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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매일 가던 곳인데…사라지는 집 앞 은행 영업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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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영업점 5천690개…5년간 1천개 넘게 줄어
비대면 영업 비중 늘자 은행들 영업점 축소 서둘러
은행 영업점 축소에 취약층 금융 접근성 약화 우려
은행 영업점 폐쇄 절차 강화…은행대리업도 허용

(서울=연합뉴스) 심재훈 기자 = 최근 은행 관련 기사 댓글이나 온라인커뮤니티 등에는 동네에서 은행 영업점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
은행들이 경영상의 이유로 규모를 축소하고 비대면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은행 영업점을 계속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제는 집에서 은행 영업점을 가려고 일부러 지하철 또는 버스까지 타야 하는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다.
청년층의 경우 은행 전용 앱이나 인터넷 뱅킹을 많이 이용하지만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자나 장애인 등 취약층에게는 아직도 집 근처에 은행 영업점이 필요한 게 현실이다.
하지만 은행들이 비용 등을 이유로 인터넷 뱅킹이나 화상 상담 등을 통해 업무를 보는 방식으로 급속히 전환하면서 은행 영업점이 점차 모습을 감추고 있다.
과연 우리 집 앞의 은행 영업점은 무사한 걸까. 새로운 방식의 비대면 은행 업무처리 방식은 편리하기만 한 걸까.

◇ 은행 영업점 5천690개…5년간 1천개 넘게 줄어
실제로 우리나라 은행들은 막대한 이자 수익을 거두면서도 운용 비용 등을 이유로 영업점을 계속 줄이고 있다.
은행이 영업점을 줄이는 이유는 비대면 금융 거래 확대와 영업점의 중복, 비용 절감 때문이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뱅킹의 보편화로 고객들이 직접 은행을 방문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금융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됐고, 인건비와 운용비 절감을 위해 오프라인 영업점을 축소하고 디지털 채널에 집중하는 전략을 채택한 데 따른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은행 영업점은 2019년 말 6천738개에서 2020년 말 6천427개, 2021년 말 6천121개, 2022년 말 5천831개, 2023년 말 5천747개, 지난해 10월 말 5천690개로 감소했다.
2023년 4월 은행 영업점 폐쇄에 관한 내실화 방안 시행 등으로 감소세가 둔화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의 은행 영업점은 이 시간에도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우리은행은 지난 1월 서울 종로구 세종로금융센터를 비롯한 전국 영업점 21곳을 인근 점포로 통폐합했다. 비용 효율화를 위한 은행의 선택이지만 지역 간 영업점 수 격차가 발생하고, 비대면 거래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 등이 불편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더구나 은행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마저 줄어들고 있다.
은행의 ATM은 2019년 말 3만6천464개에서 2020년 말 3만3천989개, 2021년 말 3만1천789개, 2022년 말 2만9천582개, 2023년 말 2만8천70개, 지난해 10월 말 2만7천157개였다.
은행 영업점의 53.7%는 수도권에 집중돼있으며 ATM도 절반이 넘는 56.4%가 수도권에 분포돼있었다. 결과적으로 비수도권은 은행 점포 및 ATM 수가 적어 상대적으로 금융 접근성에 취약한 셈이다.

최근 5년간 상황을 보면 은행 영업점은 총 1천189개가 폐쇄됐으며 KB국민은행(-26.3%), 우리은행(-24%), 신한은행(-22.9%), 하나은행(-18.8%) 순으로 영업점 폐쇄가 많았다. 지난해 폐쇄된 은행 영업점의 72.9%는 1㎞ 도보생활권에 있는 영업점 통폐합 건이었다.
물론 다른 국가의 은행들도 금융의 디지털화와 비대면 거래 증가로 오프라인 영업점이 줄어드는 추세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주요국 가운데 유독 은행 영업점이 적다는 점은 각 은행에서 고려해야 할 사항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성인 인구 10만명 당 은행 영업점 수는 2023년 말 12.7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14.5개에 못 미친다. 미국은 26.6개, 일본은 33.7개, 유럽연합(EU)은 15.7개였다. OECD 회원국의 성인 인구 10만명당 은행 영업점은 2018년 말 20.2개에서 2023년 말 15.5개로 감소했고 미국도 31.0개에서 26.6개로 줄었다. 이 기간 우리나라는 15.2개에서 12.7개로 감소했다.
대형 시중은행 중심인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과 일본은 다수의 소규모 은행이 지역 금융을 담당해 인구당 은행 영업점이 많은 편으로 분석됐다.

