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한화 이글스 포수 최재훈은 올 시즌 2번 타순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공격력 극대화를 위한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의 선택이었다. 리드오프 정은원과 중심 타선의 하주석 간 연결 고리 역할을 함과 동시에 득점 생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최재훈의 컨텍트 능력에 주목했다. 체력 부담이 큰 포지션 특성, 느린 발 등을 고려할 때 최재훈의 전진배치는 모험으로 여겨졌다. 2017년 한화 입단 후 줄곧 중하위에 배치됐던 최재훈이 수베로 감독의 노림수를 제대로 이행할지에 관심이 쏠렸다.
시즌 막바지에 접어든 현재 한화와 수베로 감독의 결정은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있다. 8일까지 시즌 108경기에 나선 최재훈은 타율 2할7푼4리(347타수 95안타), 출루율 0.408을 기록 중이다. 여러 부담을 안는 포지션에서 상위 타자로 계속 나서며 4할대 출루율을 기록하면서 풀시즌을 보내고 있다는 점은 분명 주목할 만하다. 특히 출루율 부문에선 KBO리그 전체 8위를 기록하고 있다.
2008년 두산 육성 선수로 프로 무대를 발은 최재훈은 줄곧 백업 역할에 그쳤으나, 한화에서 야구 인생의 기지개를 켰다. 올 시즌 뒤 생애 첫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는 가운데 '커리어 하이' 기록을 세우고 있는 점은 스스로 큰 의미를 가질 만하다.
9일 대전 KIA전을 앞두고 취재진과 만난 최재훈은 "처음에 감독님이 '(타순이) 2번으로 갈 수도 있다'고 이야기 했을 땐 가능성 정도로 여겼다"며 "실제로 2번을 치게 되니 어려움이 많았다. 체력적 문제도 있었지만, 출루 후 안타가 나왔는데 홈에서 아웃되면 곤란한 일 아닌가. 어떻게든 출루율을 높여서 살아나가고, 팀을 위해 할 수 있는 부분을 생각했다. 타격이 안될 땐 수비에서라도 보탬이 되자 싶었다. 지표를 돌아볼 겨를도 없었다"고 밝혔다. 2번 타자 자리를 두고는 "이제는 익숙해져야 할 때"라며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비단 2번 타순 뿐만 아니라 최재훈은 1루수, 리드오프 출전 등 여러 경험을 한 시즌으로 남을 만하다. 최재훈은 "처음 1번 타자 라인업을 봤을 때 몰래카메라인 줄 알았는데 진짜더라. 중-고교 시절 이후 쳐본 적이 없었고 부담이 컸는데 성적도 안 좋았다. 경기 후 (정)은원이한테 '1번이 이렇게 어렵구나'이야기하기도 했다. 두번 다시 1번은 치기 싫다"고 웃었다. 1루수 경험을 두고도 "대타 출전 후 더그아웃에 돌아와 감독님이 '1루수도 볼 수 있냐'고 해서 OK했는데, 정말 1루수로 내보내시더라. 처음엔 그냥 공만 받으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좌타자가 나오니 내게 공이 올까봐 정말 무서웠다. 너무 긴장을 하니 땀이 엄청 나왔고, 헛웃음까지 나오더라"고 돌아보기도 했다.
등락이 반복되는 타격 사이클은 있었다. 이럼에도 100안타 가까운 기록을 만든데는 조니 워싱턴 타격 코치의 도움이 컸다. 최재훈은 "초반엔 나랑 잘 안 맞는 것 같다는 느낌에 훈련을 건너 뛰기도 했다. 코치님이 먼저 다가와주길 바라던 때도 있었는데 그러질 않으시더라. 고민을 거듭할 때 워싱턴 코치님이 '나를 믿어봐라. 안되면 하지 말고, 되면 쭉 따라오라'고 하셔서 해봤는데 후반기에 그 부분이 잘 맞았다. 최근엔 '그것 봐라. 왜 (나를) 안 G나'라고 핀잔을 들었다"고 밝혔다.
프로 데뷔 후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는 만큼 생애 첫 FA에 대한 기대감도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재훈은 마음을 비운 지 오래다. 그는 "시즌 초반엔 생애 첫 FA시즌이니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내가 얼마나 좋은 선수인지 인정받고 싶었다. 그러니 부담감이 생기고 잘 안될 때 두 배 더 힘들더라. '내가 이 정도였나'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FA를 지우고 마음 편히 코치님-선수들과 대화하면서 좋은 결과가 따라오는 것 같다. 지표에 대해 생각을 내려놓으니 커리어 하이를 하고 있더라"고 말했다.
최재훈은 "선수단이 젊어진 만큼 초반엔 혈기로 달렸는데, 후반엔 부담이 되면서 처지는 감이 있었다. 쭉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잡질 못했다"며 "좀 더 많이 뛰고 수비에서도 허슬플레이를 거듭하면 우리 팀은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본다. 젊은 선수들이 주전 자리를 정말 소중히 여기고 투쟁심을 이어가야 한다"고 활약을 촉구하기도 했다.
대전=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