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um App

Experience a richer experience on our mobile app!

친구야 힘내! 마운드 위 '덜덜' 떠는 동갑내기 윤성빈을 위해…발로 뛴 필승조의 따뜻한 속내, 모두가 한마음이었다 [SC포커스]

by

[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이리 주세요. 제가 다녀올게요.'

입 밖으로 꺼냈을 말이 들리는듯 하다. 롯데 자이언츠 정철원이 등판하지 않고도 남다른 존재감을 뽐냈다.

20일 부산 사직구장. 롯데의 '아픈 손가락' 윤성빈이 294일만에 1군에 선발 등판한 날이었다.

정철원은 LG 트윈스 리드오프 박해민을 상대로 157㎞, 156㎞, 157㎞ 직구를 연달아 꽂으며 3구 삼진, 부산 야구팬들을 열광시켰다.

다음 타자 문성주에게 안타를 내줬지만, 김현수를 상대로 다시 156㎞ 직구에 이은 143㎞ 슬라이더로 헛스윙 삼진을 유도해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초구 볼, 그리고 문성주가 2루 도루를 성공시켰다. 이때 윤성빈은 포수 유강남과 의사소통을 하는 피치컴에 문제가 생겼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보통 피치컴 이상이 있을 때는 구단 관계자가 나와 상태를 확인하고 교체해주기 마련. 그런데 이날은 달랐다. 정철원이 대뜸 불펜으로 달려가 피치컴을 받아들었고, 황급히 마운드로 달려나왔다.

처음에는 '괜찮다'는 사인이 나와 멈칫했다. 볼 2개를 더 던진 뒤 다시 교체를 요청했다. 다시 정철원이 직접 장비를 들고 달려와 교체해줬다.

정철원은 김원중과 더불어 롯데의 뒷문을 책임지는 필승조다. 프로 8년차인 만큼 그런 심부름을 다닐 연차도 아니다.

강렬한 세리머니만큼이나 롯데 불펜의 에너지를 주도하는 성격이 드러난 대목. 다급한 뜀박질에서는 혹시라도 윤성빈의 좋은 투구 리듬이 흐트러질까 우려하는 섬세한 속내가 엿보였다.

이대형 해설위원은 "윤성빈의 경기 초반 구위만 보면 1선발급"이라고 감탄하는 한편, "선수들도 윤성빈에게 집중하고 있다보니(동작에 반응해) 빠르게 뛰어나온 것 같다"고 설명했다.

윤성빈은 2019년 이래 최근 7년간 1군에서 이날 포함 단 4경기에 등판한 투수다. 데뷔 2년차였던 2018년(18경기 50⅔이닝 2승5패 평균자책점 6.39)을 제외하면 1군 무대에서 1이닝 넘게 투구한 적이 한번도 없다.

지난해에도 김태형 롯데 감독의 깜짝 발탁에 의해 단 1경기 선발로 등판했지만, 수비 실책이 겹치며 1이닝 5실점한 뒤 교체된 바 있다.

이날은 시작이 달랐다. 구위도 살아있었다.

정철원은 윤성빈과 1999년생 동갑내기다. 그 자신도 2018년 두산 베어스 입단 후 신인상을 차지하던 2022년 이전까지 1군에서 단 한경기도 던지지 못했다. 그랬기에 윤성빈의 떨리는 마음을 잘 알았을 것이다.

바람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윤성빈은 이후 급격히 무너지며 1회에만 3실점, 2회에는 아웃카운트 하나 잡지 못한 채 무너지며 1이닝 4피안타 1사구 6볼넷, 무려 9실점이란 참담한 기록만 남겼다. 실점 직후 모자를 고쳐쓰며 덜덜 떨리던 손가락이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2경기 차 1위팀과의 1,2위 맞대결, 윤성빈에겐 지난해 7월 30일 인천 SSG 랜더스전 이후 294일 만의 1군 등판이었다. 부담감이 클 법도 했다.

하지만 결국 기회는 잡는 자의 몫이다. 야구계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이 경기, 멋진 투구를 보여줬다면 단숨에 '슈퍼스타'로 거듭날수도 있었다. 어쩌면 이만한 주목을 받는 것 자체가 윤성빈의 아직 터지지 않은 가능성을 보여준다.

구위가 아무리 좋아도 흔들림이 너무 심해 불펜으로는 쓰기 어렵다. 결국 어느 정도 영점을 잡아 선발로 뛰는 방법 뿐인데, 이번에도 증명에 실패했다.

첫 2아웃까지의 모습은 기가 막혔다. 이후 모습은 실망 그 자체. 김태형 감독과 롯데 수뇌부의 고민이 한층 더 깊어졌다.

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