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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연속 상위스플릿' 제주, '정체성 확립'이 필요한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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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가 가까스로 상위스플릿행에 성공했다.

지난 시즌 준우승을 차지했던 제주는 시즌 중반 15경기 무승의 늪에 빠지는 등 어려움을 겪었지만, 막판 저력을 발휘하며 6위 자리를 지켰다.

상당히 의미있는 성과다. 제주는 K리그1이 12개팀 체제로 자리잡은 2014년부터 올해까지 5시즌 연속 상위스플릿행을 달성했다. 전북과 함께 유이한 기록이다. '전통의 강호' 울산, 서울, 수원, 포항도 이 기간동안 한두차례씩 하위스플릿행의 쓴 맛을 봤다.

조성환 감독 부임 이래 제주는 꾸준함을 유지하며 확실한 상위권 팀으로서의 이미지를 다지는데 성공했다.

제주의 시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목표인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진출 가능성이 남아있다. FA컵 우승팀에는 ACL 직행권이 주어진다. 울산이 리그에서 3위 이내에 들고, FA컵 우승을 차지할 경우 4위까지 ACL에 갈 수 있다. 제주(승점 44)와 4위 수원(승점 49)과의 승점차는 5다. 조 감독은 "34라운드부터는 더 좋은 경기를 보여주겠다"며 의지를 다지고 있다.

하지만 ACL 진출만큼, 아니 그 보다 더 중요한 과제가 있다. 바로 '새로운 정체성 확립'이다.

지난 몇년간 제주의 목표는 상위스플릿, ACL 진출이었다. 2015년 기적같은 상위스플릿행, 2016년 극적인 ACL행을 거머쥔 제주는 한단계 업그레이드에 성공했다. 이제 매시즌 목표에 근접하고 있다. 조 감독 부임 후 위닝 멘털리티를 더한 제주는 어느덧 상대하기 대단히 까다로운, 15경기 무승의 수렁 속에서도 반전을 노릴 수 있는 팀으로 변모했다.

이제 새로운 목표를 향한 기로에 서 있다. 화두는 분명하다. '우승을 향해 갈 것인가, 아니면 지금의 자리에 만족할 것인가.'

사실 올 시즌 제주의 부침은 '철학의 부재'에서 출발한다. 지난 시즌 폭풍 영입을 단행하며 준우승이라는 값진 열매를 맺었던 제주는 올 시즌을 앞두고 유독 잠잠한 겨울을 보냈다. 외국인 선수를 제외하고는 선수 영입이 없었다. 표면적 이유는 '안정적인 선수단 운영'이었다. 제주는 몇년간 계속된 리빌딩을 단행했다. 물론 돈 문제가 가장 컸다. 지난 몇년간 성적이 올라가며 선수들의 연봉도 함께 올라갔기 때문에 선수 영입 자금이 부족했다.

하지만 선수단 운영은 단순히 돈으로 계산할 문제가 아니다. 영입과 방출은 돈 이상의 의미가 갖는다. 그 자체만으로도 절대 1강의 전력을 갖고 있는 전북이 매 겨울 선수 영입과 방출에 올인하는 이유가 있다. 막강한 전력을 갖춘 레알 마드리드와 토트넘 조차 잠잠한 오프시즌의 대가를 충분히 치르고 있다. 제주는 너무 안일한 생각으로 시즌을 시작했다. 더 큰 문제는 제주 운영진의 마인드에 우승에 대한 '의지' 자체가 없었다는 점이다.

제주는 2017년 준우승을 차지했다. 일반적이라면 다음 시즌 목표는 당연히 우승이 돼야 한다. 하지만 올 시즌 제주의 목표는 ACL 진출이었다. 기업으로 치면 전년도 매출보다 하락한 목표치를 잡은 것이다. 공교롭게도 지난 2011년과 오버랩된다. 2010년 깜짝 준우승을 거머쥔 제주는 2011년 9위에 그쳤다. 당시에도 내부 목표는 '중위권'이었다. 전력 보강 대신 준우승의 주역들을 너무 쉽게 내줬다. 현재 제주의 틀을 만든 박경훈 전 제주 감독은 "2011년을 잘 보내지 못한게 너무나 아쉽다. 그때 구단에 적극적으로 요구를 해서 우승권 전력을 만들었더라면 아마도 제주는 부침 없이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거나, 우승을 바라보는 팀이 됐을 것"이라며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제주는 올 시즌에도 시즌 중 오반석을 내보냈다. 15경기 무승의 수렁 중 내린 결정이다. 이창민, 마그노 등도 시즌 중 이적을 추진했다. 물론 좋은 오퍼가 오면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우승이 목표라면 할 수 없는 결정들이다. 내보내면 그에 준하는 선수를 데려와야 한다. 제주는 과연 무엇을 원하는 팀인가. 셀링 클럽인가. 그렇다면 유소년 육성에 더 많은 투자를 하고, 그 목표에 맞게 선수단을 이끌면 된다. 하지만 현재 보다 더 큰 목표 달성을 원한다면. 지금 처럼 운영을 해서는 안된다.

제주는 벌써부터 내년을 준비하고 있다. 새로운 외인도 알아보고, 스쿼드 강화를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하지만 그 보다 앞서 먼저 정리돼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진정 무엇을 할 것인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정체성 확립'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