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이 해리 케인의 4도움을 도운 것이다."
'레전드 골키퍼' 김병지 한국축구국가대표 이사장(50)은 손흥민(28·토트넘)이 터뜨린 '손세이셔널'한 4골의 순도와 가치를 이렇게 표현했다.
토트넘은 20일(한국시각)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2라운드에서 손흥민의 4골, 해리 케인의 1골에 힘입어 5대2로 대승했다. 대니 잉스에게 선제골을 허용하고 0-1로 밀리던 전반 45분 이후 손흥민이 혼자 4골(전반 17분, 후반 2분, 후반 19분, 후반 28분)을 몰아쳤고, 케인이 이 4골을 모두 도왔다.
손흥민은 2015년 8월 EPL 이적 후 첫 해트트릭과 함께 한경기 4골 기록을 썼다. EPL 역사상 28번째 진기록이다. 그러나 현지 일부 매체가 4골을 넣은 손흥민보다 4도움을 기록한 '잉글랜드 캡틴' 케인을 대서특필하고, 조제 무리뉴 감독 또한 "맨 오브더 매치(Man of the Match, MoM)는 해리 케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저평가' 논란이 제기됐다.
K리그 708경기 최다출전에 빛나는 '레전드 철인' 김병지 이사장은 21일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손흥민이 왜 이날 경기의 '반박불가' MoM인가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물론 케인이 패스를 잘한 것도 있지만, 그런 패스가 들어온다고 4골 다 쉽게 넣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선수에게 갔다면 한 골도 안들어갔을 수도 있다"고 냉정하게 바라봤다. 스피드, 컨트롤, 침착한 피니시 등 손흥민의 능력이 골의 가장 큰 이유라는 설명이다. 김 이시장은 "4골 모두 지분의 70~80%는 손흥민에게 있다. 손흥민이 다 만들어 넣었다. 오히려 케인이 4도움을 기록하게 해준 손흥민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이사장은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전반 막판 첫 번째 골은 패스가 길었다. 손흥민이 스피드를 활용해 바깥쪽으로 빠진 것을 멈춰 세워서 골대 각 없는 쪽으로 때려넣었다"며 결코 쉬운 골이 아니었음을 강조했다. "달리는 속도, 볼에 자기 몸이 근접할 때 수비의 위치 등을 고려했을 때 속도 조절이나 컨트롤을 자칫 삐끗하면 중력이 작용해 통상 선수가 넘어진다. 그 컨트롤이 정말 대단했다"고 극찬했다. "두 번째 골도 그랬고, 마지막 골 가슴 트래핑 후 컨트롤 하는 장면도 손흥민의 능력이다. 바깥 쪽으로 열어주면서 스스로 골 찬스를 만들었다. 앞쪽에 수비가 2명 있었다. 만약 그쪽으로 공이 갔다면 수비에게 다 커팅됐을 것이다. 영리하게 반대쪽으로 열어주면서 골키퍼와 1대1 상황을 만든 후 침착하게 밀어넣었다. 골키퍼 움직임을 이미 다 봤다는 이야기"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백전노장' 김 이사장은 "케인 등 선수들이 이를 알고 있다"고 했다. 4번째 골 직후 토트넘의 세리머니를 언급했다. "4골을 합작한 후 케인이 손흥민을 번쩍 안아서 들어올렸다. 흔히 말하듯 '주워 먹었다면' 손흥민이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케인을 들어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 상황은 확실히 반대다. 케인의 킥은 좋았지만 손흥민이 골로 4도움 기록을 만들어준 상황이다. 케인이 손흥민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케인의 마지막 골은 세컨드볼을 주워먹은 경우다. 손흥민의 4골이 그런 식으로 들어갔다면 '위치선정이 좋았다' 정도 평가하지 퍼펙트, 평점 10점 만점을 주면서 이렇게까지 극찬하진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이사장은 "경기종료 후 매치볼도 손흥민이 가져갔다. 케인이 슬쩍 손으로 건드렸을 뿐 달라고 하지 않았다. 오늘의 주인공은 손흥민이라는 걸 인정한 것이다. 선수끼리는 서로 안다. 언론에서 저평가되더라도 팬과 선수들은 안다. 그 정도면 됐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동료 케인을 기꺼이 MoM으로 치켜세운 손흥민의 배려와 겸손도 칭찬했다. "여유가 있다. 좋은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면서 "박지성이나 손흥민을 보면 인성, 팀을 위한 헌신과 배려 모든 면에서 정말 잘 맞춰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토트넘의 아마존 다큐멘터리를 보면 대니얼 레비 회장과 무리뉴 감독의 손흥민에 대한 각별한 신뢰, 손흥민에 대한 믿음과 존중이 확실히 보인다"고 했다. "역설적으로 그렇게 되기까지 손흥민이 팀플레이어로서 구단과 지도자에 얼마나 많은 신뢰를 보여주고자 노력했는지를 입증하는 부분이다. 구단, 코칭스태프와의 케미(chemistry의 줄임말, 화학반응, 사람들 사이의 조화를 뜻하는 신조어)가 잘 맞아들면서 본인의 실력을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것같다"고 평가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