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 역사 담은 기록유산…1913년 일본 반출됐다가 돌아와
"나라의 기록 지키려 한 노력 흔적"…의궤 82책도 제자리로
(평창=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강원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일대.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깊은 산속에 귀한 건물이 있었다. 강릉의 유생 가운데 학식과 덕망을 갖춘 두 명이 교대로 근무하며 지키던 공간이었다.
풍수지리상 재해를 피할 수 있다고 여긴 곳에 들어선 사고(史庫)다.
'오대산 사고'로 불린 이곳에는 500년 가까운 조선 왕조 역사를 오롯이 담은 역사서인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 주요한 책이 보관돼 있었다.
기록을 중시했던 옛사람들의 정신이 남아있는 흔적이다.
오대산 사고는 임진왜란 이후인 1606년 지어졌다.
조선 왕조는 역사를 기록하고 이를 후대에 전하고자 실록, 의궤 등과 같은 왕실 기록물을 여러 권 만들어 중앙과 지방으로 분산해 보관했다.
초기에는 서울 춘추관을 비롯해 성주·충주·전주 사고 등 4대 사고가 운영됐으나,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전주를 제외한 나머지 세 곳은 소실됐다.
전쟁이 끝나자 1603년부터 전주 사고본(本)을 바탕으로 실록 4부를 재간행해 춘추관·묘향산·태백산·오대산 사고에 뒀고, 전주 사고본은 강화도 마니산에 보관했다.
기록 문화의 보고(寶庫)였던 오대산 사고는 일제강점기 수난을 겪는다.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이 2023년 펴낸 '오대산 사고본 조선왕조실록과 의궤' 도록에 따르면 오대산 사고는 1911년부터 조선총독부가 실시한 이른바 '도서 정리 사업'으로 철폐 대상이 됐다.
그 과정에서 실록은 머나먼 일본으로 떠나야 했다.
일본의 동양사학자 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吉·1865∼1942)의 요청을 받은 조선총독부는 1913년 10∼11월에 오대산 사고본 실록을 동경제국대학으로 반출했다.
당시 상황은 '오대산 사적'의 기록으로 전한다.
"총독부 관원 및 평창군 서무주임 히구치 그리고 고용원, 조병선 등이 월정사에 머무르며 사고와 선원보각에 있던 사책(史冊) 150짐을 강릉군 주문진으로 운반하여 일본 도쿄대학으로 직행시켰다."(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우리 품에 돌아온 문화재' 책에서)
일본으로 반출된 오대산 사고본 실록은 총 788책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1923년 간토(關東) 대지진이 발생하면서 대부분 불에 탔고, 가까스로 화를 면한 27책이 1932년 경성제국대학으로 돌아왔다.
시민단체, 불교계, 학계를 중심으로 반환 운동이 시작되자 일본은 2006년 오대산 사고본 47책을 한국에 넘겼다. 이후 일본에서 1책을 사들여 현재 75책이 국보로 지정돼 있다.
오대산 사고본 실록은 '독특한' 흔적으로 가치가 크다.
임진왜란 이후 다시 간행된 '성종실록'과 '중종실록'은 군데군데 붉은 글씨와 검은 글씨로 수정하거나 띄우기·첨가·삭제를 지시하는 교정 부호가 남아있다.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에 전시된 실록 원본에는 '○', '●', 'X' 등의 표시가 남아있다. 지금으로 따지면 '빨간펜'으로 수정 사항을 체크한 셈이다.
실록을 제작할 때는 원고를 교정해 오류를 수정한 뒤 다시 인쇄하고 교정본은 폐기하는 게 원칙이나 전쟁 이후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교정본을 활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종이의 가장자리를 잘라 제본하면서 책 크기가 다른 실록보다 조금 작은 점도 눈에 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조선시대의 실록 교정 체제뿐 아니라 전쟁의 피폐함 속에서도 나라의 기록을 지키려 했던 노력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오대산 사고에 있었던 의궤 역시 비슷한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의궤는 조선시대 왕실 행사를 상세히 기록하고 그 과정을 기록과 그림으로 정리한 자료다. 오늘날로 보면 각종 행사를 치르고 작성하는 '행사 보고서'와 비슷하다.
국왕의 즉위, 혼례, 장례는 물론 각종 왕실 활동을 엿볼 수 있어 가치가 크다.
일제강점기였던 1922년 일본은 오대산 사고에 보관돼 있던 조선왕조의궤를 포함해 왕실 도서 105종 1천205책을 궁내성(현 궁내청)으로 반출했다.
기나긴 논의를 거쳐 의궤는 89년이 지난 2011년에야 고국 땅을 다시 밟았다.
오대산 사고본 43종 82책을 포함해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한 조선왕조의궤 80건 133책은 2016년 보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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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