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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원 김기훈 원태인, 아픈 홈런은 지나가는 비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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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는 투수에게 홈런은 나무에 몰아치는 거센 비바람과 같다. 정신 없이 흔들리지만 단단히 뿌리를 박고 버티면 지나간다. 날이 개면 결국 이 때 맞은 비는 성장의 자양분이 된다. 투수는 맞으면서 큰다. 뿌리채 뽑힐 정도로 너무 큰 비바람만 피하면 된다.

프로야구 판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새내기 투수들. 씩씩하다. 볼넷을 남발하며 도망다니지 않는다. 맞더라도 들어간다.

과감한 승부, 결과가 좋다. 피하지 않는 만큼 피할 수 없는게 있다. 홈런이다. 선발로 활약중인 KIA 김기훈도, 불펜에서 뛰고 있는 삼성 원태인, KT 손동현도 아픈 홈런을 맞았다. 김기훈은 3일 삼성전에서 이원석에게 역전 투런포를 허용했다. 원태인도 잊을 수 없는 홈런 악몽이 있다. 지난달 30일 대구 두산전에 9회 마운드에 올라 오재일에게 역전 3점포를 내줬다. 손동현도 지난달 26일 창원 NC전에서 8-8 동점을 허용한 11회말 마운드에 올라가자마자 모창민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세 투수 모두 데뷔 첫 피홈런이 모두 데뷔 첫 패로 이어졌다.

이 영상들을 친구인 롯데 서준원이 고스란히 지켜봤다.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아무리 태연한 척 해도 투수에게 홈런은 아프고 두려운 순간이다.

"솔직히 친구들이 홈런을 맞는 걸 보니 조금 안심이 되더라고요. 저는 아직은 안맞았지만 언젠가 맞을테니까…"

4일 SK전을 앞두고 취재진과 친구들 이야기를 하던 중 주제가 홈런으로 흘렀다. 친구들이 먼저 맞은 매. 그도 살짝 두려운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격적 피칭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언젠가는 겪게될 피할 수 없는 순간.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6-2로 앞선 7회 1사후 서준원은 선발 레일리에 이어 두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첫 타자 전준우에게 우전안타를 허용했다. 후속타자 강승호에게 느린 커브 2개를 잇달아 던졌다. 모두 볼 판정. 스트라이크를 잡기 위해 들어간 143㎞ 직구가 노림수에 딱 걸렸다. 좌중월 투런홈런. 경기 후 강승호는 그 상황에 대해 "앞선 2개의 공이 모두 변화구여서 직구만 노리고 있었는데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경험의 차이였다.

주형광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올랐다. 공을 단 7개만 던진 서준원은 곧바로 진명호와 교체됐다. 이 홈런을 시작으로 결국 롯데는 동점을 허용하고 연장 11회 승부 끝에 역전패 했다. 서준원으로서는 더 아픈 결과였다.

류현진은 3일 샌프란시스코전에서 시즌 2승째를 거뒀다. 개막전에 이어 2경기 연속 무4사구 경기를 펼쳤다. 대가가 있었다. 매 경기 홈런 1개씩을 허용했다. 이날 상대 투수 범가너에게 홈런을 허용한 그는 경기를 마치고 이런 말을 했다.

"홈런은 맞을 수 있다. 투수를 상대하더라도 볼넷 주는 것보다는 홈런 맞는 게 낫다. 당연히 맞지 않는 게 좋겠지만, 볼넷으로 그냥 내보내는 것보다는 낫다. 누구를 상대해도 볼넷은 좋지 않다."

홈런이란 비바람을 흠뻑 맞아가며 한 뼘씩 자라나고 있는 한국 야구 미래를 이끌 동량들. 국내를 넘어 메이저리그를 호령하고 있는 대선배의 말을 깊이 새기기를 바란다. 피할 수 없다면 맞서야 한다. 홈런을 맞아봐야 안 맞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인천=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