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님 때문에 시합을 못나갔다 생각하면, 지금 이 시간이 없었을 겁니다."
SK 와이번스의 이번 플레이오프는 '감강민 시리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베테랑 김강민은 2일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의 플레이오프 5차전 9-10으로 밀리던 연장 10회초 극적인 동점 솔로포 포함, 이번 플레이오프 5경기 21타수 9안타(3홈런) 타율 4할2푼9리 6타점을 기록하며 시리즈 MVP에 선정됐다. 1, 2차전 귀중한 홈런을 치고 공-수에서 엄청난 활약을 펴쳤다. 기자단 투표 결과 65표 중 40표를 받았다. 트레이 힐만 감독은 5차전 후 "김강민은 정말 훌륭했다. 전반기 2군에서 고생을 했지만, 철저한 준비를 해 1군에 와 좋은 모습을 보였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선수 입장에서는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면서도 서운할 수 있다. 힐만 감독은 올시즌 초반 김강민에게 지독하리만큼 기회를 주지 않았다. 개막 엔트리에는 포함됐지만 5일 만에 2군에 내려갔고, 6월 중반 1군에 올라왔지만 그의 역할을 사실상 백업이었다. 사실 이번 포스트시즌도 노수광이 손가락 골절상을 당하지 않았다면, 김강민이 이런 영광이 주인공이 되기 힘들었을 지 모른다. 주전 중견수의 부상에 힐만 감독은 어쩔 수 없이 김강민 카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베테랑 선수가 자신에게 한국시리즈행 티켓을 선물했으니 미묘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다.
김강민은 2001년 입단해 2000년대 후반 SK 왕조 건설의 주축이었던 선수다. 주전으로만 뛰던 선수가 기회를 얻지 못하고, 2군에만 있어야 하는 상황. 힐만 감독에게 솔직히 섭섭하지 않았을까. 김강민은 이에 대해 "만약 내가 감독님 때문에 시합을 못나갔다고 생각했으면 지금 이 시간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며 "내가 슬럼프에 빠졌고, 내가 못해 빠진 거라고 생각하니 편했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내 자신을 스스로 바꿀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지난해 1번타자는 분명히 나였다. 그런데 부상이 오고 여러 악재가 겹쳤다. 불가피하게 감독님은 노수광을 기용하실 수밖에 없었고, 노수광이 그 기회를 잡아 1번 자리가 바뀐 것이다. 그 뒤에도 내가 잘했다면 시합을 나갔겠지만, 내가 못해서 못나간 것 뿐이다. 그래서 올시즌 초반에도 누구를 탓하기 보다는 내가 먼저 변하자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김강민은 이어 "솔직히 굉장히 힘든 시간이었다. 그래도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다. 시즌 초반 타격 페이스가 안좋았다. 2군에서 모든 걸 내려놓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했다. 주변에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다. 이 것들이 모여 1군에서 플레이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고 말했다.
김강민은 힐만 감독과의 관계에 대해 "얼마 전에도 얘기를 나눴다. 많이 배우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배우는 자세로 임할 것이다. 내가 몇 년을 더 선수로 뛸 지 모르겠지만 조금 더 잘하려고 노력하며 그렇게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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