◇ 비대면 영업 비중 늘자 은행들 영업점 축소 서둘러
은행들의 영업점 축소는 비대면 영업 비중이 빠르게 느는 추세와 맞물려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디지털 전환에 따라 은행의 대면 거래 비중은 줄고 있지만 은행 영업점을 통한 여·수신 업무 비중은 2023년 기준 전체의 45.2%로 여전히 높은 편이긴 하다.
그럼에도 은행에서 비대면 거래는 대세가 되고 있다. KB국민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지난해 1분기 적립식 예금의 신규 가입 중 비대면 가입 비중은 평균 82%(계좌 수 기준)에 달했다. 은행 적금에 가입할 때 10명 중 8명 이상은 영업점을 방문하지 않고 모바일 앱 등 비대면 채널을 이용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 1분기 60% 수준이었던 적립식 예금의 신규 가입 중 비대면 가입 비중은 2022년 1분기 80%에 달한 뒤 비슷한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여신도 비대면이 압도적이다.
5대 시중은행의 지난해 1분기 신용대출 가운데 75%가 비대면으로 이뤄졌다. 은행에서 목돈을 빌릴 때도 4명 중 3명이 더 이상 영업점을 찾지 않는다는 의미다.
비대면 신용대출 비중은 2019년 1분기 30.4%에 그쳤지만 2020년 1분기 40%, 2021년 1분기 50%, 2022년 1분기 60%에 달했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영업점을 통한 오프라인 영업과 더불어 모바일 앱을 통한 비대면 영업도 확대하는 분위기다.
5대 시중은행의 모바일 앱 누적 가입자 수는 각각 최소 1천만명을 넘어섰다.
최근 은행들은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을 모바일 앱에 탑재해 비대면 가입 확대를 유도하고 있다. 은행 영업점에서 은행원이 했던 것처럼 AI 기술을 통해 고객에게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고 투자 성향 등을 고려해 적합한 금융상품을 추천하는 방식이다.
우리금융그룹 우리금융경영연구소가 컨슈머인사이트에 의뢰해 2022년 10월부터 11월까지 모바일 금융 플랫폼을 이용하는 만 19∼41세 2천명을 대상으로 설문했더니 MZ세대(1980년대초∼2000년대초 출생)의 86.8%는 평소 금융거래 시 비대면 채널을 이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 조사에서 최근 3개월 동안 은행 영업점을 방문한 이들은 전체의 42.4%에 불과했다.

