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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핫피플]J리거? 한국선수만 있는게 아니다…한국인 최초 이상기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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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최만식 기자] 'J리그를 누비는 한국인 포청천을 아시나요.'

흔히 일본 프로축구에 진출한 한국인이라 하면 J리거(축구선수)를 떠올린다. 하지만 선수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라운드의 '포청천(심판)'으로 맹활약 중인 한국인이 있다. 주인공은 이상기씨(40)다. 현재 J2리그 부심인 그는 일본 프로축구 1급심판 200여명 가운데 유일한 외국인 심판이자 최초의 한국인이다.

2, 3급 심판 가운데 교포나 한국계 일본인이 더러 있지만 순전히 한국에서 나고 자란 이는 이씨가 유일하다.

일본 심판계에서 희귀한 '타이틀'만큼 그가 지나온 길도 특이하다. '열혈남아' 그 자체다. 대구한의대 체육학과 1학년이던 2000년 심판 자격증을 따고 심판 활동을 시작했다. 초등학교까지 축구선수를 하다가 부상으로 그만뒀다. 이후 조기축구회에서 공을 찼는데 회원 중에 축구심판으로 활동하는 어른들이 많아 심판에 관심을 갖게 됐다.

대학 졸업 후 취업에 도움이 될까 싶어 무심코 따두었던 심판 자격증이었다. 이후 대학 공부를 병행하면서 대학축구리그 1급심판으로 활동하다가 2009년 무릎 부상으로 1년째 재활하던 중 슬럼프를 맞았다.

이씨는 스포츠조선과의 국제통화 인터뷰에서 "부상으로 인한 휴식기가 장기화되면서 직업으로서 심판에 대한 비전이 보이지 않았고, 보이지는 않는 라인(줄서기) 관행에 대해서도 회의감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못다한 공부나 계속하자'는 마음에 무작정 일본으로 떠났다. 일본어 '히라가나'도 모른 채 일단 부딪혀 보자는 마음이었단다. 처음엔 등반 관련 공부를 하고 싶었다. 심판 활동을 하기 전 그의 꿈은 전문 산악인이었다. 고교 시절 킬리만자로, 대학 시절 히말라야 원정에 성공했던 경험도 있었다. 하지만 일본 등반계의 보이지 않는 벽에 또 좌절했다. 그렇다고 유학생활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스포츠 관련 심리학으로 도전 대상을 바꿔 면학생활에 들어갔다.

이른바 '마음 잡고 공부 좀 하자'고 했는데 마음 깊이 묻어뒀던 '축구사랑'을 자극하는 계기가 생겼다. 한국에서 같이 심판을 했던 고향(대구) 후배가 국제심판이 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친구도 했는데, 나도 해보자'며 2011년 5월부터 다시 J리그 심판에 도전을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이씨는 히로시마대학교에서 보건심리학 석사를 거쳐 스포츠심리학 박사과정 수료까지 했다.

이씨는 한국에서의 심판 경력 덕분에 어려운 1급심판 과정을 무난히 통과했다. 2008, 2009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주관으로 풋살강사 교류행사가 있었는데 이때 강사로 초청된 일본축구협회 심판위원장과 인연을 맺은 게 도움이 됐다. 그런 인연을 통해 한국 심판 자격을 인정받았고 실기와 면접을 단번에 통과하면서 J리그 1급 자격을 따는데 성공했다.







이씨는 2016년부터 J2리그에 배정돼 주심으로 활동하다가 2017년부터 부심 전담 심판으로 활약하고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심판을 주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게 힘들다고 한다.

이씨 역시 '투잡'을 뛴다. 재일교포가 경영하는 투자자문회사에서 해외사업담당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경기가 있을 때 그라운드로 달려간다. 이씨는 "다행히 사장님이 교포이셔서 유일한 한국인 직원인 나에게 배려를 많이 해주신다"며 웃었다.

2019년 시즌 그는 일본 프로축구에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J2리그 13라운드(5월 12일) 에히메FC-가고시마FC의 경기에서 부심으로 온사이드 판정을 내렸는데 보는 각도에 따라 오프사이드처럼 보이기도 해서 서포터스의 거센 항의에 시달렸다. 하지만 사후 판독 결과 이씨의 정심으로 판명돼 '꼼꼼하게 잘 보는 심판'이 됐다.

이씨는 "일본에서 유일한 외국인 심판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고, 자부심도 느낀다. 한국인 심판이라고 흠이 되지 않도록 더 노력하게 된다"면서 "경기장에서 한국 선수를 볼 때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면 놀라면서 반가워 하는 선수들 모습에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고 말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선수는 J2리그를 거쳐 올해 전남 수비수로 입단한 박찬규라고 했다.

이씨는 먼 훗날 목표로 심판행정 전문가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일본은 월드컵 때마다 일본인 심판을 배출하는데 한국은 2010년 남아공대회 이후 월드컵 국제심판이 없는 게 아쉽다. 한·일 심판 교류에 작은 힘이 된다면 언제든, 어디든 달려갈 것"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심판강사 자격증도 취득해뒀다고 한다. 역시 '열혈남아' 이상기였다.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