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 사임 의사를 밝힌 이대호 회장의 판공비 '셀프' 인상 논란을 빚은 프로야구선수협회(이하 선수협)가 다음 주 새 회장을 선임하기로 했다.
선수협은 최근 전체 선수들을 대상으로 차기 회장 선임 온라인 투표를 진행했다고 한다. 10개 구단서 팀내 연봉 상위 3위 안에 드는 선수 30명을 후보로 올렸는데, 그 결과가 다음 주 나오는 것이다. NC 다이노스 양의지가 차기 회장에 선임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의지가 회장으로 확정되면 선수협은 초대 송진우부터 차기인 11대까지 모두 현역 선수를 수장에 앉히는 셈이 된다. 그동안 선수협 회장은 주로 프로야구를 대표할 수 있는 스타 선수가 추천을 받아 투표를 통해 회장에 취임했다.
과거에는 구단들과의 싸움에서 '총대'를 메겠다며 자발적으로 회장을 맡은 선수가 더러 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선수협 회장을 하겠다고 먼저 나서는 선수는 없다. 희생과 보상의 자리인 만큼 스트레스가 많은 자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운동만 하기에도 심신이 고달픈 선수가 웬만한 의지 갖고 선수협 회장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는 어렵다.
선수협 회장은 전체 선수들의 권익을 위해 KBO와 구단들을 상대하는 게 주된 역할이다. 회사와 싸우는 노조위원장이나 다름없다. 선수-구단간 계약, 각종 제도를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이기 때문에 치밀한 논리와 법률적 이해도가 필요한 자리다. 비활동기간 2개월을 뺀 10개월간 운동을 병행하면서 머리 아픈 싸움까지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KBO와 협상하거나 내부적인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은퇴 선수'가 회장을 맡는 게 좋다는 의견이 나오곤 했다. 프로야구 선수 출신이 회장을 맡는다면 장점은 크게 두 가지다. 선수들의 고충을 잘 이해할 뿐만 아니라 오직 회장의 일에만 신경쓸 수 있다. 업무의 효율, 집중력이 높을 수 밖에 없다. '전임 노조위원장'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선수 뿐만 아니라 구단과 KBO 관계자, 법률가, 공무원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나면서 현안을 다룰 수 있다.
하지만 선수들 사이에선 은퇴 선수에 대한 거부감이 여전히 크다. 이대호 회장은 지난 2일 기자회견에서 "현역 선수가 회장을 맡는 게 맞다. 선수들의 협의체이기 때문에 현역 선수가 역할을 해야 한다. 은퇴한다면 현장의 고충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다. 선수가 후보가 되고 회장이 되는 부분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이라고 했다.
2006~2007년 2년간 선수협 회장을 맡은 이종범 LG 트윈스 코치도 3일 본지 통화에서 같은 말을 했다. 이 코치는 "당시 하도 말이 많아서 내가 은퇴한 선배님을 월급을 주고 모시자고 했는데, 결정권을 가진 이사들 사이에 반대가 많았다"며 "그런데 (회장을)하고 싶지 않은 선수들이 대다수였다. 누가 구단과 대립을 하려고 하겠나"라고 밝혔다. 이 코치는 이어 "쉬고 있는 선배가 회장이나 사무총장을 하면 더 열심히 할 것 아닌가. 선수는 운동에만 전념하고 얼마나 좋나. 시끄러운 일도 덜 생길 것"이라고 했다.
메이저리그 선수노조는 현역 선수가 위원장을 맡은 적이 한 번도 없다. 마빈 밀러 초대 위원장은 철강노조 활동을 했고, 4대 도날드 퍼와 5대 마이클 와이너는 변호사였다. 현재 노조를 이끌고 있는 토니 클락 위원장이 첫 선수 출신이다. 그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뉴욕 양키스 등 1995~2009년까지 활약한 스타 선수였다. 선수 때도 노조 대의원으로 활동했던 그는 은퇴 후 역사와 법률을 공부하면서 본격적으로 노조 활동에 나섰고, 2013년 12월 전임 와이너 위원장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위원장을 맡았다. 현행 메이저리그 노사협약을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2022년까지 계약을 연장받기도 했다. 선수들의 신임이 두텁다.
KBO리그 선수협도 은퇴 선수를 회장으로 모시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