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야구팬들은 늘 세기의 매치를 꿈꾼다.
지상 최고의 어깨가 펼치는 양보 없는 맞대결. 최동원 vs 선동열 같은 세기의 매치는 훗날 영화 소재가 됐을 정도였다.
현존 최고의 맞대결 카드가 남아있다.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만나게 될 류현진 vs 김광현이다. 한살 차이 선후배인 두 선수는 국내 프로야구를 지배한 대표적 왼손 투수들이었다. 둘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환상의 원-투 펀치로 활약하며 우승을 견인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류현진 김광현은 윤석민과 함께 대표팀 트로이카로 활약했다.
팬들이 꿈꾸던 세기의 좌완 맞대결. 쉽지 않았다. 이뤄질 듯 애를 태우다 번번이 무산됐다. KBO리그에서 함께 뛰던 2007년부터 2012년까지 6년 간 선발 맞대결이 단 한차례도 없었다.
승리 보증수표인 에이스 간 맞대결은 사실 당사자나 현장에서는 썩 내키지 않는 그림이다. 둘 중 하나는 희비가 엇갈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한팀은 에이스를 내고도 패할 수 밖에 없다. 단기전이 아닌 긴 페넌트레이스를 운영해야 하는 사령탑 입장에서는 '확실한 승리'를 포기하는 게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다. 이래도 1승, 저래도 1승이다. 게다가 자칫 라이벌 의식으로 무리하다 에이스의 몸상태에 탈이 날 수도 있다. 결과에 대한 부담이 있는 선수 당사자도 썩 내키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결국 큰 티 안나게 일정을 조정해 안 만나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2010년 한화 이글스에 한대화 감독 부임 후 분위기가 살짝 달라졌다. 한 감독은 팬 서비스를 위해 "류현진을 김광현과 안 붙일 이유가 없다"고 공언했다. 빅뱅 기회는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일요일이던 2010년 5월23일 대전 한화-SK전에 류현진 vs 김광현이 선발 예고돼 포스트시즌을 방불케 하는 관심을 모았다. 류현진은 당시 "제가 SK전에서는 잘 던졌으니까 박빙이지 않을까 싶다"고 조심스레 전망했다. 패기의 김광현은 "패하고 싶지 않다. 내가 현진이 형 보다 잘 하는건 없지만 붙어보고 싶다"며 의욕을 드러냈다. 하지만 세기의 빅매치는 경기 시작 1분 전 내린 비에 씻겨 내려가며 없던 일이 됐다.
이후 8월17일 다른 팀을 상대로 선발 등판한 두 투수는 22일 대전 한화-SK전 선발 맞대결 가능성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또 한번 무산됐다. 류현진이 17일 LG전에 9이닝 121구를 던지면서 "4일 휴식 후 등판은 무리"라는 한대화 감독의 판단이 있었다. 2010년은 두 선수 모두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한해였다. 그래서 더욱 무산된 맞대결이 아쉽게 느껴진다. 류현진은 16승 4패와 평균자책점 1.82, 탈삼진 187개로 평균자책점, 탈삼진 1위에 올랐다. 김광현은 17승 7패, 평균자책점 2.37, 탈삼진 183개를 올렸다. 류현진은 데뷔 첫 1점대 평균자책점과 23연속경기 퀄리티스타트에도 불구, 김광현에게 다승왕을 내주는 바람에 트리플 크라운 달성에 실패했다.
영영 못 볼거 같았던 류현진 vs 김광현 빅매치. 꺼진 줄 알았던 불씨가 살아났다. 바로 메이저리그 무대다. 18일(한국시각) 김광현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2년 800만 달러(한화 약 93억4000만원)에 계약하면서 꿈의 매치가 가능해졌다.
FA 류현진의 거취가 정해지지 않았지만 김광현이 빅리그 보장 계약을 한 만큼 만날 가능성은 있다. 류현진이 원 소속팀 LA다저스 등 같은 내셔널리그 팀에 안착할 경우 확률은 더 높아진다. 다저스는 내년 시즌 세인트루이스와 7차례 맞붙을 예정이다.
세기의 매치업이 성사될 경우 부담스러운 쪽은 류현진이다. 빅리그에 한참 일찍 진출해 레벨이 달라진 선배. 잘해야 본전이다.
실제 김광현과 맞대결 가능성을 묻자 류현진은 손사래를 쳤다. 류현진은 김광현과 나란히 참석한 연말 시상식에서 "서로 다른 리그에 가서 최대한 상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장 밖에서 보는건 좋지만 경기장 안에서는 서로 부담스러울 것 같고 별로 반갑지 않을 것 같다"며 웃었다.
반면, 잃을게 없는 도전자 김광현은 달랐다. 그는 "현진이 형과 같은 리그에 있으면 좋겠다. 그래야 대화도 많이 하고. 물어볼 것도 많고, 배울 것도 많다. 현진이 형의 모든 노하우를 캐내는 거머리 같은 존재가 되겠다"며 웃었다.
대한민국 현존 최고 투수들의 선발 맞대결 가능성. 태평양을 건너 미국 땅에서 다시 부활할 공산이 커지고 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