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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일본 같았고, 일본이 한국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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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이달초 브라질은 친선 A매치에서 '개인 기술이 좋은 팀이 전술적으로 기민하게 움직이고 심지어 압박까지 강할 때' 우리가 얼마나 초라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12일 2022년 U-23 아시안컵 8강에서 만난 일본이 강한 압박을 펼쳤다. 황선홍호가 고전했다. 발기술, 체력, 연계플레이, 전술 운용 무엇하나 한국이 앞서는 게 없었다. 일본은 2024년 파리올림픽에 대비해 이번 대회를 21세이하 선수들로 꾸렸는데, 숙련도로 봤을 때 평균연령이 2살 더 많은 팀이 일본이라고 해도 믿을 판이었다.

더 안타까운 건 투쟁심의 실종이었다고 많은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국은 역대 한-일전에서 부족한 기술을 넘치는 투쟁심으로 극복해왔다. 한-일전의 무게감을 모를 리 없는 선수들은 설령 실력이 밀린다 하더라도 한 발 더 뛰고 몸을 던지는 투지를 보여줬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반칙수는 한국이 7개, 일본이 19개였다. 일종의 규정 위반 행위인 반칙을 장려할 순 없지만, 지도자들은 축구장 위에서만큼은 영리한 반칙을 지향한다. 일본이 19개의 파울로 경고 1장을 받을 때, 한국은 경고 2장을 받았다.

전반 38분 상황은 상징적이다. 미국계 혼혈 선수인 센터백 체이스 안리(슈투트가르트)는 마중 나와 공을 잡은 이강인(마요르카)을 압박하기 위해 한국 진영까지 넘어왔다. 전반 한 차례 경고를 받은 그는 멈칫하는 동작 없이 이강인에게 거친 태클을 가했다. 자칫 퇴장으로 연결될 뻔한 장면이었지만, 주심은 파울을 선언하되 추가 경고를 내밀지 않았다. 이러한 기싸움에서도 일본은 밀리지 않았다. '공을 예쁘게만 차는' 이미지가 강한 일본과는 달랐다. 전반 22분 스즈키 유이토(시미즈)에게 프리킥으로 선제골을 넣은 뒤로도 압박 강도를 낮추지 않아 한국의 숨통을 조였다. 공중볼 획득 성공률(39.1%대60.9%), 인터셉트(8대11), 태클(8대13)에서도 밀렸다.

도리어 몇몇 장면에선 한국이 일본처럼 플레이했다. 상대가 강하게 전방압박하면 뒤로 밀려났다. 홍현석(린츠) 이강인 중심의 패스 플레이를 통한 탈압박은 도통 먹히지 않았다. 후반 20분 호소야 마오(가시와)의 추가 득점 과정에서 스즈키의 개인기에 한국 선수 3~4명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슛을 내주는 모습에선 2010년 5월 한-일전에서 박지성이 골을 넣고 산책 세리머니를 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12년 뒤 상황이 역전됐다. 한국은 지난해 3월 A대표팀간 맞대결에서 0대3으로 참패했다. 이번 경기를 통해 '한국 축구가 일본 축구에 역전당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고조되는 분위기다. 일본 축구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14일 "축구 인프라, 유소년 숫자, 프로리그 규모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일본이 한국에 앞선 지 오래"라며 최근 A매치 맞대결 결과가 놀랍지 않다고 말했다.

피지컬과 투쟁심과 같은 한국 선수들의 특장점이 사라지는 현상은 J리그에서도 목격되고 있다. 또 다른 축구계 관계자는 "현재 J리그에서 주전으로 뛰는 한국 필드 플레이어가 몇이나 되나"라고 되물으며 "과거엔 한국 선수들이 실력과 투쟁심을 겸비해 인기가 좋았다. 최근 사례로는 감바에서 뛰던 황의조(현 보르도)가 있다. 하지만, 최근엔 그런 특색있는 한국 선수들을 찾기 어렵다고 여러 J리그 관계자들은 이야기한다. 투쟁심 측면에서 일본과 한국 선수들의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하겠다고 말하더라"라고 말했다.

이날 교체 투입된 오세훈(시미즈)은 2019년 U-20 월드컵 16강에서 일본을 상대로 결승골을 넣으며 준우승의 발판을 놨던 공격수다. 하지만, 3년 뒤 2살 가량 어린 일본 수비수들을 상대로 무기력한 모습으로 일관했다. 차세대 '대형 공격수'로 평가받던 오세훈은 심지어 올해 입단한 J리그 클럽 시미즈에서 두 골을 넣은 스즈키 유이토에 밀려 벤치에 머무르고 있다. 유망주들의 더딘 성장도 한-일전 참사의 주요 인자라고 할 수 있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