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스포츠조선 노주환 기자]헹가래는 챔피언들의 로망이다. 우승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세리머니다. 그런 챔피언의 특권을 전북 현대 구단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50)은 거부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권오갑 총재(현대중공업그룹 회장)의 조언에 따라 우산까지 거부했다. 정의선 구단주의 첫 '전주성' 방문은 훈훈한 뒷얘기를 낳고 있다. 지난달 현대차그룹 수장에 오른 그는 1일 전북 현대와 대구FC의 '하나원큐 K리그1 2020'시즌 마지막 경기가 열린 전주월드컵경기장을 찾았다. 전북 현대의 첫 리그 4연패와 'K리그 레전드' 이동국(41)의 은퇴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였다. 딸과 함께 한 정의선 회장은 옆집 아저씨 처럼 캐주얼한 차림이었다. 그는 '전주성'에 오기 전 전주 인근 현대차 공장에 들러 현장 점검을 했고, 경기 시작 20분전 쯤 도착해 권오갑 총재, 김승수 전주시장 등과 환담을 나눴다. 정의선 회장은 약 2시간에 걸친 경기 관전에 집중했다. 그는 전반 20분, 이동국의 은퇴 경기를 기념해서 실시한 2분간 박수치기 이벤트를 다른 일반 관중과 똑같이 따라했다. 기립해서 정확히 2분 동안 쉼없이 박수를 보냈다. 전북은 조규성의 멀티골로 2대0 승리했고, K리그 최초 4연패를 달성했다.
정 회장은 VIP들과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그라운드로 내려왔다. 권오갑 총재와 함께 전북 현대 선수들고 코칭스태프의 목에 우승 메달을 걸어주었고 또 악수와 포옹을 했다. 전북 구단이 마련한 챔피언 기념 티셔츠를 입고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그리고 기념 사진도 찍었다. 그런데 우승 세리머니의 하이라이트인 헹가래는 없었다. 구단주, 감독, 이동국 등 그 누구도 하늘을 날지 않았다. 정 회장이 최대한 차분하게 우승을 축하하자는 취지에서 헹가래를 거부한 것이다. 전북 백승권 단장은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구단은 첫 리그 4연패와 이동국의 은퇴식을 위해 여러 시나리오를 놓고 고민했다. 구단주는 이동국의 은퇴식 보고에 망설임없이 현장에 가겠다고 결정했다. 헹가래를 놓고 고민했지만 구단주께서 하지말자고 했다. 아마도 코로나19로 인한 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고려한 결정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전북 구단은 헹가래를 빼기로 했다. 리그 4연패가 큰 의미가 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국민들의 고통과 사회 경제적 어려움을 감안해 차분한 행사 진행을 결정했다. 정의선 회장은 경기장을 가득 메운 1만여 팬들을 향해 단 한마디로 하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박수쳤고, 그라운드에 조금씩 내린 비를 여느 선수, 감독, 관계자들과 똑같이 맞았다. 시상식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우산을 준비했지만 권오갑 총재의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하자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정 회장은 이동국의 선수 은퇴식에서도 끝까지 함께 했다. 주인공 이동국 보다 주목받지 않으려고 했다. 2009년 전북 유니폼을 입은 이후 12년 동안 리그 8번의 우승 트로피를 구단에 안겨준 레전드에게 현대차 럭셔리 미니밴을 깜짝 선물했다. 전북 구단은 이동국의 등번호 20번 영구결번을 발표하며 예우를 갖췄다. 전주시는 이동국을 명예시민으로 결정했다. K리그에서 이런 역대급 은퇴식을 받으며 선수 유니폼을 벗은 선수는 없었다. 경기장에선 환호가 쏟아졌다. 감격의 눈물을 흘린 이동국은 "이런 멋지고 감동적인 은퇴식을 준비해준 구단주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이동국은 은퇴식 후 기자회견에서 "회장님이 '이제 자주 연락합시다'라는 말씀을 해주셨다"고 공개했다. 정의선 회장은 계속 박수만 쳤다. 정의선 회장을 최 근거리에서 보좌한 전북 현대 허병길 대표는 "구단주께서 우리 회사를 위해 헌신하고 떠나는 사람들을 소홀히 대하지 말라는 얘기를 하셨다. 이동국은 지금의 전북 현대를 K리그 최고의 위치에 올려놓은 진정한 레전드다. 구단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역량을 집중했다"고 말했다.
약 3시간 이상 '전주성'에 머문 정의선 회장은 모든 행사가 끝난 후 조용히 경기장을 떠났다. 우승 축하 뒷풀이에 참석하면 구단 식구들이 마음 편히 즐길 수 없다는 배려까지 해준 것이다. 전주=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