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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구→레알 캠벨→아스널 RVP→맨유…해축 논란의 이적 10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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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이적'이라는 녀석은 참으로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다. 보는 이들을 웃게 하거나, 언짢게 하거나, 기분을 몹시 나쁘게 만들 수 있다. 스포츠전문방송 'ESPN'은 이 중 3번째에 해당하는 축구선수 논란의 이적 TOP 10을 뽑았다.

10위는 코로나19 정국에서 한 차례 주목을 받았던 존 오비 미켈이다. 2005년 1월 맨유는 노르웨이 린 오슬로에서 뛰던 나이지리아 미드필더 미켈(당시 19세)의 영입을 발표했다. 비슷한 시기에 프리미어리그 라이벌 첼시도 영입을 주장했다. 결국 국제축구연맹(FIFA)이 두 구단의 분쟁에 개입해 미켈 개인의 결정에 맡겨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켈의 선택은 첼시였다. 맨유는 실제로 영입하지 않은 선수에 대한 보상금으로 1200만 파운드를 받았다. 아주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닌 걸로 보인다.

9위는 카를로스 테베스. 한때 축구계를 시끄럽게 했던 서드-파티 오너십의 대표격으로 맨유와 2년 임대 계약(2007~2009년)을 체결했다. 맨유는 테베스의 활약에 매료돼 완전이적을 추진했지만, 맨체스터 라이벌 맨시티가 가로챘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맨시티는 테베스를 '웰컴 투 맨체스터' 대형 광고판에 걸었다. 알렉스 퍼거슨 당시 맨유 감독은 "멍청하고, 무례한" 포스터이고, 시티는 "작은 마음을 지닌 작은 구단"이라고 공격했다.

8위는 존 로버트슨으로 1982년 노팅엄 포레스트에서 라이벌 더비 카운티로 이적해 큰 화제를 뿌렸던 인물이다.

7위는 로빈 판 페르시. 2012년 아스널에서 맨유로 이적하며 아스널 팬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내 마음속에 있는 작은 아이의 말에 귀 기울였다. 그 아이가 '맨유'라고 외쳤다"는 멘트는 지금도 회자된다. 아스널에서 기나긴 시간 동안 타이틀에 목말라했던 판 페르시는 이적 첫 시즌 26골을 넣으며 생애 첫 프리미어리그 타이틀을 그 '아이'에게 선물할 수 있었다.

6위는 애슐리 콜. 아스널에서 하필 런던 라이벌 첼시로 이적해 논란을 일으켰다. 대놓고 돈이 이적의 주된 이유라고 밝히면서 돈을 뜻하는 캐쉬를 따와 '캐슐리 콜'이란 별명으로 불렸다. 이적 과정에선 주제 무리뉴 당시 첼시 감독이 아스널 소속이던 콜과 불법적으로 접촉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벌금을 물기도 했다.

1983년 아약스에서 페예노르트로 이적한 '전설' 요안 크루이프가 5위에 랭크했다. 당시 36세였던 크루이프는 아약스 구단에서 연장계약을 제시하지 않는 것에 대로해 라이벌 페예노르트로 이적해버렸다. 페예노르트에서 아약스 수뇌부 보란 듯 더블 우승을 이끌고, 네덜란드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크루이프답다.

4위로 '원조 꽁지머리' 로베르토 바지오가 뽑혔다. 1990년 피오렌티나가 당시 월드 레코드인 800만 파운드에서 바지오를 유벤투스로 보냈다. 두 구단은 흔히 말하는 '라이벌'이 아니었다. 하지만 피오렌티나 팬들은 경찰력이 동원될 정도의 폭동을 일으켰다. 두 팀간 경기에서 교체아웃된 바지오는 비올라(피오렌티나 애칭) 팬들을 향해 자주색(피오렌티나 전통색) 스카프를 흔들었다. "내 심장이 자주색"이란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 행동 이후 300여명의 유벤투스 팬들이 항의 차원에서 유벤투스 훈련장을 방문했다. 판타지스타 바지오는 그런 선수였다.

3위는 축구계의 유명한 '유다' 중 한 명인 솔 캠벨이다. 2000~2001시즌을 마치고 캠벨과 토트넘의 계약이 만료됐다. 그 앞에 여러 선택지가 놓여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토트넘에 12년간 머문 캠벨이 그 많은 옵션 중 아스널을 고를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자유계약이었기 때문에 토트넘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캠벨은 아스널에서 프리미어리그, 나아가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수비수로 우뚝 섰다.

2위는 엘 클라시코의 다리를 건넌 루이스 피구다. 2000년 레알 마드리드 회장 선거에 출마한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은 이름값 높은 선수를 공약으로 내걸 필요가 있었다. 그 선수가 바로 바르셀로나의 상징적인 선수 중 하나인 피구였다. 페레스 회장은 3800만 파운드에 달하는 바이아웃 금액을 들여 축구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영입에 성공했다. 다른 의미에서 충격을 받은 바르셀로나 팬들은 2002년 캄누(바르셀로나 홈구장)에서 피구를 향해 돼지머리 기타등등을 던졌다.

대망의 1위는 모 존스턴이다. 1989년, 프랑스 낭트에서 2년간 활약한 존스턴의 다음 행선지는 셀틱으로 점쳐졌다. 그는 앞서 셀틱에서 100경기 이상을 뛰며 1986년 리그 우승에 일조한 바 있다. 셀틱 입단 기자회견을 하고 셀틱 파크 밖에서 사진도 찍었다. 하지만 이적은 성사되지 않았다. 며칠 뒤 존스턴은 레인저스의 푸른색 유니폼을 입고 나타났다. 셀틱 팬들은 배신감에 몸을 떨었고, 레인저스 팬들은 최초의 가톨릭 선수(*레인저스의 기반은 개신교다)란 이유로 환영하지 않았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레인저스의 장비 담당자는 존스턴의 의류를 정리하길 거부했다. 존스턴이 셀틱과의 '올드펌 더비'에서 득점하기 전까지 초콜릿바도 주지 않았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