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당(殘黨). 요즘 많이 보이는 낱말입니다. '내란 잔당' 형태로 쓰입니다. 역사가 얽힌 말입니다. 추적할 가치가 있습니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본당(本黨)입니다.
본당은 뜻이 둘 있지만, 여기서는 사전이 첫째로 내세운 '중심이 되는 본디의 당을 분당(分黨)이나 지당(支黨)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을 의미합니다. 잔당은 '패하거나 망하고 남은 무리를 부정적으로 이르는 말'이고요. [탈옥수들의 잔당이 민간인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 중이다]처럼 쓰입니다. 잔당은 본당과 달리 유사어가 여럿입니다. 여당(餘黨. 남을 여) 여류(餘類) 잔도(殘徒) 잔류(殘類)를 사전은 소개합니다.
한국현대정치에서 잔당은 박정희 유신체제의 후신 세력과 후예들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사용됐습니다. 10월 유신이 뭔가요? 1972년 10월17일 박정희 정권의 장기 집권과 지배체제 강화를 위해 단행한 초헌법적인 비상조치입니다. 유신쿠데타라고도 하지요. 권력을 쥔 쪽이 더 큰 권력을 얻으려고 벌인 친위쿠데타(self-coup)입니다. 국회 해산과 정치활동 중지 등 헌법 일부 조항의 효력 정지, 비상국무회의가 효력이 정지된 일부 헌법 기능 수행, 비상국무회의의 헌법개정과 국민투표, 개정 헌법에 따른 헌법 질서 성립 등이 10ㆍ17 비상조치 내용이었습니다. 개헌 후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박정희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유신체제가 수립되어 1979년까지 지속됐습니다. 유신 본당이지요.
유신 독재는 어떻게 정리되나요? 1979년 10월26일 오후 7시40분께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가 대통령 박정희를 총격 살해합니다. 같은 10월이었네요. 유신은 그렇게 끝나 '서울의 봄'이 오나 했지만, 민주화는 좌절되었습니다. 신군부 전두환이 군사반란으로 실권을 쥐고 나서 다시 '체육관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유신 2기가 이어졌습니다. 유신 잔당이지요. 잔당은 뿌리가 넓고 깊었으며 무엇보다 질겼습니다. 사람들이 헌정사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 시기를 1997년으로 보는 덴 다 이유가 있었던 거지요.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0월유신(十月維新)>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425
2.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온라인)
3. 네이버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