원으로 2.1%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목욕값 역시 전국 평균 5895원에서 6086원으로 3.1%(191원) 올랐다
우유는 다음 달부터 최소 50원 이상 오를 것으로 예상되면서 우유를 원재료로 삼는 아이스크림, 빵, 커피값의 인상도 예상된다. 이미 제과·식품업체들은 대표 상품들의 가격을 올렸다.
가공식품 가격도 오름세다. 지난 한달간 편의점에서 가격이 오른 품목은 30여종에 달한다. 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달 된장ㆍ어묵ㆍ햄 등 조사 대상 30여개 품목 중 절반이 전월보다 가격을 올렸다. 된장(2.6%)ㆍ어묵(2.6%)ㆍ햄(1.9%)ㆍ냉동만두(1.4%)ㆍ카레(1.4%) 등이다.
마른장마와 35도 이상 되는 폭염도 물가 상승을 압박하는 요인 중 하나다. 물 부족과 폭염 등으로 농산물 작황, 가축·어패류 생육 환경이 좋지 못해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올해는 폭염이 1994년 이후 가장 심한 수준인 만큼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지난 23일 기준 시금치(4㎏)의 도매가격은 2만4800원이다. 지난 6월 1만1415원과 비교해 두 배 이상 가격이 올랐다. 무와 배추의 가격은 전달 대비 각각 59%, 101.6% 상승했다. 풋고추와 열무, 오이, 당근 등 주요 채소값도 각각 91%, 54.4%, 27.7%, 11.3%가 올랐다.
육고기 가격도 오를 전망이다. 폭염으로 인해 폐사한 가축은 이달 23일까지 125만2300마리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8월이 되기 전이지만 지난해 폭염으로 폐사한 가축 수 86만4335마리보다 많은 수치다. 문제는 농축산물 가격을 끌어내릴 만한 하방요인이 없다는 점이다.
농축산물 가격은 다른 물가지표와 달리 소비자가 느끼는 체감 정도가 가장 높은 분야다. 특히 인위적인 물가 조절이 쉽지 않아 지속기간이 길다. 공공요금 인상으로 시작된 높은 물가와 밥상물가 인상이 동시에 진행되면 가계에서 느끼는 부담감은 증가한다. 가계부담은 민간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고, 내수경제가 침체되며 악순환은 반복된다.
다양한 물가 인상 압박 요인으로 좋지 않은 환경에서도 정부는 아직 물가 인상을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 정부는 지난 9일 열린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 "하반기 전반적인 물가 흐름이 안정된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업계 안팎에선 이같은 흐름이 계속된다면 금리 인상 요건 등도 충족되는 만큼 가계부담 안정화를 정부차원의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국제유가 오름세와 공공요금 인상, 폭염 등 대내외적 좋지 않은 환경이 물가 인상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며 "우선 가계부담 완화 차원에서 정부가 물가 인상 관련 리스크 요인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생활물가 안정화를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김세형 기자 fax123@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