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압도적인 경기는 없다. 그런데 꾸역꾸역 이긴다.
2020년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첫 경기부터 그랬다. 9일 중국과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불안한 경기력을 보이던 김학범호는 후반 추가시간 이동준(부산)의 극장골로 1대0으로 이겼다. 12일 이란과의 2차전에서도 2-0으로 기분 좋게 앞서가다 후반 한골을 내주며 흔들렸지만 2대1로 이겼다. 15일 우즈베키스탄과의 3차전 역시 어려운 경기를 했지만 오세훈(상주)의 결승골로 2대1로 웃었다.
19일 요르단과의 8강전이 백미였다. 추가골을 넣지 못하고 불안한 리드를 이어가다 한방을 얻어맞았다. 1-1, 모두가 연장을 생각하던 후반 추가시간 이번에는 이동경(울산)의 왼발이 번쩍였다. 환상 프리킥으로 2대1 승리를 챙겼다.
언급한데로 이번 대회, 매경기 살얼음판을 걸었다. 물론 상대가 강하기도 했지만, 시원한 경기가 없었다. 숱한 기회를 만들었지만 추가골에 어려움을 겪었고, 그때마다 불안한 수비가 한번씩 사고를 쳤다. 그런데 이번 김학범호에는 이전 대표팀과 다른 묘한 힘이 있다. 바로 '승부처에서의 집중력'이다. 김학범호는 고비에서 유난히 강하다. 상대가 흐름을 탈때 이를 막아내는 힘이 있고, 절체절명의 순간에는 결정을 짓는다. 때문에 지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준다.
그 힘의 원천은 '풍부한 경험'이다. 이번 대표팀, 스타는 없지만 프로 경험은 그 어느 대표팀 보다 많다. 일단 대학 소속은 골키퍼 안찬기(인천대) 뿐이다. 나머지 22명의 선수들도 '무늬만 프로'가 아니다. 당당히 리그에서 경기를 소화하고 있는 '진짜 프로'다. 주축인 이동준(부산·74경기) 김대원(75경기) 정승원(73경기·이상 대구) 김진야(서울·73경기) 등은 K리그에서 70경기 이상을 뛰었다. 공격형 미드필더와 수비형 미드필더를 오가는 김진규(부산)는 벌써 99경기를 소화했다.
물론 과거 대표팀에도 프로 선수들은 많았다. 젊은 선수들이 조기 프로행을 대거 택한 2000년 시드니 대회부터 올림픽대표팀의 무게추는 대학에서 프로로 이동했다. 하지만 문제는 경기 경험이었다. 프로 무대에서 체계적 훈련과 지원을 받았지만, 경기 자체는 뛰지 못했다. 감독들도 젊은 선수들의 재능은 인정했지만, 당장의 성적 앞에서 미래를 택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컵대회 등이 폐지되며, 이들의 무대는 R리그 정도에 국한됐다. 주축들의 경기 경험 부재는 올림픽대표팀 감독들의 공통된 고민이었다. 지난 리우올림픽 당시 신태용 감독은 선수들에게 "무조건 뛰어야 산다"는 말을 했을 정도.
하지만 이번 대표팀 선수들은 다르다. 2부리그의 탄생, 그리고 한국프로축구연맹의 22세 선수 이하 의무 기용 조항으로 뛸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났다. 오세훈 김태현(울산) 등은 2부리그 임대를 통해 출전 기회를 늘렸다. 1부리그에 비해 재정 경쟁력이 떨어지는 2부리그 팀들은 어린 선수들을 적극 활용했다. 조규성 맹성웅(이상 안양) 이동준 김진규 등은 2부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22세 이하 의무 조항을 통해 1부리그에서도 경험을 쌓는 선수들도 늘어났다. 송범근은 신인들의 무덤이라 했던 전북에서 두 시즌간 무려 68경기를 뛰었다.
승부처에서 오히려 경험 부족을 노출했던 이전 대표팀과 달리, 이번 대표팀은 위기의 순간 오히려 힘을 냈다. 물론 김학범 감독의 지략도 빛났지만, 선수들은 고비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김 감독의 지시를 잘 소화해 냈다. 김 감독이 적극적인 로테이션을 할 수 있는 것도, 선수들이 다양한 상황에서 경기를 준비하는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승리를 챙길 수 있는 경험을 앞세운 김학범호, 이제 도쿄까지 1승 남았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