◇ 은행 영업점 축소에 취약층 금융 접근성 약화 우려
이러한 은행의 비대면 시스템 활성화에 따른 영업점 축소는 디지털 소외 계층의 불편을 가속할 우려가 적지 않다.
고령자나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계층은 은행의 비대면 서비스 이용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보다 농어촌 지역에서 영업점 폐쇄가 두드러지면서 해당 지역 주민의 금융 서비스 접근성이 낮아질 수도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의 '국내 은행 영업점 분포에 대한 분석과 시사점(2024년)' 보고서는 은행 영업점 이용을 위해 소비자가 최소한 이동해야 하는 거리에 지역별 격차가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지역별로는 서울, 부산, 대전은 1km를 넘지 않았지만, 그 외 지역은 20km가 넘는 지역이 다수로 나타났다. 강원, 전남, 경북은 최대 27km에 달했다.
은행 점포 이용 시 이동 거리 상위 30곳을 보면 대부분 20km 이상이고 지방 중소도시나 군 단위 지역이 많았다. 이들 지역은 대부분 고령층 비중이 높았다.
금융연구원은 "지역의 고령화 수준이 높을수록 은행 점포 접근성이 낮다"며 "디지털화에 가장 취약한 계층으로 물리적 점포 의존도가 높을 수 있는 고령층의 금융 소외는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대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20년 정기 간행물 '금융브리프'에서 취약계층 및 취약 지역에서는 포용 금융 차원에서 적정 수의 영업점이 유지되도록 은행권이 공동 대응해야 한다면서 "취약계층 밀집 지역 등에서 영업점을 닫을 경우 프로 스포츠팀에서 신인선수를 선발하는 방식인 드래프트 제도처럼 은행권이 영업점을 폐쇄할 지역을 순차적으로 정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은행 영업점을 줄이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하나금융연구소의 '미국 JP모건체이스 은행의 점포 확대 전략 사례' 보고서에 의하면 JP모건체이스 은행은 대면 서비스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영업 영업점과 디지털 채널이 상호보완적이라는 판단 아래 영업점의 커버리지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은행 영업점 소재 지역 내 신규 비대면 계좌 수가 더 많이 유치되는 후광 효과가 생겼다고 분석한다.
JP모건체이스 은행은 2017~2022년 부실 영업점 1천112개를 정리하면서 신규 영업점도 650개 확대하는 정책을 병행해 경쟁 은행 대비 영업점 수 축소를 최소화했다. 2027년까지 500개 영업점을 신설해 대고객 영업을 강화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이 은행은 비용 관점이 아닌 수익 관점에서 영업점의 역할을 재조명해 2021년 예금 잔액 기준 미국 리테일 은행 1위에 올라서기도 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해 11월 8개 은행 지주 이사회 의장과 간담회에서 경영 관리상 취약점으로 단기성과에 치중하는 경영문화를 언급하면서 "은행 지주가 고위험 금융투자상품 판매, 부동산 및 담보·보증서 대출 위주의 여신 운용, 점포·인력 축소를 통한 비용 절감 등 손쉬운 방법으로 단기성과를 올리는 데 집중해왔다"고 지적했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미국은 은행의 영업점 폐쇄 시 적어도 90일 전에 연방 규제 당국과 지점 고객에게 알리도록 하고 규제당국에 통보할 시 영업점 폐쇄 결정의 이유와 이를 뒷받침할 통계 또는 정보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저소득 지역에 있는 영업점 폐쇄 공지에는 추가적인 요건이 있다.
영국의 경우도 미국과 유사한 은행 영업점 폐쇄 절차를 요구한다. 지난해 7월 영국 금융당국은 '새로운 현금 접근성 규정'을 공표했는데 은행들이 현금서비스 접근성에 불편함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기 전까지는 영업점 폐쇄를 보류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는 디지털 결제 증가에도 여전히 현금에 의존하는 사람이 많고 다수 소규모 기업도 매일 수익금을 안전하게 예치할 곳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캐나다의 경우 비도시 지역에서 은행 영업점을 폐쇄할 경우 반경 10㎞ 내에 다른 소매 예금 취급 지점이 없는 경우 은행이 6개월 이전에 통지해야 한다.
호주의 은행 영업점 폐쇄 절차는 동일한 은행의 가장 가까운 지점이 도로에서 10㎞ 이상 20㎞ 미만 떨어진 경우 고객이 대체 채널에 접근할 수 있도록 서비스 접근 방법을 지원해야 하고 노인, 장애인 등 취약층 고객을 지원할 의무를 갖는다.

◇ 은행 영업점 폐쇄 절차 강화…은행대리업도 허용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취약층의 금융 접근성 제고를 위해 다양한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사의 '금융소비자 보호 내부통제 기준'에 고령자·장애인 거래 편의성 제고 등에 관한 사항을 반영하도록 업권별 표준안을 마련하고, 은행 모바일앱 간편모드 도입을 확대하고 있다. 은행 모바일앱에 조회, 이체 등 이용 빈도가 높은 메뉴만으로 화면을 구성해 접근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또한, 은행 영업점 폐쇄 전에 사전영향평가 절차를 강화하고 폐쇄 후 소비자 영향 평가를 하고 있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은 이들 은행의 영업점이 없는 2022년 용인시 수지구 신봉동에 공동 점포를 만들었다. 비대면 금융 확산으로 대면 업무가 줄어 불편을 겪는 취약층을 위한 조치였다.
최근 일부 대형은행은 고객센터 운영비 절감 등을 위해 고객센터 인공지능(AI)을 운영 중인데, 고객 정보가 등록된 고령자에게는 AI 상담과 일반 상담원 중 선택권을 부여하거나 일반 상담원을 우선 연결하는 방식을 추진 중이다.

금융당국은 이르면 7월부터 전국에 2천500여개 영업점을 갖춘 우체국 등에서 예·적금, 대출과 환거래 등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우체국 외 다른 은행이나 은행이 최대 주주인 법인, 지역별 영업망을 보유한 신용협동조합 등 상호금융회사, 저축은행의 은행 대리업무 진입도 허용된다.
이미 1998년 씨티은행을 시작으로 11개 은행이 우체국 금융 창구에서 예금 입·출금과 조회 서비스를 하고 있다.
president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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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